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도 교구장 사목교서 -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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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도 교구장 사목교서
“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 (요한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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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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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년을 향한 새로운 가정 복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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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 교구의 사목 방향은 ‘새로운 가정 복음화’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1코린 1,3). 우리 교구는 교구설정 80주년을 맞이한 2017년을 기점으로, ‘교구설정 100주년을 향한 새로운 복음화’를 교구의 중장기 목표로 세우고, 그 계획에 따라 교회 생활의 다섯 가지 핵심 요소를 순차적으로 묵상해왔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느님의 말씀’(2019년)과 ‘교회의 가르침’(2020년), ‘성찬례’(2021년)와 ‘기도 생활’(2022년)을 묵상하였고, 마지막으로 작년 한 해 동안은 ‘사랑의 실천’에 주력하였습니다. 그동안 교구의 사목교서에 따라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신 평신도, 수도자 그리고 사제 여러분에게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이 기회에 저는 이 다섯 가지 요소가 우리의 신앙 쇄신에 꼭 필요한 요소임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앞으로도 계속 이 다섯 가지 요소를 중대하게 여기고 실천하시기를 당부드립니다.
그동안 우리가 주력해왔던 다섯 가지 핵심 요소를 바탕으로, 이제 저는 교구의 사목 방향을 ‘새로운 가정 복음화’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사실 인간이 걷는 “수많은 길 가운데, 가정은 첫째가는 길이요 가장 중요한 길입니다”(「가정교서」, 2항). 그런데 이 가정이 오늘날 위기에 놓여 있어 심각한 사회 현상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현대사회의 병리 현상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혼인과 가정의 온전한 가치를 증진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가정을 교회의 중요 사목 분야로 삼아 “가정을 위한 사목적 배려를 강화하고 개발하는데에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하며, … 가정은 최우선 순위의 문제로 다루어져야”(「가정 공동체」, 65항)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가정의 행복은 세상과 교회의 미래에 결정적인 역할”(「사랑의 기쁨」, 31항)을 한다고 지적하시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 가정이… 가정 사목의 으뜸 주체가 되어”(「사랑의 기쁨」, 200항)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따라서 저는 새로운 가정 복음화의 튼튼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 앞으로 3년 동안 가정 복음화에 지혜와 역량을 모아 혼인과 가정의 세 가지 근본 사명에 주력하고자 합니다. 올해 2024년에는 ‘사랑을 실천하는 가정’에, 2025년에는 ‘생명에 봉사하는 가정’에, 2026년에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가정’에 역점을 두고자 합니다.
2. 하느님께서는 한처음부터 혼인과 가정을 계획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16). 삼위일체 하느님으로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서로 영원한 사랑을 나누시고, 그 위격적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께서는 “한처음에”(창세 1,1)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창세 1,27). 오직 인간만이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모습’이란 삼위일체 하느님의 위격적인 친교에서 보듯이, “자유로이 자신을 내어 주고 다른 인격들과 친교를 이룰 수 있는” 『가톨릭교회 교리서』, 357항) 능력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는 한처음부터 인간을, 서로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어 일치를 이루도록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실제로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창세 2,18) 하고 말씀하시고 남자의 갈빗대를 빼내시어 여자를 지으셨습니다. 그때 남자는 사랑과 일치의 탄성을 이렇게 질렀습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창세 2,23) 따라서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위한 존재”(『가톨릭교회 교리서』, 372항)로서, 서로 인격적으로 일치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남자와 여자가 결합하여 하나를 이루는 일이 혼인이며, 이 혼인을 통해 사랑 안에서 일치된 인격 공동체가 가정입니다.
따라서 가정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영원히 나누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에 그 기원을 두고 있고, 그 사랑이 가정의 “영원한 원형”(「가정교서」, 6항)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자면, 가정의 “내적원리, 영원한 원동력, 최종적 목표는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이, 가정은 인간들의 공동체일 수 없고, 또한 사랑 없이는 가정이 살아남고 성장하여 인간 공동체로서 완성될 수가 없습니다. …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사랑이 계시되지 않을 때, 인간이 사랑을 만나지 못할 때, 사랑을 체험하고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할 때, 사랑에 깊이 참여하지 못할 때, 인간은 자기에게도 불가해한 존재로 남게 되며, 그의 생(生)은 무의미합니다”(「가정 공동체」, 18항).
