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통한 신앙체험[서학동-김선애 가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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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9-06-11 10:23 조회1,99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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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은 사랑으로 지금도 사랑해주시고 변함없이 자비를 베푸시는 나의 하느님!
말씀 안에 뜨거운 사랑으로 다가오신 아버지, 이 모든 시간 찬미 영광 받으소서!
내가 처음 하느님의 말씀을 만났던 그날의 가슴 벅찬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피정을 받고 집에 돌아왔던 그날 밤 손이 잘 닿지 않은 책장 끝에 꽂혀있던 성경이 보고 싶다는 생각에 가족들이 모두 잠든 사이 현관에 앉아 무심히 성경을 폈고, 무엇에 이끌린 것처럼 밤을 꼬박 새우고 읽어나갔다. 어느 정도 읽었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읽었다. 잠을 자지 않았는데도 그 다음날 피곤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으며 계속 읽고 싶다는 생각에 그 후로 틈만 나면 말씀 속으로 빠져들어 신구약을 무작정 계속 읽고 또 읽었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서 콩나물이 쑥쑥 크듯이 어느 순간 무작정 손에 잡히는 대로 읽기만 했던 나에게 영안이 열리고 말씀에서 단맛이 나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부터 말씀 속으로 길을 떠나면 신이 나고 그날 밤의 기쁨이 되살아나며 그분을 향한 열정에 마음이 뜨거워진다. 나는 지금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강한 힘을 성경을 통해 얻게 되었다.
성경을 통독하기만 했던 나에게 어느 성소주일 신선한 충격이 있었다. 이병호 주교님께서 루가복음 15장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윤호관에서 암송하시는 모습은 너무나도 평화로운 표정이셨다. 읽기만 했던 성경을 외울 수 있으면 저 모습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더 값진 맛이 나겠구나 싶었다. 외울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간절히 청하며 집안을 왔다갔다 큰소리 내어 외우고 또 외웠다. 같은 구절을 반복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숙제하던 아이들도,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도 막히는 부분은 서로서로 가르쳐주었고, 가족들이 공통 관심사가 생기니 서로 마주하게 되는 시간이 많았고, 서로서로 즐거워하게 되었다. 그 후 성경을 읽으며 깊이 내 안으로 파고 들어오는 구절들을 메모해서 집안에 붙여두었고, 그 말씀들을 외운 후에는 나의 말씀 보관함에 떼어서 넣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그 보관함이 가득 차게 되었다.
나에게 위로가 되고 피난처가 되어주는 말씀과 함께 하는 시간은 매일 밤 가족들이 잠든 사이였다. 언젠가부터 하루 동안 내 삶 안에서 있었던 많은 일들을 함께 기록하며 성경 필사를 시작하였다. 말씀과 함께하는 이 시간들은 아버지께서 선물로 주시는 너무나도 값진 시간들이었다. 인간적인 삶 안에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서로 부딪치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너무 지쳐 힘들었던 날에는‘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가 9.23)’고 말씀하시며,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고 위로해 주셨다. 또한 내 안에서 자라나는 악습, 가라지, 엉겅퀴도 말씀 안에서 풀어지게 되었으며, 알지 못하는 내 삶 안에 녹아있는 그분의 사랑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니 아버지 하느님께 감사의 찬미를 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 누군가에 이끌린 것처럼 무작정 읽었던 말씀, 주교님의 기쁨이 넘치게 암송하는 모습이 닮고 싶어 외웠던 말씀, 나의 삶을 말씀 안에 녹여내는 성경필사까지 이 모든 과정은 시나브로 내 영혼을 살찌웠다.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닌 말씀 속에 내 자아를 비비며 닦고, 열매를 따먹기 위해 수없이 나를 죽이고 비우는 연습을 하였다. 이제는 세상 어떠한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평화와 기쁨에 취하기 위해 하느님의 말씀과 함께 살게 되는 것 같다.
욕먹은 계집을 정숙하게 만들어 세상에 없던 일을 나는 하리라.(예레 31.22)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기에도 바쁘고 정신없던 나는 아버지 말씀의 힘으로 무장하여 아버지가 보내시는 곳으로 나아가 봉사하기 시작하였다. 낮에도 밤에도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 온 마음과 온 정신을 바쳐서 그분의 말씀을 생활로 살아내려고 노력하였다. 저녁에 봉사해야 할 때는 남편이 나를 지지해주었고, 2남 1녀의 어린 아이들도 교회에 봉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때론 가족들도 함께 봉사활동에 참여하였다. 차량봉사가 필요할 때는 남편이 퇴근 후 참여하고, 복사가 필요할 때는 아들이 참여해주었고, 반주자가 필요할 때는 딸아이가 자율학습을 빠지고 참여하니 학교 담임선생님께서 어이없듯 웃으셨던 기억이 난다. 자연스럽게 우리 가족은 하느님을 바라보며 살아가게 되었다.
