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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도 사목교서 - 신앙의 해와 새로운 복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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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형자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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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2012년 10월 11일부터 시작하여 2013년 11월 24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까지 계속될 "신앙의 해"를 지내며 "새로운 복음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해의 근본 취지는 우리 가톨릭교회 안에서 신앙의 열기를 다시 불러일으키고, 나 자신에서 시작하여 교회 구성원 하나하나가 참된 믿음의 사람으로서 사도적 확신을 가지고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1983년 3월 9일 남미 선교 5백 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하신 강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대륙의 복음화 5백 주년을 기념하는 일이 정말 의미를 지니려면, 주교 여러분이 각자 소속 사제와 신자들과 더불어 새로운 각오와 헌신으로 복음화 사명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은 재-복음화가 아니라 새로운-복음화여야 합니다. 열정에서, 방법에서, 그리고 표현에서 새로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와서 교회의 문헌들은 그리스도 신앙을 두고 "몇 가지 추상적 진리를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만나는 일임"을 강조합니다. 신경으로 대표되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이라고 한다면, 그런 신앙을 가지기는 비교적 쉽습니다. 신경의 내용을 듣고 거기에 대해서 "믿습니까?" 하는 질문에 대해 "믿습니다." 하고 대답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때 믿음과 직접적으로 관련을 맺는 기관은 지성의 자리로 알려진 머리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누가 "당신은 믿음이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면, 우리는 "예." 하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그런 질문에 "예." 하고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는 일"이라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집니다. 믿음의 우선적 자리가 머리라기보다 마음으로 상징되는 인격 전체와 그 체험이 되기 때문입니다.

2011년 11월에 설립된 교구사목평의회 2012년 7월 25일 회의에서도 지금 교회와 신앙생활의 현실을 돌아보며, 가장 큰 문제로 하느님 체험의 부족 혹은 결핍을 들었습니다. 그 결과 신앙이 굳건하지 못하여 더러는 신흥종교와 사이비 종교에 쉽게 넘어가기까지 하는 현상을 우려했습니다. 그래서 성경 봉독-공부-나눔, 전례의 활성화, 소공동체의 활성화, 피정, 가톨릭교회교리서의 연구, 그리고 성직자 수도자의 소명의식 강화를 그 처방으로 제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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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신앙의 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복음화"의 기치 아래 온 세계의 교회가 믿음 자체를 두고 자신을 반성하며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이 때, 교회 안에서 수행하는 역할이 무엇이든 우리는 각자 주님의 근심어린 질문 앞에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과연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루가 18,8)

 

이와 함께, 악령에 시달리는 아들을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데려와 그것을 쫓아내 주기를 청했으나 제자들에게 그럴 능력이 없음을 보고 실망하던 차에,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달려와 간청한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우리는 기억하게 됩니다. "선생님께서 하실 수만 있다면 자비를 베푸셔서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간청하는 그 사람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할 수 있다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안 되는 일이 없다." 그 말씀을 듣고 아이의 아버지가 큰 소리로 외친 말은 우리 믿는 사람들의 가장 절실한 마음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제 믿음이 부족하오니 도와주십시오"(마르 9,14-24).

마태오복음에는 이 사건 뒤에 제자들과 예수님 사이에 있었던 의미 있는 대화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없을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저희는 왜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져라' 해도 그대로 될 것이다. 너희가 못 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마태 17,19-20).

 

마태오복음에는 이 사건 뒤에 제자들과 예수님 사이에 있었던 의미 있는 대화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없을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저희는 왜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져라' 해도 그대로 될 것이다. 너희가 못 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마태 17,19-20).

믿음이 주님을 내 안에 모시는 일이며 내가 하나의 인격체로서 온 존재를 동원해서 겪게 되는 체험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누구의 눈에나 뜨일 만큼 요란하게 나타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오로 사도는 필립비서 2장에서, 누가 주님을 만나 그런 체험을 했는지 아닌지를 몇 가지 단순한 질문으로 확인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힘을 얻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위안을 받습니까? 성령의 감화로 서로 사귀는 일이 있습니까? 서로 애정을 나누며 동정하고 있습니까?" 여기에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할 수 있으면, 우리는 하느님을 만난 것입니다. 사도께서는 그렇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계속 당부합니다.

