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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도 교구장 사목교서 -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본문

 

 

2025년도 교구장 사목교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 (요한 15,12)

- 교구설정  100주년을 향한 새로운 가정 복음화 -
 

 1.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교구는 지난해 앞으로 3년 동안 ‘교구설정 100주년을 향한 새로운 가정 복음화’에 초점을 맞추어 사목을 펼치기로 계획하였고, 그 계획에 따라 ‘사랑을 실천하는 가정’에 역점을 두어 그 첫 번째 해를 보냈습니다. 지난 2024년 동안 많은 교우가 참된 사랑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늘 바라보고, 하느님을 중심으로 삶을 살아감으로써 혼인과 가정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곧 많은 가정이 그리스도의 ‘예언자직’과 ‘사제직’과 ‘왕직’에 참여하려고 주력함으로써 혼인과 가정의 가치를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새롭게 발견하고 증진하였습니다. 이에 깊이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계속 혼인과 가정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여 새로운 가정 복음화에 매진하기를 바랍니다.

 

 2.

 올해 저는 특히 ‘생명에 봉사하는 가정’에 역점을 두고자 합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이유는 지난해 우리가 사랑에 주력했는데, 이 사랑이 생명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생명을 낳고, 생명은 사랑의 열매이자 완성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난해 힘껏 노력했던 사랑의 실천이 올해에는 생명에 봉사하는 일로서 그 구체적인 열매를 맺기를 바라는 바 입니다.
 사실 생명에 봉사하는 것은 ‘가정의 기본 임무’입니다(「가정 공동 체」, 28항 참조). 부부가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은 본질적으로 출산을 지향합니다. 태어난 자녀는 부부 사랑의 열매이자 완성으로서, 서로에게 분명 선물이 됩니다. 이러한 출산을 통하여 부부는 세상에 생명을 전달하는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영예롭게 참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부부 사랑은 이러한 생명의 전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부부 사랑은 자녀가 생명의 본질적 가치와 존엄성을 깨닫도록 끊임없이 교육함으로써 “도덕적, 영신적, 초자연적 생활의 결실로서 확장되고 심화”(「가정 공동체」, 28 항)됩니다. 말하자면 부부 사랑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생명에 봉사하는 열매를 맺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가정은 참으로 “생명의 성 역”(「백주년」, 39항)입니다.

 

 3.

 '생명에 봉사하는 가정'에 역점을 두려는 둘째 이유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죽음의 문화가 짙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자신의 안락을 위해 타인을 해치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으며, 안타깝게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잦아지고 있습니다. 가정 안에서도 부부관계와 가족관계가 심각하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혼율이 급격하게 증가함으로써 결손가정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낙태가 연간 수백만 건에 이를 정도로 일반화되었습니다. 아울러 혼인과 성(性)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의 붕괴로 말미암아 “혼인하는 이들이 감소하고 있으며, 혼자 살거나 또는 가정을 이루지 않고 동거하는 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사랑의 기쁨」, 33항). 그 결과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으로 급락하였습니다.
 사태가 이렇게 된 근본 까닭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가 경제 제일 정책을 펴왔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지만, 윤리의 사막화와 물질주의의 만연으로 가정과 사회가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것입니다. 특히 물질만능주의는 인간 본질적인 가치 곧 정신적, 윤리적, 신앙적 가치를 경시할 뿐만 아니라, 극심한 개인주의마저 부추겨 생명 경시 풍조와 사회의 각종 병리 현상을 낳고 있습니다. 이러한 반생명적인 문화는 우리 그리스도인마저 도전적으로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혹 앞에서 우리는 모든 것의 원천이며 목적이신 하느님께 돌아가 혼인과 가정의 온전한 가치를 되새기고, 이로부터 ‘생명에 봉사하는 일’에 헌신할 필요가 있습니다.

 

 4.

