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성경-거실(1)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백인 세실리아 작성일19-12-17 16:05 조회1,423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세 번째로 둘러볼 집 안의 장소는 ‘거실’이다. 우리가 거주하는 현대적인 집들은 상황에 따라 작기도 하고 크기도 한 거실을 가지고 있다. 거실에는 종종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전시되어 집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이들은 가족의 일원임을 느끼게 해 주는 장면이나 기억이 담겨 있기도 하고, 친구들로부터 받게 된 소중한 선물이나 먼 나라에서 온 기념품 같은 매력적인 물건일 수도 있다. 하나하나 소중하게 모여진 이것들로 인해 거실은 마치 가족의 박물관이자 보존을 위한 자리가 된다.
이뿐만 아니라 거실에는 카펫이나 쿠션, 의자, 소파 등과 같은 편안함을 주는 것들도 자리한다. 집을 방문한 사람들이 이곳에서 편안하게 머물며 어떤 주제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상황이나,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 구성원들이 저녁에 돌아와 밖에서는 얻지 못하는 안정감 속에 낮 동안 있었던 일 혹은 TV를 통해 전해지는 정보들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때에도 이 공간에 머문다. 따라서 거실은 과거에 있었던 기억에 대한 보존뿐만 아니라 현재 서로 다른 시간표를 살아가는 가족 구성원들의 교차점이자 방문자에게는 초대한 이의 삶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지점이 된다.
가족들의 공유된 기억이 서려 있는 집의 가장 아름다운 장소인 거실은 대화의 자리이다. 대화를 나눌 때, 거실은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교환하며 매일 노동에 지친 몸을 쉬게 하고 가족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바탕이 된다. 다시 말해, 거실은 고유한 정체성을 가진 ‘나 자신’과 ‘타자(他者)’가 만나 함께 대화하는 일로 활기(Recreation)를 얻는 장소가 된다. 왜냐하면 집에서 가족 구성원들은 가정, 종교, 사회 안에서 일어난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며 성장해 나가고, 이 행복한 기억은 근본적으로 자신이 한 가족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에서 기인하며, 때때로 이 소속감이 강한 위로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장소는 보통 가족의 박물관인 거실이기에 이 자리에 함께 모인 가족의 이야기에 주의를 기울여 그의 현재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경청의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상대방을 환대하며 경청하는 자세로 이루어지는 대화는 종종 소중한 기억을 초대한다. 이 기억의 회상은 지난날을 기린다는 차원에서 축제가 되고 예식이 된다. 그러나 기억을 나누며 축제가 되고 예식을 이루는 거실 안에는 이제 소중한 기억을 담은 소박한 장식품들과 대화보다 남들에게 더 비싸고 좋아 보이는 장식품을 전시해 놓는 것으로 대체되어가는 듯 보인다. 심지어 가족 구성원에게 이를 투사하여 적용하기까지 한다. 또한 무엇인가 특별하고 그럴듯해 보이는 주제가 있어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무의미한 자기 통제로 나눔의 내용은 빈곤해져만 간다. 이런 나눔 내용의 빈곤은 우리에게 대화가 마치 사랑니의 고통처럼 여겨지도록 만든다.
잘 살펴보면, 우리 사회가 들으려고 하는 사회가 아니라 모두 말하려고 하는 사회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다. 사실 듣지 못하는 상태는 ‘자기방어기제’일 수 있다. 더 나아가 평범한 이야기나 삶에 관한 중요한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마침으로써 선택이라는 수고로운 책임을 피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만약 어떤 이가 들으려 하는 사람이 아닌데도 듣게 된다면 아마도 그렇게 해야 할 수밖에 없는 강제적인 상황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대화의 기본자세인 ‘경청’은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어느 사람 하나 빠짐없이 경청의 준비가 된 사람에게 자유롭게 말하기를 희망한다. 경청은 이야기와 한 몸을 이루는데 마치 도착지를 향한 단계적인 순간과도 같다. 누군가 경청하고자 한다면 지금 언급되고 있는 이야기 뒤에 숨겨진,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을 포착하여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는 무디거나 둔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대화중에 드러난 소리에 침잠함으로 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