"그렇다면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사랑을 나누며 마음을 합쳐서 하나가 되십시오. 그렇게 해서 나의 기쁨을 완전하게 해 주십시오. 무슨 일에나 이기적인 야심이나 허영을 버리고 다만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저마다 제 실속만 차리지 말고 남의 이익도 돌보십시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 여기서 이방인의 사도는 사도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그리스도교의 핵심 진리를 잊지 않기 위해서 곡을 붙여 불러오던 노랫말 하나를 소개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무릎을 꿇고 모두가 입을 모아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 찬미하며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당부에서 말합니다. "여러분은 나무랄 데 없는 순결한 사람이 되어 이 악하고 비뚤어진 세상에서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하늘을 비추는 별들처럼 빛을 내십시오.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키십시오.> 그래야 내가 달음질치며 수고한 것이 헛되지 않아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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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주님을 만나고 삶이 변화하는 체험이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키는 일"에 달려 있음을 확인합니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잘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나의 아버지께서도 그를 사랑하시겠고 아버지와 나는 그를 찾아 가 그와 함께 살 것이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내가 너희에게 들려주는 것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요한 14,23-24).

 

당신의 말씀을 "지킨다"는 말의 일차적인 뜻은 그것을 실천한다는 뜻이 아니라, 도둑이 뚫고 들어오지 못하게 집 주인이 자기 집을 지키듯이, 말씀이 마음속에서 사라지거나 훼손되지 않게 잘 간직하고 보호한다는 의미입니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계실 때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이렇게 외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주신 대답에서도 우리는 <지킨다>는 말이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발견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가 11,27-28). 그러므로 예수님을 낳으신 마리아께서 행복하신 것은 단순히 당신을 육체적으로 낳으셨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잘 간직하고 보호함으로써 말씀이 사람이 되게 하셨기 때문이라는 뜻이 포함된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이 손상되거나 없어지지 않게 잘 지키는 사람은 마리아께서 하신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는 뜻도 거기 함께 들어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어떤 의미에서 자신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수태하고 출산하는 것"이라는 암브로시오 성인의 말씀에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 속에서 "지킨다"는 표현의 일차적인 의미가 "실천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점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물론,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고 그분을 믿는다는 것은 결국 그분의 말씀을 실천하고, 그런 의미에서, 좋은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된다는 뜻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이 확실합니다. "사랑으로 표현되는 믿음"(갈라 5,6)만이 참된 믿음이며, 그런 뜻에서 믿음은 시작이고 사랑은 완성이며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야고보 사도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런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보 2,17).

 

하지만, 이때의 사랑이나 실천은 어디까지나 사람이 하느님을 참으로 만나고 깊이 체험함으로써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화할 때, 자연적으로 따라오는 결과이며 열매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 순서를 혼동한다든지, 너무 성급하게 실천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일은, 그것이 아무리 좋은 명분을 내세운다 해도, 사람을 자칫 종으로 만들어 자유를 박탈하고 기쁨을 앗아갈 위험마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주님의 가르침이 기쁜 소식이 아니라, 삶의 무게에 또 하나의 짐을 얹어놓는 결과를 가져다 줄 뿐입니다. 우리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거운 짐을 꾸려 남의 어깨에 메워주고 자기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마태 23,4)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흉내를 내고 마는 셈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과 정 반대로 말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8-30).

 

그러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하늘에서 떨어진 씨앗처럼 우리 안에 뿌려진 다음, 우리가 그것을 잘 "지키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씨앗은 싹이 트고 자라서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이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앗을 뿌려 놓았다. 하루하루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앗은 싹이 트고 자라나지만 그 사람은 그것이 어떻게 자라나는지 모른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인데 처음에는 싹이 돋고 그 다음에는 이삭이 패고 마침내 이삭에 알찬 낟알이 맺힌다.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추수 때가 된 줄을 알고 곧 낫을 댄다"(마르 4,27-29). 바오로 사도께서도 말씀하십니다. "나는 씨를 심었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심는 사람이나 물을 주는 사람은 중요할 것이 없고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만이 중요하십니다(1고린 3,6-7).

