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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하느님의 종 순교자 현장조사_서장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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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6-06-03 조회 94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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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박해(1801년)와 병인박해(1866년)로 참수당한 순교자 124위 시복 시성을 로마 교황청에 청원하기에 앞서 전주교구내 24위 순교자 시복조사를 하기위한 조사위원 일행이 지난 6월1일(목) 전주교구를 조사차 방문했다. 시복 준비 조사위원장 박정일 주교(경남 마산교구장 은퇴)와 류한영 신부(시복사무실 총무),이상국 신부(동 검찰관), 김진화 신부(동 담당관), 장 글라라 자매(동 직원)등 5명의 조사위원 일행과 교구장 이병호 주교와 관계자등이 교구청 소회의실에서 자리를 함께했는데 이병호주교는 조사위원들을 크게환영하고 그 노고를 치하했다. 이어 10시정각에 현장 조사 법정이 개정되어 조사단 일행과 취재단은 두대의 승합차에 나누어 탑승하고, 4명이 참수당한 첫 조사지인 남문밖 전동성당의 답사를 시작으로 조사가 시작됐다. 모두는 조사지에 도착하면 시복 시성 기도를 바치고 그곳 신자와 신부를 통해 상세한 증언을 청취하고 그를 토대로 기록을 확인한다음 기념 사진을 촬영하는 방식으로 조사가 진행됐다. 12명이 순교한 전주 숲정이, 6명이 순교한 전주옥, 치명자산, 초남이, 1801년7월18일 참수당한 한정흠 순교지 (김제 요촌 장터부근)와 다음날인 7월19일 고창 공음 개갑장터에 끌려와 참수당한 최여겸 순교지인 공음면 갑촌리를 답사하고 고창 문화원장 이기화(네오) 형제의 고증에의한 상세한 증언을 청취한것을 끝으로 오후5시15분에 답사를 모두 마첬다. 이날 조사단은 순교자 유항검 유중철 유문석 이순이 유중성 5위의 유해와 2위의 그 가족 유해까지 온전히 발굴되어 치명자산 정상 유택에 합장 보존되어 있음에 크게 놀라워 했다 그리고 처형은 일반적으로 나뭇잎이 떨어지는 계절에 집행되었고 주민들이 천주교도의 사형 집행을 보고 천주교를 믿지못하도록 전시효과를 극대화 할수있는곳을 사형터로 삼었음이 알게됐다. 오후7시30분경 교구청에 돌아온 조사단은 소회의실에서 이병호 주교와 관계자가 다시 자리를함께하고 주교 박정일 조사위원장의 확인서명을 받는것을 끝으로 폐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