 이제 우리 가정이 생명의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앞으로 해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전제는 교회가 선포하는 다음 진리를 분명하게 명심하는 일입니다. “모든 인간의 생명은 임신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신성하다. 살아 계시고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인간을, 바로 그 자체를 위하여 당신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319항; 「생명의 복음」, 81항 참조). 따라서 모든 인간의 생명은 빼앗을 수 없는 것일 뿐 아니라, 오히려 존중하고 보호하고 사랑하여야 합니다. 가장 먼저, 가정은 태어나는 아이를 하느님의 선물로 환대하고 보호해야 합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생명도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고 돌보아야 합니다. 교회는 산아 제한, 불임 수술, 피임, 낙태 등을 일체 단죄하고 배격합니다.
 그리고 가정은 생명을 전달하는 출산을 넘어서 그 생명을 인격적 사회적 전인적 교육하여야 하는 중대한 의무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자녀에게 모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회적 덕행을 가르쳐야 합니다. (「가정 공동체」, 36항 참조). “타인에 대한 존중, 정의감, 진심 어린 개방, 대화, 헌신적인 봉사, 연대 그 밖의 모든 다른 가치를”(「생명의 사목교서복음」, 92항) 자녀들에게 심어주어야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부모는 “자녀에게 신앙을 가르쳐 주는 첫 스승”(「사랑의 기쁨」, 16항)으로서 자녀들이 그리스도를 온전히 받아들여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이러한 교육과 신앙을 통해 생명에 봉사함으로써 성숙해진 가정은 이제 여러 가지 양식으로 생명에 더욱더 봉사할 수 있습니다. 우선 타인을 귀찮은 존재로 여기며 자기 자신을 점점 고립과 편협으로 내모는 개인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정은 문을 열어 다른 가정과 교류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열린 마음으로 서로 연대를 맺는 가정들은 가난한 이들의 상처를 감싸주고 만남의 문화를 형성하며 정의와 공동선에 투신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가정은 “형제애, 사회적 감수성, 약자 보호, 빛나는 신앙, 활기찬 희망이라는 색으로 회색 사회를 밝게 칠함”(「사랑의 기쁨」, 184항)으로써 생명을 풍성하게 증진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가정은 노인들(조부모)에게도 특별한 관심을 기울입니다. 노인들을 존경하고 돌보며, 노인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합니다(「사랑의 기쁨」, 192항 참조).

 

 5.

 이렇게 가정이 생명에 봉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가정이 복음적으로 쇄신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복음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복음적 가치관이 우리 가정에 깊게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저는 작년에 제안한 구체적인 실천 사항을 올해에도 계속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구체적 실천 사항-

첫째, 매월 마지막 주일에는 모든 본당에서 가정 성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합시다.
이때 가족 구성원들이 되도록 같은 미사에 함께 참여하여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둘째, 지구나 본당 차원에서 가정과 생명 그리고 사랑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함께 배우는 자리를 마련합시다.

특히 교황 회칙 「생명의 복음」에서 ‘생명에의 봉사’를 빼어나게 설명하고 있는 ‘제4장 너희가 나에게 해 준 것이다’를 꼭 읽고 묵상합시다.

 

셋째, 각 가정은 ‘가정교회’를 이루기 위해 가정기도를 바칩시다.
옛 전통을 되살려 아침 저녁으로, 아니면 적어도 저녁에 가족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시간을 정하여 기도를 함께 바칩시다. 그리고 가정 기도 후에는 부부가 서로, 또 부모가 자녀에게 안수기도를 합시다. 이때뿐 아니라 삶의 중요한 계기마다 서로에게 축복해 주는 안수기도는 가족 간의 사랑과 신뢰를 한층 깊게 할 것입니다.

 

넷째, 첫영성체 교리 때 되도록 부모와 함께 하는 ‘가정교리’를 활용합시다.
가정교리는 “가정은 교회처럼 복음이 전달되는 곳이요 거기서 복음이 빛나는 곳”(교황 바오로 6세)이라는 교회의 이상을 잘 구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오늘날 젊은이는 많은 어려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젊은이를 환대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한편, 2027년 세계청년대회 준비 기도문인 ‘젊은이를 위한 기도’를 미사 전·후에 바칩시다.

 

여섯째, 가족이 함께 교구의 성지들을 순례하여 순교자들을 현양하고 그 훌륭한 신앙을 본받읍시다.
특히 물질만능주의와 극심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한 오늘날, 순교자들이 보여주신 모범처럼 하느님을 우리 삶의 첫째로 모십시다.

 

일곱째, 가정사목국이 가정의 성화를 위해 연례적으로 주관하는 각종 프로그램이나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합시다.
이 프로그램과 행사는 특히 생애 주기별로 계획된 것으로서 가정교회를 이루는데 아주 유익합니다. 아울러 이 사목교서의 ‘부록’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한 여러 실천 사항을 꼭 살펴보시고 각자의 상황에 알맞게 자발적으로 활용합시다.

 

여덟째, 그동안 실천했던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밤 9시 주모경 바치기’ 운동을 앞으로도 지속합시다.
이 기도 운동은 한국천주교의 모든 교구가 동참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 밤 9시 기도에 가정의 성화를 위해서도 지향을 두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후손들을 위한 “우리의 공동의 집”(「찬미받으소 서」, 1항)인 ‘지구’를 살리고 피조물을 보호하기 위한 생태영성을 실천 합시다.
지구온난화를 막고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교구의 ‘생태환경위원회’와 함께 기도하고 행동하되, 가정에서부터 실천하며 함께 노력합시다.

 

 

 2025년 한 해 동안, 우리가 혼인과 가정의 온전한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고 증진하여 생명에 봉사함으로써 새로운 가정 복음화의 길을 함께 걸어갑시다. 저와 여러분을 통해 이 땅에 생명의 복음이 선포되고 경축되기를 빕니다.

 

 

2024년 12월 1일 대림 첫 주일에

천주교 전주교구장 김선태(사도 요한)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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