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화] 2023년 제42회 인권 주일, 제13회 사회 교리 주간 담화, 강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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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11-23 14:41 조회897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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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회 인권 주일, 제13회 사회 교리 주간 담화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책임은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제42회 인권 주일입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지난 1982년부터 대림 제2주일을 인권 주일로 정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에 대한 우리 교회의 자각과 각성을 호소”(제1회 인권 주일 담화)하였습니다. 이는 교회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우리 사회 안에서 인권 향상을 위하여 더욱더 노력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 다시 인권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의 현실에서 인권 증진을 위하여 절실히 요구되는 몇 가지를 간절하게 호소하고 싶습니다.
먼저,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에게 우선적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그들은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무시받고 멸시당하고 사회에서 소외되는 등 부당한 희생자가 되어 왔습니다.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친구가 되고, 그들의 고유한 삶을 소중하게 여기며 그들의 존엄을 인정하고 보장하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그들을 점점 변방으로 밀려나게 만든 사회적 조건을 바꾸고자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모든 형제들」, 186항 참조). 사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 빼앗기고 내몰리는 이웃을 위하여 적극 나서는 일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선택 사항이 아니라 당연한 의무입니다.
둘째, 온갖 배척과 불평등을 멀리하고 균등한 기회를 마련하여야 합니다. 인권을 참으로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개인이나 사회단체의 권리만을 보호하거나 옹호하는 일은 반드시 피하여야 합니다. 국민들 사이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불평등에 대하여 공권력이 적절히 대처하지 않으면, 특히 오늘날에는 위기 상황이 더욱 확대되어 결과적으로 인간의 기본 권리들은 그 기능을 잃고 개인의 의무를 이행하는 일도 위험에 놓이게 됩니다(「지상의 평화」, 63항 참조). 따라서 인권을 참되게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하여 평등한 환경을 이루도록 다 같이 노력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국가와 사회 공동체가 단 한 사람의 구성원도 포기하지 않고 세심하게 돌보며, 이에 합당한 법과 제도를 마련하도록 촉구하고 지켜보아야 합니다. 사실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온갖 형태의 공격과 분쟁은 계속 싹을 틔울 토양을 찾고 언젠가는 폭발하기 마련”(「복음의 기쁨」, 59항)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노동자의 존엄성과 안전이 더욱 보장되어야 합니다. 물론 지금 우리 사회는 이전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노동 조건과 노동자의 권리 또한 어느 정도 향상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봉사하여야 할 ‘경제의 도덕적 차원’(『간추린 사회 교리』, 330-335항 참조)은 오히려 악화되었습니다.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소득 격차는 더욱 심화되고, 모든 노동자는 같은 권리와 존엄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사업장 규모에 따라 차별받을 뿐만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 남과 여, 내국인과 외국인 노동자 사이의 차별과 갈등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그 근본 원인은 이윤 축적을 위한 자본의 탐욕과 비인간성 때문입니다. 비용 절감을 위하여 법조차 무시할 뿐만 아니라, 위험한 작업은 하청‧비정규직 그리고 이주 노동자에게 떠맡긴 채 그들의 죽음에는 무관심한 행태는 사라져야 합니다. 정당한 노동 권리를 요구하고 연대한다는 이유로 정신적 물질적 불이익을 주는 행위 또한 사라져야 합니다. 특히 하도급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은 강화되어야 하고 노동자의 연대 활동에 대한 지나친 경제적 법적 제재는 제한되어야 합니다.
넷째, 사형 제도는 폐지되어야 합니다. 최근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범죄들이 우리 사회를 큰 불안에 빠뜨렸습니다. 이에 정부는 ‘가석방 없는 무기 징역’ 제도의 도입을 공식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나아가 교정 시설 네 곳에 ‘사형 시설 점검’을 지시하였습니다. 그러나 강력한 형벌만으로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학계의 오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형을 비롯한 강성 형벌 정책이 범죄 발생을 억지할 수 없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사형 집행을 재개하거나 강력한 형벌을 새로 도입하는 것으로 범죄를 예방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범죄가 발생하는 근본적 원인을 찾아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면서 범죄 자체를 줄여 나가는 것이 사회 안전망 구축에 실질적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우리가 기억하여야 할 것은 “살인자조차도 인격적인 존엄성을 잃지 않으며, 하느님께서 몸소 그것을 지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생명의 복음」, 9항) 일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사형은 용납할 수 없다.’라고 확언합니다”(「모든 형제들」, 263항).
다섯째, “모든 전쟁은 그 이전보다 훨씬 나쁜 세상을 남겨 놓습니다”(「모든 형제들」, 261항). 지난 해에 일어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을 비롯하여 올해 시작된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고, 지금도 어린이들을 포함한 민간인들이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그 어떤 이유를 붙여도 전쟁은 인권을 침해합니다. 올해는 한국 전쟁이 멈춘 지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럼에도 남과 북은 대화와 소통을 중단한 채, 여전히 힘의 논리와 무력 증강에 치우쳐 불안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 무기와 폭력이 해결을 가져다주기보다는 오히려 새롭고 더욱 심각한 분쟁을 조장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복음의 기쁨」, 60항). “공포심에 기반을 둔 균형은 실제로 공포를 증폭시키고 민족들 사이에 신뢰 관계를 약화시킵니다”(「모든 형제들」, 262항). 따라서 무력이 아닌 평화적 수단 곧 대화와 타협으로 남북의 긴장과 갈등은 해결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인권은 “바로 인간 자체에서 그리고 그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에게서”(『간추린 사회 교리』, 153항) 비롯되기에 가장 근본적인 권리입니다. 이러한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여야 하는 책임은 정치 공동체만이 아니라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에게는 인권을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수호하고, 더 공정하고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여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의 깊은 관심과 능동적인 참여 그리고 연대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인권과 평화를 우리 각자의 삶에 초대하여 기쁨을 만끽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023년 12월 10일 대림 제2주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김 선 태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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