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교구의 작은 교회 공소를 찾아서(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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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0-09-14 조회 2,342회본문
공소에 들어서니 아기자기한 채송화 밭이 환하게 반겨준다. 공소 입구 벽면에는 색 바랜 사진 한 장이 걸려 있다. 1970년대 어느 때쯤으로 기억되는 그날, 사진 속에는 공소 어르신들과 아이들 40여 명이 모여 있다.
“주님 승천 대축일에는 야외 미사를 했어요. 공소 소풍이라고 할 만큼 좋은 날이었지요.” 그날을 기억하는 박안나(84세) 어르신은 공소에서 태어나 평생을 공소에서 사셨다. 당시 초등학교를 마치면 학업을 위해 외지로 나갔던 자녀들도 대축일이면 당연스레 고향공소로 내려왔다고 하니 공소가 한참 번성하던 1970년대, 공소 식구가 100여 명이 넘었다는 공소 기록이 실감 난다. 광활공소(만경성당 관할, 주임=정세진 신부, 김제시 광활면 창제리 158-4)는 고산에 살던 박안나 어르신의 부친 박경례(루카) 형제가 1931년 간척사업이 활발했던 이곳으로 이주해오면서 교우촌이 형성되고 공소가 설립됐다.(설립 당시 수류성당 관할)초대 공소회장을 맡은 박경례 형제는 적극적인 선교의 씨앗을 뿌렸고, 같은 시기 합천에서 이주해온 전판술(요한) 형제를 선교하면서 두 형제의 헌신적인 선교 씨앗 뿌리기가 공소 90년의 역사를 이끌어갔다. 6.25전쟁 후 공소에서는 구호물자를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눔으로써 비신자들의 호감을 얻었고 2대 공소회장과 동네이장을 맡았던 전판술 형제는 가가호호 방문하며 선교와 이웃돕기로 동네기둥 역할을 했다. 3대 공소회장은 초대회장 박경례의 사위 김종선(베드로, 박안나의 남편)형제가 맡았고 이후에는 전판술 형제의 아들 전영명(시몬, 現 만경성당 사목회장) 형제 부부가 7년 전 이곳으로 귀향하여 공소와 맞닿은 자택에서 공소 지킴이를 하고 있다.
광활공소는 1962년도에 전판술 형제가 자택 옆 소유지를 희사하면서 당시 만경공소가 소유하고 있던 기와집 한 채를 헐어 목재를 마련하고 신자들이 십시일반 봉헌금을 모아 공소강당이 지어졌다. 이후 공소는 급격히 발전해 갔고 1972년도에는 공소 종탑이 건립되고 1977년도에는 공소 출신 유종환(마태오) 사제의 서품이라는 큰 경사를 맞았다. 이후 공소 목재가 헐고 건물이 낙후해지면서 1990년 공소 옆 건물을 매입하였는데 228m의 공소 부지 매입금이 당시 백미 80kg 여섯 가마니라고 적혀 있다. 오래된 공소의 회계 장부를 보면 1971년 8월 29일, 첫 기록에 봉헌금 471원으로 시작하여 종탑 희사금, 성체조배헌금, 신학생 후원금, 특별헌금이 조목조목 30년 가까이 기록되어 있다. 신자들은 아무리 어려운 살림에도 봉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신앙을 실천했다. 공소신자들의 헌신적인 봉헌으로 1992년도에 현재의 공소건물(47.5m)이 건립되었고 문규현 신부 재임 시 감실이 설치되어 ‘지속적인 성체조배회’가 만들어졌다. 1996년도에는 ‘천사들의 모후 쁘레시디움’(초대단장=전판술)이 창단되어 지금껏 공소를 든든히 떠받치고 있다.
사순시기에 매일 무릎을 꿇고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해서 지금도 무릎을 잘 꿇으신다는 공소 1세대 어르신들, 방학이면 공소에 내려와 교리와 성가를 가르치고 어디에서건 성실한 신앙생활로 모범을 보이는 2세대 공소 신자들. 그러나 이제는 점차로 적막해지는 공소에는 활성화를 위한 3세대 신자들의 유입이 필요하다.
20여 년 전에 귀향한 광활공소 구역장 노완진(크레센시오) 형제는 “어르신들이 한 분 두 분 돌아가시면서 공소 식구가 주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라며 감자농사로 유명한 광활지역에 귀농 신자들의 유입으로 공소가 활성화되기를 희망했다. 광활공소는 고령의 어르신들을 위해 매주 목요일 본당사제가 평일미사(하절기-오후 3시, 동절기-오후 7시 30분)를 집전하러 오신다.
공소 취재가 있던 날, 정세진 신부는 “하느님이 뿌리신 좋은 씨앗을 키워나가자”며 10명 남짓한 공소 식구들을 격려하였다. 공소 마당의 잘 가꾸어진 채송화 꽃밭을 보며 90여 년 전 하느님이 공소에 뿌리신 좋은 씨앗이 신앙의 유산으로 면면히 내려와 꽃을 피우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취재 | 오안라(교구 기자단), 사진 | 김창식, 원금식(교구 가톨릭사진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