3.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계획을 되살리시고 완성하십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혼인을 통하여 이루시려던 사랑의 계획은 죄의 상처로 인해 위협을 받았습니다. 곧 부부가 서로를 비난함으로써 그 관계는 왜곡되었고, 상호 간의 매력은 지배와 탐욕의 관계로 변하고, 출산의 고통과 생계유지라는 고생이 부과되었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607항 참조).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죄지은 인간을 버리지 않으셨고 거듭하여 은총을 베풀어주셨습니다. 마침내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처음의 질서를 회복시키시고 완성하십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강생을 통해 인간의 가정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나자렛 가정을 통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강생으로 당신을 모든 사람과 어느 모로 결합시키셨습니다. 인간의 손으로 일하시고 인간의 정신으로 생각하시고 인간의 의지로 행동하시고 인간의 마음으로 사랑하셨습니다”(사목헌장 22항).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 되시어, 아담의 죄로 잃었던 하느님과 닮은 모습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태어나 자라신 그 가정에서부터 그렇게 시작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생애의 대부분을 나자렛 가정에서 드러나지 않게 사셨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는 무엇보다도 그 어머니 마리아와 요셉에게 하신 예수님의 “순종”(루카 1,51)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순종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을 낮추고, 자기 자신을 기꺼이 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 낮춤과 기꺼이 내어줌은 하느님께서 한처음에 계획하신 친교와 일치를 이루는, 곧 사랑을 실현하는 근본 조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자기 낮춤과 내어줌은 마리아와 요셉에게서도 늘 발견되고, 그 결과 나자렛 가정은 성가정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 순종은 마리아와 요셉에게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순종은 하느님 “아버지께 아들로서 하시는 순종의 현세적 표현”(『가톨릭교회 교리서』, 532항)입니다. 그러니까 이 순종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신 순종을 예고하고 미리 이루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셨지만 십자가에서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필리 2,7) 하느님 아버지께 온전히 순종하심으로써, 아담의 불순종으로 파괴되었던 것을 복구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지러졌던 가정과 혼인을 그 본디의 형태로 되돌리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의 한결같은 성실한 희생적 사랑은 부부 사이에 있어야 할 성실한 사랑의 본보기로 제시된 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당신 자신을 주시면서 보여주셨던 그 사랑을 부부가 실천하고 참여할 때, 비로소 하느님의 본디 계획이 완성 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는 말씀 그대로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성령은 새로운 마음을 가져다 주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할 수 있게 합니다”(「가정 공동체」, 13항).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혼인과 가정에 하느님의 사랑을 증언하고 친교의 삶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은총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말하자면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힘을 주시고, 그들의 삶 전체에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스며들게 하십니다. 이렇게 하여 부부는 거룩해지고 고유한 은총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만들며 가정교회를 이룹니다”(「사랑의 기쁨」, 67항).
4. 그리스도인 가정은 그리스도의 ‘예언자직’과 ‘사제직’과 ‘왕직’에 참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죽음을 통하여 혼인과 가정을 그 본디의 형태로 되돌리셨을지라도, 부부관계는 인간적 노력만으로는 부족하고 하느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아담의 죄로 인해 상처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물질만능주의와 극심한 개인주의와 상대주의 등이 만연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상황도 우리의 가치관을 크게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부의 사랑이 제대로 성숙해지고 풍요롭기 위해서는 남편과 아내가 서로 함께 노력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함께 하느님을 바라보고, 하느님을 중심으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혼인과 가정을 처음부터 계획하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며, 이 “삼위일체 하느님은 모든 참된 사랑이 흘러나오는 신비”(「사랑의 기쁨」, 71항)이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아내 둘만의 노력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사이에 하느님이 계셔야 합니다. 이러한 진리는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도 명백하게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포도주가 떨어져 축제의 분위기를 잃을 위기에 처했을 때 하느님의 개입으로 기쁨의 잔치를 계속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요한 2,1-11 참조).
이렇게 혼인과 가정 안에서 하느님의 활동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질 때, 그 가정은 어떠한 모습을 보일까요? 그 가정은 틀림없이 그리스도의 ‘예언자직’과 ‘사제직’과 ‘왕직’에 참여하고 또 실현하는 모습을 띨 것입니다.
