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은 모습[송천와룡-정성려 서화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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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06-11 10:26 조회2,17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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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창세기 1장 25절에 하느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것을 보고 끊임없이 관상 하시며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라고 하셨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참 좋은 모습일까요? 하느님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부천에 사는 손자와 손녀가 유아세례를 받은 날이다. 마음 같아서는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서 축하를 해주고 예쁜 모습을 꼭 안아주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시간이 여의치가 않았다. 둘째딸이 영상으로 보내주는 사진을 보며 흐뭇해 할 뿐이었다. 둘째딸 부부도 지난해에 나란히 세례를 받았다. 사위가 어려움 없이 쉽게 마음의 문을 열고 직장일로 바쁜데도 빠지지 않고 교리를 받았다고 했다. 그 날은 뜻깊은 날이라 시간을 내어 남편과 함께 부천 성당에 가서 축하를 해주었다. 곧 이어 몇 달 뒤 손자와 손녀도 유아세례를 받게 한 것이다. 천방지축처럼 덤벙대는 손자가 성당에 가면 얌전하고 율동도 잘하고 손을 모으고 기도도 한다니 기특했다. 손주들까지 모두 세례를 받으니 나보다 남편이 더 좋아했다. 모두 남편의 바람이었을 테고 남편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다. 남편의 기도 제목은 성가정을 이루고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제 우리 가족은 딸 4명과 사위와 손주들까지 모두 세례를 받고 성당에 다니게 되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남편은 내남동생과 여동생, 제부, 조카, 그리고 마을에 사는 선후배들 까지 많은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여 세례를 받게 했다. 그리고 우리 마을은 농촌 마을이다 보니 형제자매들이 거의 연로하신 어르신들이다. 남편은 마을 교우님들과 레지오마리에를 잘 이끌어주고 있어 분위기도 좋고 매우 활성화되었다. 하느님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노력하고 성서읽기를 생활화하는 남편의 기도 덕이다. 하느님께서 남편의 기도를 들어준 것이라고 믿는다.
8년 전, 남편의 손에 이끌려 생각지도 않았던 성당에 나가 6개월 동안 교리를 받고 세례를 받았다. 교리를 받는 동안에도 덤덤한 나와는 달리, 남편은 열정으로 하느님께 다가섰다.
하느님은 여러 모습으로 하느님의 자녀로 부르신다는 말씀을 들었다. 하느님은 우리 가족을 특별한 모습으로 하느님 자녀로 부르셨다. 내가 갑상선암이라는 검사 결과를 받았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는 남편은 아내인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어 망연자실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 때 순간 떠오른 것은 하느님께 매달려야겠다는 생각이 스치고 성당을 나가기로 결심을 했다고 한다.
남편은 어릴 적에 어머님의 손을 잡고 한동안 개신교에 다녔다고 했다. 그러다가 자기가 가야 할 길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어머님의 손을 놓고 성인이 될 때까지 오랜 세월을 개신교와 담을 쌓고 살았다고 한다. 홀로 계신 어머님께 지극정성이던 남편은 천주교에 마음을 의지하고 싶었지만 연로하신 어머님의 마음이 아플까 봐 살아계실 적에는 선뜻 성당을 나가지 못했다고 했다. 그 때부터 마음이 개신교가 아닌 천주교에 있었고 어머님이 돌아가신 뒤에는 성당에 나갈 것을 마음먹고 있었지만 마땅히 끌어주는 사람이 없어 생각에서 멎은 상태였다. 나 또한 어머님의 적극적인 전도에 못 이겨 결혼 한지 3년 후에 며느리로서 효도하는 길이거니 생각하고 개신교에 따라 나가게 되었다. 개신교가 있는 곳까지 도보로는 꽤 먼 길이었다, 허리가 굽은 어머님은 지팡이를 짓고 앞장서고, 어린작은딸을 등에 업고, 큰딸은 손을 잡고 종종 걸음으로 어머님 뒤를 따라 가까운 지름길을 선택하여 좁다란 논길로 걸어 다녔다. 그 때 개신교 교인들이 보기에는 아름다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2년 넘게 다녀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불신이 쌓아갔다. 이런 식으로는 다니지 않는 것만 못할 것 같아 포기를 했다. 어머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지금 내가 성당에 다니고 보니 그 때 어머님의 마음이 많이 아팠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 그 때는 어머님께 불효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었지만 돌이켜보니 그 때의 선택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계신 하느님은 남편과 저를 함께 부르기 위해서 잠시 우리가 이겨내고 견딜 만큼의 고통을 주셨던 것 같다. 이제는 건강을 되찾고 열심히 살고 있으니 행복 2배다.