함께 봉사하던 많은 사람들은 나와 나의 가족을 부러워하고 칭찬하기 시작하였고 나의 등을 조금씩 밀어서 층계 한 칸 한 칸 올라서게 하였다. 인간적으로 기분이 좋았었고 그것들에 취하게 되었으며 주님만을 바라본다고 고백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사람들에게 이끌려 살았던 적이 있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서 있는 곳은 뒤로도 옆으로도 앞으로도 갈 수 없는 뾰족한 산꼭대기 같은 바람만 불어도 아래로 떨어지게 생긴 곳이었다. 나를 올려놓은 수많은 사람들은 내 옆에 보이지 않았고, 그 중 일부는 내려와 보라며 비아냥거렸다. 부족한 나의 지식과 지혜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토록 의지했던 성경책만을 붙들고‘아버지, 어디계세요. 지금 제가 보이시나요? 아버지를 위해서만 살아왔던 제가 지금 여기 있으면 안 되잖아요.’라고 아버지를 찾기 시작하였다. 인간적으로 나를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아버지, 살려주세요. 나를 칭찬하고 나를 좋아했던 이들이 지금의 나를 바라보는 저 모습들이 너무 무서워요. 너무 마음이 아파요. 다시 저들을 만날 자신이 없어요. 아버지 함께해주세요. 저를 통해 당신 영광 드높여주세요.’얼마나 울며 며칠 밤을 기도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며칠 밤을 울며 잠이 들었던 난 힘이 없었고 점점 지쳐갔다. 힘이 다 빠져갈 때 처음 말씀을 만났던 그날의 기쁨이 생각났고 그때처럼 무작정 성경을 쉼없이 계속 읽기 시작하였다. 매일 밤을 성경을 읽다 울다 지쳐 잠들었는데 어느 날 눈부신 햇살에 눈이 부셔 아침을 맞이하였고, 퉁퉁 부은 눈을 겨우 떠서 보니 눈이 부실만큼 환하게 빛나는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지금까지 그렇게 크게 목 놓아 울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십자가에 못 박히고 돌아가시던 날 믿었던 사람들에게 조롱받았던 주님의 모습이 이제야 온 몸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얼마나 아프셨을까? 얼마나 두려우셨을까? 얼마나 그 길을 가기 싫으셨을까? 얼마나 마음속으로 우셨으며 이 못난 죄인들을 위해서 한없이 기도하셨을까? 저는 이 조그만 십자가도 이렇게 힘들어 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그 길을 가셨는지 당신의 아픔을 이렇게 조금이나마 몸소 체험하면서 이제야 당신에게 조금 더 제 자신을 내려놓습니다. 보잘 것 없는 이 종이 필요하시다면 아버지 당신 영광위해서 이 몸 다 바치겠습니다.’내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나왔다.
그날부터 말씀을 읽고, 외우고, 쓰는 것이 끝이 아니라 내 삶 안에서 그분의 말씀을 살아낼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셨다. 살아낸 말씀 속에는 평화와 용서, 사랑과 자비가 있었고 나 자신을 깨우치고 내 이웃들의 모습을 통해 내가 다시 태어나게 하셨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주님이 가라고 하는 모든 곳에 가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십자가의 힘을 증거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나의 힘이신 주님은 오직 그분의 십자가의 힘을 앞세우며 살아가게 하였고, 언제나 틈만 나면 올라오는 교만을 힘겹게 부수게 하셨다. 지금은 나는 세상 가진 것 없지만 언제나 그 분 앞에서는 당당한 부자이다.
그분만을 바라보며 나를 돌볼 시간도 없이 너무 정신없이 살아왔을까? 물질적인 것이 풍부하지는 않았어도 그분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건강만큼은 채워주셨다.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외손녀딸이 인터넷으로 찾아준 설암 사진들 속에 나의 혀와 같은 모습이 있었다. 바로 자식들은 나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조직검사를 하였고, 미리 결과를 알았던 자식들은 눈물을 삼키며 내가 직접 결과를 들으러 가기 전까지 나를 위로했고, 결국 작년 11월 2일 설암 2기 진단을 받았다. 모든 암 환자들이 느끼는 감정이 순간적으로 나에게도 왔다. 결과를 듣는 순간 믿을 수 없었고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날 밤 감실 앞에 무릎 꿇고, 다니엘을 사자의 손에서 구해내셨다는 말씀(다니엘 6.28)을 읽자 당장 내가 받아야 할 치료과정에 대한 모든 걱정 근심들이 사그라졌다. 불안한 마음을 내려놓게 되니 오늘도 여전히 다정하게 나를 바라봐주시는 주님이 보이기 시작했다. ‘죽음도 이기시는 아버지, 당신의 딸, 산 제물 여기 왔나이다. 당신이 필요하다고 부르시는 곳이면 기꺼이 따라 가겠습니다. 이대로 깨끗하게 당신을 만나게 해주십시오.’라고 고백하였다.
그 후 수술하기 전까지 많은 검사들이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배려를 받았으며, 지인의 도움으로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서 수술날짜를 잡았다. 난 더욱 야곱처럼 그분을 붙잡았고, 그분의 말씀과 하나 되어 기도했다. 조직검사하고 수술날짜까지 40일을 기다리는 동안 육안으로도 번지는 것이 눈에 띄게 보였으나 모두 그분께 맡기고 침착해 지려고 노력하였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 안의 암세포에게도 얌전히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였다.
