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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의 작은 교회 공소를 찾아서(28)

작은 일에도 성실히 교회 공동체를 지켜온 안성공소교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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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1-06-10 조회 1,88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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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신부님(무주성당 주임)과 안성공소 신자들과 함께 단체사진
최종수 신부님(무주성당 주임)과 안성공소 신자들과 함께 단체사진

안성공소(회장=임병언 바오로)는 무주성당(주임=최종수 신부)과 칠연폭포 가는 길목에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공소 설립된 지 38년 된 곳, 지역주민들과 타 지역에서 오가는 공무원들이 신앙의 끈을 놓지 않고 다 같이 모여 공소 예절을 하는 정겨운 모습인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다. 필자도 이곳에서 영세를 하여 더욱 친근한 곳이기에 마치 친정에 온 듯한 마음으로 3년 동안 살았던 감회를 느끼며 김태수(베드로, 전 공소회장)형제를 만났다.

1983년 이태섭(바르나바) 형제의 집 한약방 2층에서 세 가정이 모여 공소 예절을 시작했고 차차 신자들이 모여 1984년부터는 본당 전교 수녀가 방문하여 교리와 영적 지도를 했으며, 당시 무주성당 이상섭(모이세) 신부가 공소 설립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1985711일에 첫 미사를 봉헌함으로써 공소 모임이 시작되었고, 이 날 첫 쁘레시디움인 구세주의 어머니가 창단을 했다.

단장은 이종남(사도요한)형제가 맡았고 서기를 맡았던 오옥환(벨라뎃다, 현 남원 쌍교동성당) 자매는 그때가 본인에게 신앙적으로 가장 성숙하던 때가 아니었나 생각한다며 성서 읽기, 쓰기, 쉬는 교우 인도, 예비신자 모집 등 열과 성의로 하느님 사랑에 푹 빠져 열 명 대녀의 대모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끝없는 사랑에 감격하며 밤새워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고 1989년 요한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오신 제44차 세계성체대회 때 새 옷을 사서 입고 공소 신자들과 다녀왔다고 한다.

그 후 공소의 모임은 지속되었지만 공소에 성전이 없어 김 베드로 형제는 작아도 우리 성전을 만들기 위해 안성에서 나오는 농특산물(천마, 표고버섯, 산야초, 인삼, 김장 때는 수산물)을 반딧불 축제와 다른 성당에 가서 판매하는 등 공소의 모든 신자가 공소 성전 건립에 앞장섰다. 당시 함박눈 오던 날 목포에서 물건을 트럭에 싣고 오다 미끄러져 사고가 나기도 했으나 다른 성당에서 물건을 사주시며 수고한다고 건네주시던 신자들의 말이 너무 고맙고 힘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9천여 만 원을 모아 19946월 박중신(시몬) 신부 때 마침내 공소 부지 770평을 매입하였고 19957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1210일에 공소의 성전을 준공하였다. 그 후 공소 옆에서 회장님이 직접 거주하면서 여름이면 피정의 집을 운영하였다. 오셨다가 가시는 분들이 누추한 곳에서 지내시면서도 아무런 불평 없이 좋았다고 하실 때 미안함과 죄송함을 느끼기도 했다고 한다.

대축일 날 본당에 갈 때는 용달차를 타고 찬바람 맞으며 깔깔거리며 지냈던 공소 생활, 지금은 다 흩어졌지만 가끔씩 만나 그때 얘기를 하면 웃음꽃이 핀다고 한다.

학교에서 동창회를 하듯 안성공소를 다니셨던 분들과 모여 피정하는 게 바람이라고 공소회장은 말한다. 영세를 하고 몇 년 뒤에 공소회장을 하게 되어 지금까지 30년 넘게 공소 지킴이를 하다 보니 산 증인이 되었고 공소를 짓기 위해 열정적으로 기도하며 물건을 팔러 다녔지만 행복했다고 하신다.

마치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마태 25,21)는 말씀처럼 지금까지 공소를 지켜 왔다고 하시며 신자들과 함께 다 같이 모여 기도하며 만나는 주일이 기다려진다고 한다. 

취재 | 한창님 마리아(교구 기자단), 사진 | 김대평 마태오, 원금식 대건안드레아(교구 가톨릭사진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