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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의 작은 교회 공소를 찾아서(1)

-소박한 신앙의 고향 신평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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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8-08-13 조회 3,293회

본문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은 신앙 안에서 더 권위를 갖는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신앙을 사셨던 분들’, 신평공소 신자들이 증언하는 공소 신앙선조들의 모습이다. 신평공소(연지동성당 관활, 주임=이태신 신부) 신앙의 불씨는 초대 공소회장이었던 김기만(타대오) 형제에 의해 지펴졌다. 1948년, 정읍 신평리로 이주해온 김기만 형제는 마을의 애경사에 적극 나서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애덕을 실천했다. 천주교에 관심을 보이는 주민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교회의 구호물자를 주민들과 나누며 마을 유지로 존경을 받았다. 행동으로 신앙을 실천하는 모습에 예비신자들이 급증했고 1952년에는 97명의 예비신자가 세례를 받으며 신자수가 119명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정읍성당(현 시기동성당)관활 신평공소가 설립되었고 1985년에는 연지동성당으로 관할이 이전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공소 설립 초기(1959년)에는 김기만 회장의 집을 매입하여 미사와 공소예절을 드리다가 1976년에 새 공소 건물 대지를 매입하여 1977년 8월, 지금의 공소건물을 준공하였다.
현 공소건물 준공 후 40여 년의 세월이 흘렸다. 공소의 주인이던 신자들이 도시화의 영향으로 하나, 둘 공소를 떠나고 이농(離農)은 공소의 고령화로 이어졌다. 초대 김기만 회장의 동생이며 열정적인 선교로 신평공소의 대들보 역할을 해왔던 김기순(마리아) 자매가 작년 겨울에, 종각을 봉헌했던 유정기 형제의 며느리 김쌍녀(수산나) 자매가 올봄 하느님 품으로 떠나면서 현재 신평공소는 10여 명의 어르신들이 공소를 지키고 있다.
공소어르신들이 추억하는 공소신앙 안에는 철저한 기도가 자리하고 있다. “조과(아침기도, 삼종기도)를 바쳐야 아침밥을 먹었어요. 성탄이 되면 함께 공소에 모여 합창도 하고 연극도 하면서 밤새 공소 축제를 했어요. 그러다 아침이 되면 추운 줄도 모르고 먼 길을 걸어 본당에서 미사를 했지요.(송순희 데레사)” 공소 신자들은 부모님의 철저한 신앙 가르침을 골수에 새겼다. “할머니가 늘 ‘요만큼도 죄짓지 말라’고 하셨어요. 고향을 떠나 있을 때도 하느님의 법대로, 원리원칙대로 살려고 노력했습니다.”(이길연 요셉, 83세, 2대 공소회장) 이길연, 송순희 부부는 25년간의 타향살이를 마치고 3년 전 귀향했다. 이들의 귀농을 제일 반긴 사람은 2002년부터 12대 공소회장을 맡고 있는 이갑수(토마스, 66세) 형제이다. 이갑수 형제는 금전적인 어려움보다 공소 신자가 줄어드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토로했다. 신자수가 줄어들면서 한 때 공소예절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당시(2013년) 연지동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김선태 주교의 권유로 공소예절을 이어나가며 신앙의 요람인 공소를 지켜나갔다. 점차 낡아가는 공소를 2009년도에는 십시일반 힘을 모아 지붕과 창틀, 바닥 등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했고, 3년 전에는 오래전부터 벼르던 종탑 공사도 마쳤다.
공소의 겉모습은 소박하고 투박했다. 그러나 낡은 신자석과 소박한 14처의 액자, 공소를 지켜왔던 공소 신자들 안에는 소박함을 넘어선 신앙의 진지한 기운이 있었다.

신평공소는 매월 첫 토요일, 저녁 7시 30분에 공소미사를 봉헌한다. 공소미사가 있던 7월 7일 저녁, 공소미사를 알리는 종소리가 온 마을에 울려 퍼질 때 10여 명의 신자들이 함께 한 공소안에 평화의 기운이 가득했다. 공소는 신앙의 기초이며 마음의 고향이고 성소의 뿌리이다. 우리 교회의 소중한 영적유산이기에 함께 지키고 보호해야 할 하느님의 선물이다. 외형적으로 잘 보존하기 위한 노력과 함께 공소신앙을 지켜나가는 공소 신자들의 신앙을 기억하는 것 또한 우리 신앙의 몫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오안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