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성탄메시지
본문
아기 예수님을 우리 가정 안에 모십시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늘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의 사랑과 축복이 교우 여러분과 온 누리에 가득 내리기를 빕니다.
성경은 구세주의 탄생을 이렇게 선포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루카 2,10-11).
이 메시지는 신실한 몇몇 사람들에게만 선포된 것이 아닙니다. “온 백성에게”, 말하자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든 사람에게 선포되었습니다. 이제 구세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두려움에서 벗어나 큰 기쁨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어둠에서 벗어나 빛 속에서 살고, 절망에서 벗어나 희망을 지닌다는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메시지입니다. 믿기지 않는 소식입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당시 목자들도 상상하지 못했던 소식입니다. 이 소식을 믿을 수 있도록 성경은 표징을 보여줍니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루카 2,12).
그런데 믿기지 않는 소식을 믿을 수 있도록 보여주는 이 표징은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합니다. 그 표징이 구유의 아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새로운 모습을 알려줍니다. 곧 하느님은 전혀 다른 분이시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행동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내 생각은 너의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의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이사 55,8-9).
하느님은 권세와 영광 가운데 오시지 않았습니다. 전능하신 분이 오히려 연약한 아이로 오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지만, 당신 자신을 인간의 손에 내맡기시고, 거기에 온전히 의존하십니다. 그분은 하늘도 땅도 마땅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위대한 분이지만, 첫 번째 머물 장소로 마구간을 손수 선택하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곳이 가장 깨끗하신 분의 첫 거주 공간이 됩니다.
왜 이렇게 하실까요? 하느님은 역설적으로 보이는 이런 행동을 통하여 우리 인간과 거리를 두기를 바라셨을까요?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하느님은 당신과 우리 사이의 거리를 없애길 원하십니다. 그분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깊습니다.
그분은 친히 우리 곁에 머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에 앞서 우리를 더욱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구유의 아기 모습을 통하여 우리 각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나는 그대 편에 서 있습니다. 그대를 정말 돕고 싶습니다. 나는 그대의 일생과 함께할 것입니다. 나는 그대에게 유일무이한 교환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곧 나는 그대를 위해 내 목숨을 바칠 터이니, 그대도 나에게 그대의 목숨을 바치시오!”
이것이 바로 참된 사랑이 사랑하는 방식입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 인간은 일이 잘되면, 때때로 한두 가지의 사랑을 실천하곤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언제나 사랑하십니다. 끝까지 사랑하십니다(요한 13,1 참조). 사랑은 그분의 본성입니다. 하느님은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는 사랑, 당신의 모든 것을 주시는 사랑이십니다.
사랑의 이러한 신비에 대해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2코린 8,9). 티토서도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어,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해방하셨습니다”(티토 2,14).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교구는 일 년 전부터 새로운 가정 복음화에 초점을 맞추어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가정 복음화란, 성탄의 관점에서 보자면, 아기 예수님을 가정 안에 모시고 그분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아기 예수님처럼, 가족을 사랑하기 위해 내가 먼저 나 자신을 낮추는 삶의 방식을 통해서 가정은 아름답게 성숙하고 또 완성됩니다. 그러니 아기 예수님을 우리 각자의 마음 안에 모시어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을 실천합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여러 방면에서 날이 갈수록 갈등과 대립, 불신, 차별, 혐오 등이 팽배하고 있습니다. 특히 얼마 전 위헌적 비상계엄으로 우리 사회는 큰 충격을 받고 혼란에 빠졌습니다. 국정은 실종되고, 국민은 생명과 안전에 위협을 느끼며 불안에 떨고 민생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는 국민에 봉사하도록 위임받은 권한을 극도로 남용한 결과입니다.
이러한 혼란한 상황을 치유하기 위한 해법은 오직 아기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당신 자신을 낮추어 연약한 아기가 되신 구세주를 모범 삼아, 위정자가 사익을 멀리하고 국민을 우선하여 국정에 임할 때 우리나라는 한층 밝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도 어려운 이웃을 먼저 배려할 때, 우리 사회는 더욱 따뜻해질 것입니다. “타인에 대한 존중, 정의감, 진심 어린 개방, 대화, 헌신적인 봉사, 연대”(「생명의 복음」, 92항) 등은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겸손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니 아기 예수님을 받아들여 겸손의 길에 들어섭시다.
교우 여러분, 모든 두려움과 절망을 물리치고 아기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겸손과 사랑의 길을 걸어갑시다. 그리하여 기쁨과 평화가 가득한 성탄절과 새해를 맞이하시길 빕니다.
2024년 성탄절에
전주교구장 김선태 사도 요한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