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교구의 작은 교회 공소를 찾아서(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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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9-06-03 조회 3,435회본문
신앙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한 익산공소
1974년 4월에 설립하여 익산시 왕궁면 온수리에 위치해 있는 천주교 익산 공소(상삼례성당 관할, 주임=박찬길 신부)를 찾았다.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농경지와 축사를 지나 한옥 지붕에 종탑이 보였다.
토요일 오전 10시 미사 전 20여 명의 신자들이 성가 연습을 하고 있다. 독서자의 목소리는 어르신이라 믿어지지 않았다. 낭랑한 목소리로 전례를 담당했던 전바울라 자매는 27살에 시집와 현재 72살이라며 이곳에서 46년째 살고 있다. 큰아이는 유치원 1회 졸업생으로 46세이며, 공소에서 가장 젊은 분은 66세라고 한다.
미사 후 각 전례 시기에 맞는 기도를 바치고 대축일에는 상삼례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며 그 다음주에는 공소 신자들의 각 가정에서 준비한 음식 나눔 잔치를 한다. 불편한 몸들이지만 미사에 참석하여 반갑게 인사하시는 모습에서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불편한 어르신들은 전동 훨체어로 이동을 한다.
현 공소 회장 정안드레아 형제의 배려로 요양원에 계시는 박도미니코(84세) 전 회장을 만날 수 있었다. 도미니코 형제가 46년 전부터 기록한 노트를 보았다.
익산공소는 소록도에서 열심히 하느님을 섬기며 살고 있었던 13명의 한센인 신자들이 익산농장으로 이전하여 뿌리내리게 되었다. 이미 익산농장은 개신교 신자 600여 명이 살고 있었고, 천주교 신자는 세 가정뿐이었다. 살림을 내려놓고 갈 곳도 없고 큰 향나무 아래에서 밤을 지새우고 그 후에 도착한 다른 가족들도 함께 문도 없고 구들도 없는 현 남촌부락에 7세대가 자리를 잡았다.
농장에서는 천주교 신자라 하여 사료도 주지 않는 따돌림을 받았다. 그럴수록 서로 의지하고 나누며 농사를 짓고 힘을 합쳐 비닐하우스에서 함께 기도했다.
혈기 왕성한 젊은 시절, 날을 밝히면서도 힘든 줄 모르고 농장 일을 하면서 공소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강임마누엘 형제(古人)와 박도미니코 형제 등 농장에서 공소를 짓는다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자체 자금이 없어 더욱 힘이 들었다. 그래서 당시 후정리본당(당시 주임=서석기 신부, 현재 삼례성당)에서 백미 10가마 값과 회장들의 현금을 지원받았다. 시작은 했지만 공소 부지를 찾는 것도 어려움이 있었다. 현 공소자리를 사들여 1975년 5월에 기공식을 하고 6월에 익산공소가 완공되었다. 그 고생을 말로 다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성모병원(창인동)에 계시던 예수수도회 수녀들이 공소 신자들을 많이 돌봐 주다가 마침내 수도회 지원으로 1980년 7월 수녀원이 완공되고, 공소발전과 신자들을 돌보며 아이들 교육을 위해 1984년 3월에 성모유치원을 개원하였다. 1986년 6월에 수녀원을 증축하면서 공소 신자가 60여 명으로 늘어나고, 유치원아도 100여 명으로 공소와 함께 발전되었다.
전국 정착마을 교리 경시대회에서 초등학교 3등, 초·중·고 성지순례, 레지오 학생 옥외 행사, 성모의 밤, 성탄 대축일 행사, 청년봉사활동, 장례미사 등 사진 자료를 보면서 신자들의 기도의 힘에 가슴이 뭉클함을 느꼈다.
현재 익산공소는 젊은이들이 도시로 빠져나가 대부분의 신자분들은 연로하여 선종하시거나 요양원으로 들어가신 분도 많이 계신다. 거동이 불편하여 집안에서만 생활하시는 어르신들은 주일 미사만 겨우 참례하면서도 공소 청소만큼은 함께 돌아가며 하고 계시다.
오늘도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따뜻한 은총이 함께하길 바란다.
취재 : 이진주, 사진 : 김도숙 기자(교구 기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