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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부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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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하지 마라.”(마태 28,5.10)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어둠의 온갖 세력을 물리치시고 마침내 승리하셨습니다. 이 부활의 기쁨과 은총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게 내리기를 빕니다.

 

올해 보편교회는 은총의 희년을 보내면서 우리 모두가 희망의 순례자가 되기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곧 우리가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생활함으로써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희망의 증인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의 지향에 따라 저는 주님의 부활을 희망의 관점에서 묵상하고자 합니다.

우선, 주님의 부활을 가장 먼저 체험했던 몇몇 여자들에게서 희망의 작은 몸짓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늘 깊이 느끼며 그분을 기쁜 마음으로 추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태가 돌변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으시고 묻히시고 말았습니다. 이에 그들은 망연자실하였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한없이 짓눌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밀려오는 두려움에 마냥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절망과 어둠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비관론에 빠지지 않았고, 그 현실에서 도피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떤 단순하고 특별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곧 그들은 집에서 예수님의 몸에 바를 향유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절망의 순간에도 그들은 연민의 마음을 잃지 않았고, 주님을 신뢰하며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주간 첫날 매우 이른 아침(마르 16,2), 곧 역사를 새롭게 바꾸는 그날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땅속에 묻힌 씨앗처럼 세상에 새로운 생명을 싹 틔우시려는 중이었습니다. 여자들은 굳은 신뢰와 사랑으로 그 생명이 피어나기를 간절히 희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역사의 발전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온갖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고(2코린 4,8) 희망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이번 위헌·위법적인 12.3 비상계엄의 사태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그 환난에 억눌리지 않고 참된 자유와 평화를 간절히 희망한 사람들 덕분입니다. 곧 참된 민주주의를 희망하며 자신이 해야 할 바를 충실히 이행한 사람들 덕분입니다.

 

이어서 복음은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메시지를 두 번 선포함으로써 여자들에게 희망의 불이 더욱 타오르게 합니다. 한번은 그들이 매우 이른 아침 무덤에 갔을 때 천사가 이렇게 선포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마태 28,5-6). 그들에게 장엄한 부활 소식이 선포된 것입니다. 나머지 한번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에게 직접 나타나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28,10) 하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이나 강조된 두려워하지 마라!”는 메시지를 통해서 여자들은 마음 한쪽에 남아있던 슬픔과 공포를 말끔히 떨쳐버리고 이제 희망을 온전히 품게 되었습니다.

여자들의 이 희망은 안이한 낙관론이 아닙니다. 이 희망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마음 안에 넣어 주신 선물입니다. 특히 무덤에서조차 생명을 생기게 하시는 부활 사건을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악의 결과에서도 선을 이끌어 내실 수 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312)는 확신을 우리 마음속에 심어주십니다. 따라서 이 희망은 삶의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를 굳건히 지탱해 주고, 결코 주저앉지 않게 해 주는 힘입니다. 현재를 용기 있게 살아내고 미래를 담대하게 바라보게 하는 참된 힘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격려의 말로서 내일은 더 나아질 거야!’라고 되풀이하는 세상의 막연한 희망과 다릅니다. 우리의 희망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느님께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변함이 없으시고 성실하시며 온전히 의로우신 분입니다. 그분은 언제나 우리 편에 계시고,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이미 우리를 찾아오셨고, 우리의 모든 상황, 특히 우리의 고통과 불안과 죽음 속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써 당신의 빛으로 우리의 어둠을 몰아내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의 죄악을 물리치시고, 당신의 생명으로 우리의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희망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기에, 우리를 속이지도 실망시키지도 않습니다(로마 5,5 참조).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희망할 수 있고 반드시 희망해야 합니다. 우리는 시련을 겪을 때마다 마음 한쪽에서 속삭이는 어둠의 소리를 듣습니다. 이는 우리의 모든 노력을 헛되다고 비난하며, 우리의 용기를 꺾고 마음을 텅 비게 만드는 교활하고도 나태한 목소리입니다. 이는 우리를 포기하게 만들고, 모든 것을 단념하게 하는 희망의 적으로서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이러한 어둠의 생각에 맞서 용감하게 싸울 것을 바라십니다.

이러한 싸움을 위해 우리는 먼저, 슬픔과 어둠에 굴복하지 않고 희망을 위한 자리를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곧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일이며, 그분을 우리 안에 모시는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 자신 안에 갇혀있지 말고, 주님을 향해 우리 마음의 문을 열어 주님께서 들어오시게 합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빛과 사랑과 생명을 주시도록 그 자리를 마련합시다.

이리하여 우리 안에 자리를 잡은 희망이 더욱 굳건해지도록, 이제 우리는 하느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하느님 사랑의 업적을 기억할 것을 크게 강조합니다(루카 24,6 참조).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이미 행동하셨고, 지금도 행동하고 계시는 모든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억은 절망에 사로잡힌 삶을 다시 일깨우고, 미래의 희망에 마음을 활짝 열게 합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동하셨던 것을 기억하도록 합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희망을 잃게 됩니다.

 

교우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국내외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는 이 시기에, 희망을 품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열어드립시다. 그리하여 부활의 증인인 여자들처럼 어둠에 굴복하지 말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이행하며 희망의 불을 지피는 신앙인이 됩시다.

 

2025년 부활절에

전주교구장 김선태 사도 요한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