수술 전날 밤 가족들에게 의사는 수술할 곳 체크하며 앞뒤로 무섭게 하는 얘기에 자녀들이 울컥하였다. 암 조직을 떼어내면 혀를 반 이상 절제해야하고 그 부위를 팔 또는 허벅지 살로 이식해야 한다고 했다. 이식한 부위가 내 살처럼 되려면 통증과 불편함이 동반될 것이고 1년 이상은 말하기 힘들고 먹기 불편할 것이라고 하였다. 간호사 출신인 딸아이는 혹시 수술실에서 무슨 의료사고라도 생길까 수술과 관련된 부작용들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기에 다시는 엄마를 못 만나게 될까봐 걱정이 되어 차마 이런저런 내색하지 못하고 목이 메이며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두렵지 않았다. 주님은 나에게 다니엘이 되라하는데 다니엘은 불 속에서도 아버지께 찬미였다. 나도 이 순간 하느님께 찬미 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청하였다. 틀림없이 그분은 불속에서도 나와 함께 계심을 나는 믿었다.
드디어 12월 12일, 40일을 기다렸던 수술하는 날이 되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계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시편,23)
가족들과 헤어져 딱딱하고 차가운 병원 침대에 누워 주님만 붙잡고 수술실로 들어가는 순간 그분의 음성이 들렸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 딸아! 내가 너를 구해주리라’굉장히 크고 웅장하면서 너무 인자하고 편안한 그 음성은 나의 긴장과 두려움을 모두 가져갔고, 나를 편하게 미소 짓게 했다. 그리고 나에게 아버지를 찬미할 수 있는 힘을 주셨다. 마지막 마취하는 순간 보석 같은 나의기도! 나의 부족한 입에서 주님을 찬미하며 아버지를 만나는 시간처럼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 흠숭합니다!
아버지! 신뢰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버지! 의탁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나의님이시여...... 가스 냄새가 났고 나는 잠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눈을 번쩍 떴는데 낯선 곳이었다. 그곳은 회복실 이였고 생각보다 빨리 의식이 회복된 나에게 간호사들은 놀라서 우르르 달려왔다. 나는 내 팔과 허벅지를 만져보고 눈으로 확인하였다. 깨끗하였다. ‘아! 아버지! 감사합니다.’ 그 때 나는 수술과정을 의심하지 않았다. 살그머니 오셔서 나에게 새 생명을 주고 가셨다는 생각 뿐 이었다. 예상보다 수술이 너무 빨리 끝났고 이식하지 않고 암 부위만 절제하였기에 별다른 수술상처가 육안으로 보이지 않은 상태로 수술실 문을 다시 열고 나왔다. 수술시간이 짧았기에 들어갔던 모습과 거의 비슷하게 붓기도 없이 나오자 가족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나를 수술실로 들여보내고 수술하는 동안 가족들이 얼마나 노심초사 기다렸을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적처럼 의료진들이 계획한 방법보다 좋은 방향으로 수술은 마무리 되었고, 예상했던 수술시간보다 훨씬 빨리 끝났다. 그 후 수술부위는 지혈이 잘되었고, 전신마취 부작용도 없이 호흡기능도 좋았으며, 의료진들이 몇 번을 아프지 않으냐고 물었지만 나는 진통제를 맞지 않아도 될 정도로 통증이 거의 없었다. 회복 속도가 좋아서 주사도 맞지 않고 보조적으로 식사제공을 위한 호스도 연결하지 않았으며, 하루 지나 미음을 먹기 시작하였고 다시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정확하게 발음하기 시작하였다. 기적이었다. 나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암 덩어리를 위해 도려냈던 혀의 근육이 다시 빠른 속도록 새 살로 차기 시작했고 수술부위 상처도 모두 좋아졌으며 난 다시 예전처럼 말하고 노래할 수 있게 되었다. 너무나 감사했다. 이 모든 과정은 나의 삶 안에서 희생이 필요했음으로 받아들였고, 주님께서 의미하는 큰 뜻이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다시 주신 새 생명 더 값지게 당신위해 살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말재주로 하라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1코린토 1.17)
나인이라는 고을에서 외아들을 살리신 예수님이 울지 말고 일어나라 하신다. 오늘도 말씀을 내 삶 안에서 살아내라 하시는 하느님께서 매일미사, 독서, 복음과 함께 나의 세상적인 삶에서 있었던 일들을 함께 적으면서 내 삶을 다 태우라고 하신다. 나는 매일매일 냄새나는 내 삶의 모든 찌꺼기를 태우고 있다. 아버지의 말씀은 나의 남은 여정의 나침반이며, 내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힘의 근원이다. 하느님이 허락하는 시간까지 나는 말씀으로 무장하여 아버지 영광을 위해 살아갈 것이고, 나의 삶 모든 순간순간마다 그분만을 찬미하리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