전주교구의 작은 교회 공소를 찾아서(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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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2-11-11 조회 1,314회본문
전주에서 진안 부귀를 가려면 소양을 지나 산세가 수려하고 굽이굽이 가파르게 이어지는 모래재를 넘어야 한다. 부귀공소는 진안성당(주임=이성우 신부)의 관할로 아담한 적벽돌 건물로 예수님상이 두 팔을 펼치며 반갑게 나를 맞이해 주는 것 같았다. 공소는 1988년 윤양호(클레멘스)신부가 용담공소 신축 추진 중에 용담댐 건설로 수몰되었고, 이동(아우구스티노)신부가 부임한 1996년 11월 3일에 용담공소 보상금으로 신축 기공식을 가졌으며, 1997년 6월 29일 이병호 주교(전주교구 제7대 교구장) 주례로 공소 축복식을 가졌다.
2021년 진안성당에서 발행한 ‘공소 120년 공소들의 어제와 오늘’ 책자에는 공소 초창기 부귀면 상거석마을에 거주하였던 김상희(크리스토폴)부부가 범석규(마티아) 신부에게 말씀드려 용담공소의 수몰 보상금으로 부귀면 소재지에 공소 설립을 건의하여 교구청에 허가를 받아 건축하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회합실(피정의 집)의 필요함을 느껴 신자들과 함께 한 기도의 응답으로 은인들이 기부한 후원금을 계기로 완공, 공소에서 피정의 집을 운영을 하였다. 회합실(피정의 집)을 건축 후, 10여 년을 피정의 집으로 운영하여 부귀공소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공소예절보다 신부님이 계신 부귀공소에 가서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 ‘더 은총을 받는 일’이라는 공소 신자들의 설득으로 봉암공소 40여 명의 신자들이 함께했고, 이후에 황금, 수항공소 신자들도 함께 주일미사를 봉헌할 수 있었다.
공소를 가기 전 원봉암에 살고 있는 박낭주(루시아, 공소회장)자매의 집을 찾았다.
루시아 자매는 개신교 신자였으나 가톨릭 신자인 남편을 만나 결혼식 전날 주모경만 외워 찰고를 받고 세례와 함께 혼인성사를 하였다. 신앙생활에 전념했을 때 ‘하느님은 자식들이 부족해도 돌보시고 사랑하신다는 것’을 체험하여 여러 활동을 해 오던 중,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남편의 고향인 부귀로 들어왔는데 시댁이 박해시절에 김제에서 진안 골짜기로 피신해 살았던 구교 집안이었다.
자매는 당장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활동을 해야 할 처지인데도 하느님의 일을 찾아 성전에서 청소하고 기도하며, 낮은 자세로 봉사의 자리를 택하였다. 좀도리 쌀을 공소 신자들과 함께 모아 연옥영혼들을 위해 연미사를 봉헌하고, 교구 사회복지시설에도 쌀을 기증해오고 있었다. 하느님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사랑해야 한다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몸소 실천하며 살아가는 루시아 자매의 신심이 강하게 느껴졌다.
김복순(데레사, 봉암지역 반장) 자매는 부귀공소 예언자들의 모후 Pr. 단원으로 창단 때부터 활동해왔다. 레지오 연차총친목회, 연도대회에서 1등을 하여 저력을 과시하기도 하였다고 전한다.
공소 주일미사는 30~40여 명 정도가 참여한다. 첫째·둘째 주는 오후 3시 조정오(요셉)신부(원로사목)가, 셋째 주는 본당 주임 신부가 주례를 하며, 넷째 주는 본당에서 만남의 날로 정하여 본당·공소 신자들이 진안성당에서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23세대에 48명의 신자들이 모여 살지는 않지만 오순도순 정을 나누며, 힘을 모아 서로 돕고 살아가고 있으나, 장례가 생기면 차량봉사자가 없어 서로 간의 거리가 멀어 상가에 가서 연도 바치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공소 신자들이 하느님을 체험하며 ‘일치와 성덕’의 길로 가기를 기도 지향으로 매일 기도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공소 신자들에게 격려를 보낸다.
취재 : 서정순 세실리아(교구 기자단), 사진 : 최경호 요수아(교구 가톨릭사진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