가. 믿고 복음을 선포하는 가정(예언자직)
성령의 인도하심에 충실한 가정은,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존경스럽게 듣고 또 선포함으로써 자신의 예언적 역할을 완수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이렇게 강조하셨습니다. “가정은 교회처럼 복음이 전달되는 곳이요 거기서 복음이 빛나는 곳이기도 합니다”(「현대의 복음선교」, 71항). 사실 가정은 우선적으로 복음화되어야 하는 곳이며 동시에 복음 선포를 위한 가장 작은 공동체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현대 가정의 위기를 지적하면서 “복음의 메시지가 가정 안에서, 그리고 가정들 사이에서 언제나 울려 퍼져야”(「사랑의 기쁨」, 58항) 한다고 권고하십니다. 따라서 부부는 서로에게뿐만 아니라 자기 자녀들과 다른 가정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특히 가정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신앙을 이어주는 자리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신앙을 가르쳐 주는 첫 스승”(「사랑의 기쁨」, 16항)입니다. 그렇게 신앙을 전하기 위해서 “부모는 자신이 참으로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의 필요성을 느껴야”(「사랑의 기쁨」, 287항) 합니다. 부모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먼저 체험할 때 그 놀라운 사랑을 비로소 자녀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부모는 ‘‘가정교회’’야말로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이 본격적인 교리교육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곳”(「현대의 교리 교육」, 68항)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정은 또한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도구입니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가정들에게 “그리스도의 현존과 그의 사랑에 빛나는 징표”(「가정 공동체」, 54항)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완전히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그들을 이끌고 지지해 주어야 합니다. 나아가 그리스도인 가정은 자기 자녀들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게 교육함으로써 사제나 수도자의 성소를 심어줄 수 있습니다.
나. 하느님과 대화하는 가정(사제직)
성령의 인도하심에 충실한 가정은, 둘째로 대사제이신 그리스도의 사제직에도 참여합니다. 혼인성사를 받음으로써 탄생한 그리스도인 가정은 성사와 생활의 봉헌을 통해서, 그리고 기도 생활을 통해서 하느님과 깊은 대화를 나눕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인 가정은 스스로 성화될 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와 세계를 성화”(「가정 공동체」, 55항)합니다.
부부는 혼인성사의 힘으로 혼인과 가정의 임무를 수행하여 날로 더욱 자기완성과 상호성화를 위하여 나아가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사랑의 선물인 성체성사를 통하여 부부는 그리스도 친히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그렇게 서로 자신을 내어주며 영원한 신의로 서로 사랑하는 힘을 끊임없이 길어 올립니다. 아울러 가정의 구성원들이 성체를 나누어 모심으로써 한 몸이 되고, 교회의 더욱 넓은 일치에 참여합니다. 고해성사를 통하여 부부는 하느님의 풍성한 자비를 만나고, 그리하여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여 다시 가정의 일치를 이룹니다.
이 자리에서 특히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가 함께 공동으로 바치는 가정기도를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정기도는 가정의 모든 일을 하느님의 손에 맡기며 그분의 사랑 어린 개입을 간절하게 청하는 기도입니다. 여기에서 “부모는 자녀들에게 기도를 가르칠 책임과, 자녀들이 하느님의 신비를 점차로 발견하며 그분과 개별적 대화를 하도록 인도할 특별한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가정 공동체」, 60항). 자녀들에게 기도를 가르치는 데에는 부모의 구체적인 모범과 생생한 증거가 필요합니다. 곧 부모는 자녀들과 함께 기도함으로써만 자신의 사제직을 수행하면서 자녀들의 마음의 심층에 파고들 수 있고 그들에게 지워질 수 없는 인상을 남길 수 있습니다.
아울러 “모든 가족들이 특히 주일과 축일의 미사성제에 함께 참여하는 것”(「가정 공동체」, 61항)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인 가정의 열매는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전례와 자기 봉헌과 기도로써 보장된 삶에서만 나오는 것”(「가정 공동체」, 62항)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다. 인간에게 봉사하는 가정(왕직)
성령의 인도하심에 충실한 가정은, 마지막으로 인간에 대한 봉사의 정신과 실천을 나누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왕직에도 참여합니다.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는 새 계명을 주셨고, 이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인 성령까지 베풀어 주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가정은 모든 인간을 환영하고 존경하며 봉사해야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가정이야말로 사랑을 배우고 키우는 학교입니다. 여기서 사랑이란 자기중심적인 사랑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이타적인 사랑입니다. 가정은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하고 이해하며 용서하는 법을 배우고 키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사랑의 학교입니다. 특히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그리고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그런 사랑이 촉진되고 성장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정을 넘어, 이런 사랑은 같은 신앙을 나누는 형제와 자매에게로 나가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가난한 이, 병약자, 고통을 당하거나 불의하게 취급당하는 사람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찾을 줄 알고, 사랑받고 봉사 받을 동료 인간을 발견”(「가정 공동체」, 64항)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그리스도인 가정은 사랑안에서 교회를 건설하면서 동시에 인간과 세계에 봉사하게 됩니다.