예수님께서는 "지킨다"는 말의 의미를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다음, 날쌔게 달려드는 사탄에게 빼앗기거나, 그것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 앞에서 넘어져 버리거나,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에 짓눌려 숨 막히지 않도록(마르 4,15-19 참조) 경계의 눈초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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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자기 안에 잘 간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그 말씀의 깊은 의미를 깨닫게 해 주시고, 그렇게 해서 우리를 주님의 종이 아니라 아드님의 벗으로 변화시켜 주시고 그분의 공동상속자로 만들어 주십니다. 종과 벗의 차이는 자신이 하는 일을 참으로 알고 하는가, 아니면 누가 하라고 하니까 마지못해서 하는가의 차이입니다. "이제 나는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고 벗이라고 부르겠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모두 다 알려 주었다"(요한 15,15). 예수님께서 직접 뽑으신 제자들도 스승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을 거쳐 성령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바로 앞둔 시점에서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직도 나는 할 말이 많지만 지금은 너희가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이끌어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여 주실 것이다"(요한 16,12-13). 제자들은 성령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그분의 벗, 그리스도의 공동 상속자,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종의 처지를 완전히 벗어났던 것입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이 이제는 성령의 감도 속에서 글자로 기록되어 성서라는 모양으로 우리 앞에 있습니다. 우리의 과제는 이 순서를 뒤에서부터 되밟아 살아 계신 주님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일입니다. 책에 기록된 글자가 그 자체로는 생명이 없지만, 우리가 그것을 읽고 마음속에 받아들이면 그것은 살아 있는 말이 되고, 성령 안에서 믿는 마음으로 계속 새기고 묵상하면 그것은 다시 "영과 생명"(요한 6,63)으로 바뀝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벗이 되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우리를 종으로 묶어 두던 일체의 속박에서 벗어납니다.

 

영은 영원한 생명을 주는 힘입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성령을 내려 주신 오늘, 우리는 말씀 속으로 깊이 들어가 소화함으로써 그것을 성령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께서 미리 하신 말씀이 우리 안에 실현되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이 오면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과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가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요한 14,20).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고 우리 안에 모시는 삶, 참으로 믿는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믿는다는 것은 숨결로 표현되는 성령의 특성 그대로, 우리가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팔팔하고 활기 넘치는 생명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육체적 생명을 위해서 숨을 쉬고 심장이 뛰는 것처럼, 우리는 매 순간 믿음의 공기를 마시며 살게 됩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숨 쉬고 움직이며 살아갑니다"(사도 17,28).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말씀>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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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선언합니다. "교회가 성서를 주님의 몸처럼 공경해 왔으며, 특히 전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의 식탁에서뿐만 아니라 하느님 말씀의 식탁에서도 끊임없이 생명의 빵을 집어 신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있다." 그리고 "교회의 모든 가르침은 그리스도교 자체가 그렇듯이 성서에서 영양분을 취하고 거기에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성서 안에서 사랑으로 당신 자녀들을 만나시고 그들과 더불어 말씀을 나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 말씀이 교회에는 버팀목과 활력이 되고, 교회의 자녀들에게는 신앙의 힘, 영혼의 양식 그리고 영성생활의 순수하고도 영구적인 원천이 되는 힘과 능력이 있다"(계시헌장 21항).

 

그리고 24항에서는 "성서 연구가 신학의 영혼과도 같은 것이 되어야 한다"고 천명합니다. 또 <성서를 읽자>라는 제목이 붙은 제25항에서는 사제, 부제, 교리교사들처럼 특별히 위임받은 말씀의 봉사자들이 "하느님 말씀을 겉으로만 전하고 속으로는 경청하지 않는 빈 설교자"가 되지 않도록 거룩한 독서와 진지한 공부로 성서에 몰두할 것을 촉구합니다. 그리고 모든 신자들이 성서를 자주 읽음으로써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존귀한 지식"(필립 3,8)을 얻어야 한다고 각별히 권고합니다. 한 마디로 "성서를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라고 한 예로니모 성인의 말씀은 계시헌장 제6장 전체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성서 관련 문헌인 이 계시헌장은 가톨릭교회 역사와 신앙생활에서 가장 큰 전환점의 하나가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그 이후 성서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서가 신앙인 각자의 개인 생활에서나 교회 생활에서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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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말씀을 주제로 열렸던 제12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계시헌장 반포 이후, 성서와 관련해서 있었던 가장 큰 사건이었습니다. 거기에서 논의된 것을 종합하고 정리하여 발표된 후속 문건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 위에 세워진다. 교회는 말씀으로부터 태어나고 그 말씀으로 살아간다. 하느님의 백성은 자신의 온 역사에서 언제나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힘을 발견하였고, 오늘날에도 교회 공동체는 그 말씀을 듣고 기념하고 연구함으로써 자라난다"(주님의 말씀 3항).

