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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의 작은 교회 공소를 찾아서(6)

산골짜기에 울려 퍼진 복음의 메아리 되재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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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9-04-15 조회 2,82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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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한옥성당으로 알려진 되재성당. 골짜기마다 복음의 메아리가 울려 퍼지던 초대교회를 뒤로하고 이제는 호젓한 공소로 남아있다.
되재공소가 자리하고 있는 완주군 화산면 승치리는 조선후기 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자들이 중심이 된 신앙 촌락이다. 증조부를 따라다니며 복사를 섰다는 송인환(루카, 73) 공소회장은 “4대, 5대 조상들의 묘를 이장할 때 보면 묵주와 고상이 나와요. 이곳이 뿌리 깊은 신앙 터임을 보여줍니다.”라고 말한다. 되재는 삼면이 산으로 둘러있고 매우 힘든 고개라 해서 ‘되재’(升峙승치)로 불렸다고 한다. 소쿠리처럼 오목한 피난처에서 신앙의 꽃을 피워내던 교우들의 삶이 숭고하게 여겨진다.
고산지역에는 1891년 프랑스 우도 신부가 담당신부로 파견되면서 교회가 탄생한다. 우도 신부는 40여 개의 교우촌을 바탕으로 백석에 본당을 설립하였다. 그 후임인 비에모 신부는 향후 선교비전을 따라 되재로 본당을 이전하고 성전을 신축하게 된다.
되재 공동체는 1895년 ‘성령강림 대축일’에 새 성전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그때 상황을 비에모 신부는 “이 성당은 400명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크다. 주일마다 거의 가득 차고 축일에는 많은 사람들이 문간에 서 있어야 한다. 교우들 대다수가 매일 성체조배를 하려고 한다.”라고 기록하였다. 산골 마을에 복음의 메아리가 얼마나 충만했는지 짐작이 간다.
1896년 11월에 본당은 제8대 조선교구장이었던 뮈텔 주교 집전으로 성전 축성식을 거행했다.

그러나 수려한 한옥성당은 한국전쟁 때 화재로 전소되고 본당의 역할은 인근 고산성당으로 옮겨갔다. 두 차례 공소회장을 역임한 이영선(스테파노, 82) 형제는 “그 옛날 불에 탄 성당을 다시 짓느라 애먹었어요. 신자들이 나무를 베어서 지게로 짊어지고 왔지요. 쑥 뜯어서 죽 끓여먹던 때였지만 모두 성전 복구에 열심이었지요.”라며 희미하게 빛바랜 옛 공소사진을 보여준다. 그때가 교회의 가장 번창한 시기였다. “초등학생이 100명이 넘었지요. 공소는 아이들로 북적였고 마을 청년들은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혼인이나 장례에도 많은 교우들이 함께했지요. 염을 거두고 연도를 함께 바치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호감을 샀습니다.” 형제님은 이불속에서, 어머니 품 안에서 기도를 배웠다고 한다. “선친이 6.25 사변 이후 되재공소의 초대회장이었어요. 지금 3대가 같이 사는데 가족들이 매일 저녁 9시면 모여서 묵주기도를 바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공소에 새 일꾼 보내 주십사고 기도해요.”라고 말한다. 곁에서 루카 형제도 자신 만의 사도행전을 펼친다. “12살 무렵 축일에 미사참례를 위해 고산성당까지 가는데 5시간이 걸렸어요. 밤 미사 후에 성당 사랑방에서 빵도 먹고 이야기꽃도 피우다 잠들었지요. 이튿날 걸어오는데 배가 너무 고파 개울물을 마시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되재공소 뒷산에는 이곳에서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두 외국인 사제의 묘소가 있다.
“신부님들은 신자 하나를 만나려고 산을 넘어 다녔고, 눈비가 내려도 전교 활동을 쉬지 않았답니다. 과로에 열병까지 겹쳐서 쓰러졌어요.” 가난하고 척박한 조선 땅에 들어와 젊음과 열정을 바친 선교 사제들. 그들이 잠들어 있는 언덕에 따사로운 봄 햇살이 감돈다. 되재공소는 현재 19가구 30여 명의 교우가 있지만 혼자 사는 세대도 많고 고령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주요 절기에는 15~16명이 공소에 함께 모여 성경읽기, 묵주기도와 십자가의 길을 바친다. 

김병희 신부(고산성당 주임)이 지역은 귀농자도 없고 젊은 층도 귀해요.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순례객들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는데 본당 교우들이 일손을 거들고 있습니다. 공소의 고령화는 교회가 막을 수 없는 큰 흐름이지요.”라고 말한다. 성경에서 광야는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이다. 우리의 시선을 하느님께로만 집중하게 하는 곳. 사방을 둘러봐도 오직 그분의 숨결만을 느끼게 하는 공소야 말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진정한 광야임을 깨닫는다.

 

취재 : 신현숙(교구 기자단), 사진 : 백인, 원금식(교구 가톨릭사진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