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진소 대건안드레아 신부 장례미사 및 고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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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4-09-25 조회 431회본문
故 김진소 대건안드레아 신부(향년 84세)의 장례미사가 9월 18일(수) 오전 10시 30분 중앙 주교좌성당에서 이병호 주교 주례로 교구 사제단, 수도자, 유가족 및 신자 등이 함께한 가운데 봉헌 되었다.
이 주교는 강론에서 “한평생 스스로 연구해 오신 초기 우리 교회 역사의 순교자들, 그에 못지않게 그 삶의 방식으로 복음을 증언해 온 수많은 사람들, 그분들의 모습 그대로 살아온 김진소 신부님을 오늘 하느님 품에 안겨드린다.”라고 추모했다. 실로 故 김 신부는 생전 “내 일생의 답은 우리 선조들의 믿음살이다. 우리 교구의 교회사를 쓰면서 삶으로 신앙을 증거 한 푸른 순교자들이 많아 행복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김 신부는 1940년 충남 금천에서 태어나 군산 둔율동본당에서 세례를 받고 1972년 사제로 서품 되어 중앙 주교좌본당 보좌신부를 시작으로 임실·순창본당 주임을 거쳐 1973년 대건신학대학(광주가톨릭대의 전신)교수로 재직하며, 한국교회사를 집필하겠다는 뜻을 세웠다. 1975년 화산본당(현 나바위성당), 1977년 둔율동본당 주임을 역임한 후 1982년 교구사 편찬을 담당하며 5년여 동안 전국 564개 공소를 답사, 1983년 호남교회사연구소를 설립했다. 1988년 천호성지 피정의 집, 1992년 호남교회사연구소를 전담했고 1995년 전동성당 100년사를 발간, 1998년 교구사 연구 20년의 결실인 <천주교 전주교구사Ⅰ,Ⅱ>를 봉정했다.
배낭에 지도와 나침반, 녹음기, 고문서를 들고 전국을 누비며 “오직 순교자들처럼 살고 싶고 늘 책상 위에서 죽는 게 소원”이라던 김 신부는 9월 15일(주일) 오전 6시 전북대병원에서 숙환으로 영면에 들었다. 유해는 치명자산성지 성직자 묘역에 안장됐다.
| 현화진(교구 기자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