남편은 꿈에 세 번이나 하늘이 환해지면서 찬란한 빛이 쏟아지고 빛 사이로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하느님은 남편을 통해 우리 가족을 부르신 것이 분명했다. 남편은 성당에 나가면서부터 좋아하던 술을 줄이기 시작했고, 술친구들과 접하는 걸 자재하며 성서공부에 열심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매일기도로 시작하며 틈나는 대로 성서를 읽고 또 읽고 또 읽는다. 믿음은 먼저 시작했다고 해서 강한 것이 아니었다. 중년이 되어서야 하느님을 알게 된 남편은 예수님과 연애한다고나 할까? 내가 질투가 날 정도였다. 성서 백 주간의 성서공부를 마치고 꾸르실료를 다녀온 뒤, 열심히 성서공부에 전념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틈틈이 성서 필사에 정성을 다하더니 30개월 만에 끝을 보았고 5권의 책으로 예쁘게 엮어놓았다. 우리 집 가보가 되었다. 열심히 하는 남편의 모습을 볼 때 든든하고 좋다.
큰딸은 서울에서 오랜 기간 동안 하늘에서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렵다는 5급 고시공부를 했었다. 고집스럽게 옆을 보지도 않고 외길로 어려운 공부를 붙들고 놓지 않았다. 하느님 보시기에 길이 아닌 길을 가고 있어서 일까? 하느님께서 길을 바로 잡아 주신 것이다. 신경쇠약으로 심각한 우울증이 왔고 하느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하느님을 믿고 따르니 완전히 치유해주셨다. 그렇게 큰 딸도 하느님 곁으로 부르셨다. 지금은 하느님께서 인도해 주신대로 처음 목표보다 한 단계 내린 국가 공무원이 되어 서울에서 맡은 일에 충실하고 성당에 열심히 다니며 잘 지내고 있다. 남편의 기도 힘이 하늘에 닿았다고 본다.
그리고 셋째 딸은 어느 주일날 성당을 가려고 준비하는 내 곁에 오더니
“엄마! 나도 성당 가면 안 돼요?”
하는 것이었다. 하느님은 셋째 딸을 스스로 성당을 나가게 하셨다. 이 말을 들은 남편은 나보다 더 좋아서 했다. 그날부터 그렇게 성당에 같이 나가기 시작한 셋째 딸이다. 그 후
“우리 가족 모두 성당에 다니는데 너는 언제 성당에 갈래?”
남편이 막내딸에게 한 말이다.
남편의 한마디에 막내도 순종하고 따라 나서 동행하게 되었다. 얼마나 기특한지 세상에 모든 것을 얻은 기분이었다.
둘째딸은 결혼을 하여 부천에서 남매를 낳고 잘 살고 있다. 하느님의 부르심이었는지 손자를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어린이 집에 보내고 있었다. 둘째딸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더니 사위와 함께 나란히 세례를 받았다.
모두가 열심히 기도하고 성서 말씀에 따라 실천하며 살려고 노력하는 남편의 덕이라고 생각한다. 믿음이 강한 남편에 비해 믿음이 부족한 나는 그저 주일만 지켰을 뿐이었다. 오래 전 어느 날 남편의 강요에 이끌려 성령세미나를 참석하여 체험자의 간증을 들으며 많은 것을 깨달았다. 더없이 기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안수를 받는 긴 시간 내내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안수를 받을 때는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느껴왔다. 그 뒤 병원에 다녀도 이유를 모르고 났지 않던 발에서부터 몸이 붓는 부종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 왔답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이다.
우리 가족이 아니, 내가 성당에 나가기 전에는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막연하게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고 내가 사는 테두리 안에서 여유가 있을 때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며 바쁜 시간이지만 틈을 내어 남을 위해 봉사를 하고, 성실하고 선량하게 살면 천국에 갈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참 좋았다’는 창세기의 말씀처럼 우리 가족 모두 하느님을 믿으며 정말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은 성가정을 이루고 성령 안에서 말씀대로 기도하며 살도록 더욱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