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교구의 작은 교회 공소를 찾아서(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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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2-04-05 조회 1,396회본문
황등성당(주임=정광철 신부) 관할 익산시 함라면 왈인길15. 붉은 벽돌로 쌓인 담장을 돌아서 들어가면 신등공소를 만나게 된다.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어서 발아래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신자들의 집 지붕이 보인다.
초대회장인 이승훈(요셉) 형제가 옹기 가마를 운영하며 자신의 집에서 신부님을 모시고 미사를 드리다가 1941년 돌 많은 땅을 신자들이 일궈서 신등공소의 터를 잡았다.
장영식(요한, 3대 공소회장)형제는 초등학교 입학 전에 공소 짓는 모습을 보았는데 칠목 목수들이 비신자였지만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가 “천당에 올라간다.”라는 말을 하며 일을 했다고 한다. 공소회장이 되고 신부님이 고해성사를 주시러 오시면 공소 방에서 같이 잠을 자며 시중을 들고, 식사는 식비전이라고 해서 신자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걷어 준비했다.
김영희(마리아) 자매는 강당 집(공소에 딸린 부속 건물)에서 17살까지 살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릇 장사를 하시며 생계를 이어가고 저녁밥을 할 때는 두 줌의 쌀을 따로 모아 두었다가 성당에 봉헌을 했다. 부모님은 초저녁에 싸우고도 다음날 새벽이면 나란히 앉아 연도 기도를 바치시며 신앙생활을 하셨던 분들이다. 어릴 적에는 아버지가 시간을 알려 주면 저녁 7시에 종을 쳐 저녁 만가 시간을 알려 주었다. 종을 치는 횟수는 정해져 있지 않았고 맑은 날에는 조금만 치고, 천둥이나 비가 내리는 날이면 종소리가 잘 들리도록 더 많이 쳤다. 또 아버지에게 혼나는 날이면 종을 치면서 화풀이를 했다며 옛 기억을 떠올리신다. 몇 년 전 황등성당 60주년 기념 책자에 사진을 넣으려고 최석환(치릴로) 형제(현 공소회장)가 종탑에 올라가 사진촬영을 했는데 종탑의 제작일이 1945년 8월 15로 표기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신옥희(마리아) 자매는 예전 공소에는 청년들이 아이들도 가르치고 신부님을 모시고 혼배성사도 했다고 하신다. 당시에는 경운기도 귀했는데 성탄 때면 공소 신자들이 경운기를 타고 황등성당에서 미사 후 귀가길이 얼마나 추웠던지 경운기에 뜨거운 물을 부어도 시동이 안 걸려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어 집에 오면 새벽 4시가 넘었다고 한다.
최 치릴로 형제는 건물이 노후 되어 여러 문제점이 생기자 직장에 한 달간 휴가를 내어 ‘돈 한 푼 없어도 하느님이 다 채워주신다는 마음’으로 공소 수리를 시작, 다행히 신자들의 자발적인 도움으로 일천만 원 상당의 공사비용을 부담해 주어 2013년 5월 24일 故 김윤섭 안셀모 본당 신부님을 모시고 새 단장을 한 공소 건물 축성식 및 성모의 밤 행사를 진행했다. 성모승천대축일이 되면 공소 옆 소나무 숲에서 본당 신자들과 함께 미사도 드리고 마당에서는 장막을 치고, 돼지 잡고 솥을 걸어 같이 밥을 해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는데 코로나19로 공소 문이 굳게 잠겨 있어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하신다.
3월부터는 매월 셋째 주 금요일 저녁 7시에 미사를 시작한다고 한다. 다시 종소리가 울리고 신자들이 공소에 모여서 미사를 드리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도한다.
취재 | 송병근 스테파노(교구 기자단), 사진 | 김원웅 토마스, 손현옥 말가리다(교구 가톨릭사진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