 

이 문헌은 교회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이 하느님 말씀을 어떤 자세로 대해야 할지에 관해서 아주 인상 깊은 표현을 씁니다. "주교는 자기의 사제들과 함께, 신앙 공동체 구성원 하나하나처럼, 더 나아가 교회 자체가 그런 것과 같이, 남에게 말씀을 전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는 태아가 엄마의 태 안에서 보호도 받고 영양분을 섭취하듯이, 말씀 속에 들어가 거기에서 보호도 받고 영양분을 섭취해야 하는 것이다"(주님의 말씀 79항).

 

"사람이 되신 말씀"(요한 1,14 참조)으로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의 힘으로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의 힘으로 살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요한 6,56-58).

 

전례, 특히 성체성사는 바로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심으로써 그분 안에서 살게 해 주는 성사입니다. 우리 가톨릭교회는 서로를 보충하는 말씀과 성체를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둘이 모양은 다르지만 실제로는 똑 같은 말씀으로서 서로 떼어 놓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가겠느냐?' 하고 물으셨을 때 시몬 베드로가 한 대답이 그것을 잘 말해줍니다.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 가겠습니까?""(요한 6,66-68).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은 바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통해 "그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히브 1,3)을 우리 안에 모시면, 바오로 사도를 두고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가 하신 말씀이 우리에게도 통하게 될 것입니다. "그분이 입을 열면 예수님이 튀어나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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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신앙인들이 "성령의 칼"(에페 6,17)이기도 한 이 말씀으로 무장하면, 누구나 사도가 되어,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첫 선포", 곧 복음을 듣고 "마음이 찔려서"(사도 2,37)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두고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대담하게 증언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떠나지 않고 또 내 말을 간직해 둔다면 무슨 소원이든지 구하는 대로 다 이루어질 것이다.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요한 15,7-8). 여기서 많은 열매를 맺고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가 드러납니다. "너희가 나를 떠나지 않고 또 내 말을 간직해 둔다면"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떠나지 않는" 구체적인 방법이 "내 말을 간직해 두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열매를 맺어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되는 가장 확실한 길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제시한 교회상을 실현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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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교회를 흔히 피라미드 모양으로 그렸습니다. 그림에서는 교황이 맨 위 꼭지점에 있고, 그 밑에 주교, 사제, 수도자, 평신도가 차례로 한 층씩 내려가 서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에서 이런 그림을 혁명적으로 바꾸었습니다. 이제는 교회 안에서 높고 낮은 구별이 없이 교황에서부터 방금 영세한 신자에 이르기까지, 하느님 자녀로서의 존엄성에서나 거룩한 삶에로 불리운 소명에서나 동등하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림으로 나타내자면, 교황이 가운데, 주교와 사제, 수도자가 그 다음에, 그리고 교우들이 맨 가장자리에 서있는 동그라미가 연상됩니다. 교황님은 교황청에서, 주교는 주교관에서, 사제와 수도자는 성당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고, 교우 여러분은 세상 속 어느 동네나 아파트에서 사시면서 직장이나 일터에서 일하시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 그림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마을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너희도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2-16). 주님의 이 말씀을 생각하면, 동그라미의 맨 가장자리에 서 있는 교우 여러분이 실제로는 얼마나 중요한 사명을 수행하시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성직자와 수도자가 성당 안에서 주로 사는 데 비해, 교우 여러분은 세상 안에서 사시기 때문에,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기가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여러분의 착한 행실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가 있기 때문에, 그들이 아주 쉽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교회라는 동그라미의 가장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동그라미의 가운데에 있는 이들은 여러분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잘 하실 수 있도록 전례, 특히 말씀을 통해서 하느님의 빛과 힘을 계속 공급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각자가 자기의 위치에서 고유한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자라나게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에 딸린 지체는 많지만 그 모두가 한 몸을 이루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그러합니다.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우리는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같은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몸은 한 지체로 된 것이 아니라 많은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 발은 '나는 손이 아니니까 몸에 딸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해서 발이 몸의 한 부분이 아니겠습니까? 또 귀가 '나는 눈이 아니니까 몸에 딸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해서 귀가 몸의 한 부분이 아니겠습니까? 만일 온 몸이 다 눈이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또 온 몸이 다 귀라면 어떻게 냄새를 맡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대로 각각 다른 기능을 가진 여러 지체를 우리의 몸에 두셨습니다"(1고린 12,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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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선포한 새로운 교회상입니다. 그리고 그런 교회상을 실제로 구현한 것이 소공동체입니다. 소공동체에서는 하느님 말씀을 더욱 깊이 묵상하고, 형제자매들과 나누고, 이웃 사람들에게 전하며, 모두가 적극 참여하고 도와서 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일을 훨씬 더 효과적으로 해 낼 수 있습니다.

