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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신학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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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인 세실리아 작성일19-12-17 15:56 조회1,4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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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못 박힌 에로스’. 그리스도교가 에로스를 독살했다고 한 니체의 고발과는 달리, 에로스는 세상에 의해 십자가형을 당한다. 하지만, 죽음을 통해 영원의 지평에 이른다. ‘거룩한 변모를 성취한다. 이를 아가페라고 부른다. “하느님은 사랑(아가페)이시다”(1요한 4, 16). 사랑이 하느님은 아니다.

강론대에서 선포되는 사랑과 침실에서 행해지는 사랑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하느님과 얼굴을 마주 하고 뵙는 데에 인간이 하는 모든 사랑에 담긴 진실이 있다. “너만을 영원히!”라고 상대를 향해 말을 건네고자 하는 욕망의 민낯이 여기에 존재한다. ‘와는 완전히 다른’(거룩한) ‘를 향한 신음의 정체가 발견된다. 한 살의 베드로에게 스무 살이 되라고 하는 것은 명령이나 의무가 아니다. ‘시간과 배움·수련을 통해 실현될 수 있는, 베드로라는 한 인간의 성장이요 완성의 길이다.

이처럼 에로스는 스스로 아가페가 되고자 한다. 연애는 스스로 혼인을 요청한다. 침실의 사랑은 궁극적으로 하느님과의 일치와 친교를 향하고 있다. 하느님을 향하고 있을 때 부부행위는 비로소 사랑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그 반대가 결코 아니다. 모든 성행위나 성적 결합이 사랑은 아니다.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 하느님을 묻고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내 몸과 내 인격의 존재 이유가 창조주 하느님께 있듯이, 내 성()과 내 성행위, 내 사랑의 본질적인 이유 또한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분께 존재한다.

그런데 현대인은 에 새겨진 성(sex)과 무관하게 마음이 결정한 젠더(gender)를 주장한다. 몸이 남자이어도 마음이 여성이라고 말하는 착란을 노래한다.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가 나누는 성행위를 사랑이라고 규정하는 도착(倒錯)을 선전한다. 성행위가 담고 있는 하늘나라의 의미를 온갖 피임 기구와 약물로써 맘대로 잘라내거나 차단시키는 폭력을 인간 해방이라고 호도한다. 사랑의 이름으로 하늘나라를 폭행한다. 몸이 선포하는 예언(하늘나라)에 귀를 닫는다. 자연(본성)을 내 맘대로 조작하는 데에서 인간 발전을 궁리한다. 하느님께서 존재하지 않는 듯이 산다.

동정·독신 생활로써 하느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봉헌하는 이들의 존재와 삶이 부부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갖는 중요성은 여기에 있다. 하느님의 현존, 쇄도해 오는 하늘나라를 몸으로써증거하는 존재와 삶. 사제·수도 성소가 줄어가는 시대에 혼인생활은 반드시 불안하다. 혼인과 자녀를 원하지 않는 이들이 증가한다. 자녀 출산이 감소되어 사제·수도 성소가 활기를 잃었을까. 먹고 살기 어려워서 자녀를 낳지 않는 것일까.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 때문이다. ‘에 대한 믿음의 부재와 를 향한 희망의 상실에 그 이유가 있다. 이곳에 진정한 사랑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유사(類似) 사랑·혼인·가정을 인위적으로 생산해 낸다. 유사 종교가 횡행한다.

내년은 바오로 6세의 회칙 인간 생명반포 50주년이다. 인공피임이 인간의 사랑과 여성의 자유를 구원해 온 것이 사실일까. 성폭력·몸과 성의 도구화를 증진시키며 인간관계를 살벌하게 괴멸시켜 온 것은 아닐까. 욕망은 해소시켜야할 것이 아니라, ‘실현되어야할 바이다. 내 몸은 너머 에게로 이끌리고, ‘이 세상너머 저 세상까지를 욕망한다. 그 실현은 쉽지 않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완전히 가능하다. 치명자산의 동정부부는 날마다 이를 우리에게 말해 준다. 모든 십자가가 믿을 만한 것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내 욕망을 실현해 주는유일한 길이다. ‘행복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