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교구의 작은교회 공소를 찾아서(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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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0-02-07 조회 2,511회본문
청호 저수지를 보듬고 있는 부안 돈지공소(부안성당 관할, 주임=박대덕 신부)는 부안군 계화면 돈지 1길 65에 위치하고 있다. 1977년부터 정읍 산내, 임실과 기타 신태인, 동막, 함열 등지에서 신자가 포함된 이주민들이 새로이 조성된 간척지로 이전해 오면서 형성되었다. 당시 돈지에는 영세받은 신자들이 4가구라서 공소라고 부를 수도 없을 정도로 천주교 활동이 미미하였다. 초대 김인택 미카엘 회장 때부터 신자들 집에서 공소예절을 하였는데 극심한 생활고와 타종교 신자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은 밭일, 논일을 마치고 저녁 시간이나 틈날 때마다 전교 활동을 하였다. 1986년 2대 이만호 이냐시오 회장이 기부한 건물에 ‘돈지 천주교회’ 간판을 걸고 본격적인 공소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988년 부안본당 신석만 그레고리오 형제의 교리로 어린이를 포함한 17명의 영세자를, 1993년 12월에는 부안본당의 협조로 수녀 2명을 초청하여 45명의 영세자를 배출했다.
1989년 3월 ‘로사리오의 모후Pr.’이 설립되어 농번기에도 주회에 출석하고 환자 방문, 쉬는 교우 방문,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선교활동을 통해 공소 신자의 수가 증가하여 1996년에는 68세대 120여 명에 이르렀다.
부안성당 설립 70주년 사업의 일환으로 대지 430평, 건평 50평의 경당을 신축하여 1996년 7월 23일 당시 전주교구장이었던 이병호 주교님의 주례로 경당 봉헌식을 성대하게 치렀다.
새 경당 신축을 위해 신자들은 김과 젓갈류들을 교구 내 본당을 다니며 판매하였고 김 공장에서 일한 돈을 기금으로 봉헌하기도 했으며 가톨릭신문과 가톨릭평화신문 등 교회언론에도 보도되어 각지에서 답지한 성금으로 신축기금을 마련, 신자들의 땀과 기도로 경당이 지어졌다.
공소 건물로는 경당과 2000년 3월 지어진 교육관이 있으며 공소 뒤편에는 문규현 신부님이 폐교(의복초등학교)를 정비하여 2002년부터 운영한 새만금 생태 대안학교 ‘시선’도 덩그러니 남아 있다. 한때 수녀님 두분이 생활하셨던 교육관은 회합실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돈지공소는 32세대이며 주일미사와 공소예절 참여 인원이 30명, 부활, 성탄 판공성사 참여인원이 35명이고 쉬는 교우도 20명가량 된다. 신자들 연령도 60~80대이고 형제님은 5분이고 자매님들이 대부분이다.
매월 셋째 주일 오후 5시 미사, 넷째 주일 오후 5시 공소예절을 하고 있으며 첫 주와 둘째 주는 부안본당에서 미사를 참례하고 있다.
제단체 활동으로는 매주 금요일 저녁 7시에 여성 단원 7~8명이 회합을 하는 ‘로사리오의 모후Pr.’(단장=김미순 데레사), 2개 반의 매월 1회 반모임, 월 1회 모이는 성모회(회장=이옥례 마르타)가 있다.
공소만의 행사로는 설립기념일 나눔잔치와 성지순례가 매년 있으며 지난해에는 경기도 광주 천진암에 다녀왔다.
1971년도에 돈지로 이사 와서 돈지공소의 증인으로 살아온 김용운(토마) 회장님은 공소 4대 회장과 부안본당 사목회장으로 봉사하셨다. 그 후 2015년부터 다시 6대 회장으로 공소를 위해 헌신하고 있으며, 공소의 역사와 기록을 모아서 정리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갯벌이 사라지면서 젊은이들도 도시로 떠나버렸고 과거 성탄예술제와 판공성사 때면 아이들과 신자들의 활기와 미소로 채워졌던 돈지공소는 이제 적막하다.
토마 회장님과 여러 어르신들의 바람처럼 쉬고 있는 40~50대인 교우들이 나와서 활동한다면 공소에 활력이 되고 큰 힘이 될 것이다.
공소 주보성인인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성인께 돈지공소 어르신들의 영육 간 건강과 평화를 전구해본다!
취재 | 이미원 기자(교구 기자단), 사진 | 최기우, 전미자(교구 가톨릭사진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