 

2012년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개막된 지 50주년, 한국에 소공동체가 들어온지 2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 소공동체 역사에서 처음으로 소공동체 지역 모임을 가지고 많은 이들에게 그것을 소개하였습니다. 2012년 9월 12일에는 대구, 부산에 이어 전주 전동성당에서 그 모임을 가졌는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 소공동체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나라 소공동체는 전 세계적으로도 모범 사례로 꼽힐 만큼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어려움도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거의 2천 년 동안이나 굳어져 온 교회상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 어려움은 어쩌면 자연스럽고 당연하기조차 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공의회의 꿈과 이상, 그리고 미래 교회의 모습이 여기에 있기 때문에, 지금으로서 그것이 아무리 어려워도, 더 크게 성장하고 발전할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가장 위대한 가르침을 주시고 중요한 꿈을 펼쳐 보여주실 때, 제일 심한 반대와 장애에 부딪치셨습니다. 한 때 남자만 5천명이나 모여 들었던 사람들이 당신의 속 이야기를 듣고는 다 "이렇게 말씀이 어려워서야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요한 6,60)하며 모두 떠나가 버렸을 때, 예수님께서는 달랑 남은 열 두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도 떠나가겠느냐?" 그 때 베드로가 나서서 한 대답은 우리 모두의 대답이어야 하겠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 가겠습니까?"(요한 6,68)

 

우리나라에서도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에 흠뻑 젖어 그 위대한 힘을 체험한 몇몇 사목자들과 교우들의 노력으로 소공동체가 지금까지 발전하였습니다. 우리 교구도 그 동안 활발하게 추진되어 온 성서운동을 바탕으로 하여, 다양한 모양으로 해오던 소공동체를 새로운 각오로 한 층 더 체계를 갖추어 더욱 널리 확산시켜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 모두가 사도가 되어 주님의 당부를 실천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8-20).

실 천 사 항

1. 성서사도직운동 활성화를 위한 실천사항

가. < 성서사도직운동> 을 교구 내 모든 본당과 기관에서 활성화하기 위하여 이 운동을 담당하는 교구기구를 정비하고 보강해야 하겠습니다.
나. 교구 내 모든 신부님들이 이 운동의 중요성을 공감하고 이에 적극 참여해주시기 바랍니다.
다. 성서를 읽고 말씀을 나누는 모임인 <성서백주간>, <거룩한독서>, <그룹성서>, <성서형제회>를 적극 권장합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이런 모임에 참여할 수 없는 신자들도 자신들의 형편에 따라 이 성서사도직 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성서40주간>, <성서대학>, <성서 읽기>, <성서 듣기>, <성서쓰기> 등 각종 성서운동 프로그램도 소개하고, 전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라. 본당에서 <성서사도직운동>을 잘 전개할 수 있도록 <성서사도직운동 봉사자양성>을 교구차원에서 실시해야 하겠습니다.
마. < 성서40주간> 지도를 '영원한 도움의 성모회' 수녀님들 뿐 아니라 관심 있는 교구 신부님들도 직접 <성서40주간>을 지도해 주기 바랍니다.
바. < 청년성서> 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교구의 청년성서 담당부서를 새롭게 보강해야 하겠습니다.
사. 이 한 해 동안 특히 다음의 성서 귀절들을 깊이 묵상합시다.
1) 1고린 1-2장
2) 요한 13-17장
아. 가정에서는 복음나누기와 안수기도를 실천합시다.