5. 우리 신앙 선조들은 가정교회를 실현하였습니다.
새로운 가정 복음화를 강조하는 이 기회에 우리 신앙 선조들의 모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순교복자 가정을 위시하여 우리 신앙 선조들은 당시 혹독한 박해 중에서도 ‘가정교회’를 이루었습니다. 신앙 선조들은 ‘온 가족’이 구원되기를 바랐고, 가정을 신앙의 요람으로 여겼습니다. 말하자면 가정에서 신앙 선조들은 “말과 모범으로 자기 자녀들을 위하여 최초의 신앙 선포자”(교회헌장 11항)가 되었고, 기도하고 감사를 드리며 거룩한 삶을 증언하고 극기와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집 밖에서 자비를 베풀고 교리를 가르치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가정 안에서부터 본인이 가르치는 바를 실천하여 가족 모두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때문에 그 자녀들은 가정 안에서 끊임없이 기도하는 법을 배우고, 궁핍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재물을 어려운 이웃과 나누는 사랑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신앙 선조들의 가정은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가정 안에서 가족들이 스스럼없는 친교를 이루었고, 성령 안에서 성부와 성자께서 이루시는 친교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훌륭한 모범에 많은 사람이 감화를 받아 입교하는 바람에 박해의 상황 속에서도 신자들이 늘어났던 것입니다. 신앙 선조들의 이러한 훌륭한 모범을 본받아 우리도 가정교회를 이루도록 마음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6. 몇 가지 구체적인 사항을 제안합니다.
이제 우리 교구가 올해부터 앞으로 계속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내용을 제안합니다.
첫째, 매월 마지막 주일에는 모든 본당에서 가정 성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합시다. 이때 가족 구성원들이 되도록 같은 미사에 함께 참여하여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둘째, 지구나 본당 차원에서 가정과 생명, 성(性)과 사랑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함께 배우는 자리를 마련합시다. 특히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에서 사랑을 빼어나게 설명하고 있는 ‘제4장 혼인의 사랑’을 꼭 읽고 묵상합시다.
셋째, 각 가정은 ‘가정교회’를 이루기 위해 가정기도를 바칩시다.옛 전통을 되살려 아침 저녁으로, 아니면 적어도 저녁에 가족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시간을 정하여 기도를 함께 바칩시다. 그리고 가정기도 후에는 부부가 서로, 또 부모가 자녀에게 안수기도를 합시다. 이때뿐만 아니라 삶의 중요한 계기마다 서로에게 축복해 주는 안수 기도는 가족 간의 사랑과 신뢰를 한층 깊게 할 것입니다.
넷째, 첫영성체 교리 때 되도록 부모와 함께하는 ‘가정교리’를 활용합시다. 가정교리는 “가정은 교회처럼 복음이 전달되는 곳이요 거기서 복음이 빛나는 곳”(교황 바오로 6세)이라는 교회의 이상을 잘 구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가족이 함께 교구의 성지들을 순례하여 순교자들을 현양하고 그 훌륭한 신앙을 본받읍시다. 특히 물질만능주의와 극심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한 오늘날, 순교자들이 보여주신 모범처럼 하느님을 우리 삶의 첫째로 모십시다.
여섯째, 가정사목국이 가정의 성화를 위해 연례적으로 주관하는 각종 프로그램이나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합시다. 이 프로그램과 행사는 특히 생애 주기별로 계획된 것으로서 가정교회를 이루는 데 아주 유익합니다. 아울러 이 사목교서의 ‘부록’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한 여러 실천 사항을 꼭 살펴보시고 각자의 상황에 알맞게 자발적으로 활용합시다.
일곱째, 그동안 실천했던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밤 9시 주모경 바치기’ 운동을 앞으로도 지속합시다. 이 기도 운동은 한국천주교의 모든 교구가 동참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 밤 9시 기도에 가정의 성화를 위해서도 지향을 두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후손들을 위한 “우리의 공동의 집”(「찬미받으소서」, 1항)인 ‘지구’를 살리고 피조물을 보호하기 위한 생태영성을 실천합시다. 지구온난화를 막고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교구의 ‘생태환경위원회’와 함께 기도하고 행동하되, 가정에서부터 실천하며 함께 노력합시다.
2024년 한 해 동안,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혼인과 가정의 온전한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고 증진함으로써 새로운 가정 복음화의 길을 함께 걸어갑시다. 저와 여러분을 통해 하느님께서 ‘한처음에’ 계획하신 일이 실현되어 하느님의 사랑을 노래할 수 있기를 빕니다.
천주교 전주교구장 김선태(사도 요한)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