2. 전례활성화를 위한 실천사항

가. 지난 여러 해 동안 본당마다 이 분야에서 특별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곳에서 성서 봉독이 놀랄 만큼 활기차게 이루어지고, 보편지향 기도도 마음 속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자유기도 방식으로 바치는 등, 전례가 생명의 잔치답게 변화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개선할 여지를 찾아 더욱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성체성사, 곧 미사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생명의 잔치입니다. 우리는 미사에서 말씀과 빵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사를 더욱 더 활기차고 따뜻한 축제로 만들기 위해서, 교우 영접, 제단 장식, 예절 안내, 성가, 성서봉독, 제물봉헌, 주례, 강론 등, 전례에서 각자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 모든 노력과 정성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주임 사제의 지도하에 늘 연구하고 준비하는 전례부가 본당마다 있어야 하겠습니다.
나. 사목자들은 "특히 전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의 식탁에서뿐만 아니라 하느님 말씀의 식탁에서도 끊임없이 생명의 빵을 집어 신자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성서에서 추출한 어떤 추상적 주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성서의 맥락을 따라가며 거기에 충실한 강론을 할 때에만 신자들은 "맛좋은 음식을 먹으며 기름진 것을 푸짐하게 먹게"(이사 55,2)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 교구에서 번역하고 성바오로 딸 수도회에서 최근에 출판 한 「하느님의 말씀」이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다. 교구 담당자는 <전주교구 표준 전례지침서>를 만들어 보급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전례시기별 전례, 대축일 전례, 성사전례 등 다양한 전례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라. 청소년들을 위해서 다양한 청소년 미사전례를 소개하여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하느님 체험의 증언

하느님을 특별히 체험한 신자들의 증언을 듣는 기회를 마련하고,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한 모든 방안을 활용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안에 계셔서 여러분에게 당신의 뜻에 맞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 주시고 그 일을 할 힘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불평을 하거나 다투지 마십시오. 그리하여 여러분은 나무랄 데 없는 순결한 사람이 되어 이 악하고 비뚤어진 세상에서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하늘을 비추는 별들처럼 빛을 내십시오.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키십시오. 그래야 내가 달음질치며 수고한 것이 헛되지 않아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필립 2,13-16).
주변 세계가 어두울 때, 별은 더욱 선명하게 빛을 내듯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킴으로써, 주변 사람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주는 이들이 늘 있습니다. 그런 이들은 모두가 안 된다며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을 때, 벌떡 일어나 앞으로 가는 사람들이며, 다른 이들이 절망의 어둠 속에 갇혀 있을 때, 희망의 작은 불씨를 살려 큰 불길로 키워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이들은 "구름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히브 12,1) 증인들입니다. 그런 이들의 증언과 체험담은 어떤 말보다 더 큰 힘으로 사람들을 일깨우고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 줍니다.
그러므로 미사에서 복음 낭독 후, 강론 전에, 5분 정도의 시간을 할애하여, 신자들 가운데 적절한 이들을 차례로 선정하여 신앙체험을 발표하게 하면 좋을 것입니다.

4. 신자 재교육 프로그램 전개

본당마다 "신자 재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각자가 지금까지 거쳐 온 신앙 여정의 정도에 따라, 다음과 같은 순서를 밟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가. 아직 성서 공부와 나눔의 과정을 이수하지 않는 이들은,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 말씀을 통해서 깊은 신앙체험을 하게 합니다.
나. 그런 다음, 성서 공부와 나눔을 한 이들은 가톨릭교회 교리서와 공의회 문헌을 공부합니다. 이 때 다음과 같은 책을 사용합니다.

1) [가톨릭교회 교리서]
또는, [가톨릭교회 교리서 요약편]
2) 공의회 문헌
또는, 그 중요한 내용을 추려서 소개하는
[믿는다는 것은 되어간다는 것이다], 2000년, 분도출판사


5. 성지순례 실시
교구와 다른 지역의 성지를 개인적으로나 크고 작은 단체로 찾아가 신앙선열들의 정신을 되새깁시다. 

6. 소공동체운동 활성화를 위한 실천사항
가. 그 실현을 위한 단계별 장기 계획을 수립합시다.
나. 기존의 <구역/반>개념과 <소공동체>개념을 분명히 구분하여 사용합시다.
다. 성서사도직과 소공동체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사제특별연수회>를 개최하겠습니다.  

2012년 대림 제 첫 주일에
천주교 전주교구장 이 병 호(빈첸시오)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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