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도 교구장 사목교서 -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
본문
2021년도 교구장 사목교서
“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 (루카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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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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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년을 향한 새로운 복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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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로마 1,7). 올해(2020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사태는 전 세계에 엄청난 충격과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지금까지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는 이미 5천2백만 명을 넘어섰고, 무려 128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2020.11.13. 현재).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공포와 불안으로 정상적인 일상생활은 이미 오래 전에 무너졌고, 대부분의 나라가 각종 모임과 행사를 통제하고 국경마저 봉쇄함으로써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영역에서 크나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한동안 교우들과 함께하는 미사를 중단하는 아픔을 겪었고 지금도 많은 제약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교구의 방역지침에 기꺼이 협력해주신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 우리 모두 생태적 회개가 필요합니다.
전대미문의 이러한 사태를 맞아 그 원인과 대책에 대한 성찰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항상 거론된 단골 주제는 지구환경이었습니다. 과연 인류는 그동안 성장과 발전을 지상과제로 삼아 지구를 무제한으로 개발하고 소비했습니다. 그 결과 기온이 상승하고 자원이 고갈되는 등 생태계의 질서가 무너져 코로나19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코로나로 인해 잠시 산업 활동이 멈추자 지구환경이 개선되었습니다. 미세먼지가 사라져 푸른 하늘이 보이고, 세계 곳곳에서 보금자리를 빼앗겼던 야생동물들이 잇달아 출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류가 지구온난화를 비롯하여 생태계 보호에 지금부터라도 적절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앞으로는 코로나보다 더 엄청난 파국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점을 예견이라도 하듯이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지난 2015년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인간의 무책임한 이용과 남용으로 지구가 황폐해지고 울부짖고 있다고 안타까워하시면서 ‘생태적 회개’를 거듭 촉구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황청 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을 위한 부서는 이 회칙 반포 5주년인 올해를 ‘특별 기념의 해’(2020.5.24.-2021.5.24.)로 정하고, 2022년부터 7년 동안 생태적 회개를 구체적으로 실천하자고 호소했습니다. 이에 한국 천주교 주교단은 지난 추계 정기총회를 통해 『울부짖는 우리 어머니 지구 앞에서』라는 특별사목교서를 발표하며 모든 교구가 생태적 회개 활동에 적극 동참하기로 다짐했습니다.
따라서 우리 교구는 보편교회와 일치하여 앞으로 7년 동안 생태계 질서의 회복을 위한 여정에 적극 참여할 것입니다. 울부짖는 지구에 귀를 기울이며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보존하고 피조물들을 지키는 노력은 단순히 환경보호 차원의 일만은 아닙니다. 이는 시대의 긴급한 요청으로서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실천해야 할, 신앙에 따른 사랑의 행동입니다.
3. 우리 교구의 사목방향은 ‘성찬례’입니다.
한편, 코로나 사태는 교회의 사목활동에 대해서도 진지한 성찰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방역으로 인해 교회활동이 제약을 받는 가운데, 교회는 신앙의 본질적인 요소를 성찰하며 코로나 이후의 사목 방향에 대해 거듭 고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 여정 중에 있습니다.
이미 우리 교구는 ‘교구설정 100주년을 향한 새로운 복음화’라는 중장기 계획에 따라 교회생활의 다섯 가지 핵심 요소를 순차적으로 묵상해 왔습니다. ‘하느님의 말씀’(2019년)과 ‘교회의 가르침’(2020년)에 이어 올해부터는 ‘성찬례’를 묵상하며 신앙 쇄신을 추진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이는 공교롭게도 매우 시의적절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코로나로 인해 교우들과 함께하는 미사가 중단되었을 때 미사의 소중함을 더욱 깊이 깨달은 분들이 있었던 반면, 미사를 TV나 영상 미사로 대신하거나 다른 신앙행위로도 대체할 수 있지 않느냐는 의견들도 있어 성찬례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 시급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올해에는 성찬례를 중심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을 다지고 내적으로 성장하는 한해가 되기를 빕니다.
4. 성찬례는 십자가의 희생 제사입니다.
오늘날 모든 영역에서 수평적인 차원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지, 미사를 인간적 만남이나 형제애의 잔치로 한정하여 이해하는 경향이 더러 있습니다. 하지만 미사는 무엇보다도 수직적인 차원 곧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내어주신 희생 제사입니다. 이 희생적 성격이 먼저 강조되어야 성찬례의 수평적 의미가 제대로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나누셨습니다. 이때 빵과 잔을 드시고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흘릴 피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20)하고 성체성사를 제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예수님은 실제로,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최후만찬 중에 말씀하신 대로,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몸을 내어주시고 당신의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따라서 십자가 사건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신 희생 제사입니다. 주님의 분부에 따라 교회는 이 희생 제사를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봉헌해 왔는데, 이것이 바로 성찬례 곧 미사입니다.
십자가의 이 희생 제사에는 놀라운 사랑의 신비가 담겨 있습니다. 먼저 하느님 아버지께서 모든 인간을 남김없이 구원하시려는, 그야말로 아무도 배제하지 않으시는 보편적인 사랑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 성부의 보편적인 사랑을 기꺼이 받아들이시면서 그 사랑의 “완전한 도구”(가톨릭교회 교리서, 609항)가 되신 예수님의 사랑이 계시됩니다. 바로 이러한 놀라운 사랑 때문에 십자가의 제사는 모든 제사들을 완성하고 뛰어넘는, 유일하고 결정적인 제사입니다. 이 희생 제사를 통하여 우리는 비로소 죄에서 벗어나 하느님과 화해하고 일치하게 되었습니다.
미사는 이러한 희생 제사를 단순히 기념(紀念)하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로 재현(再現, 현재화)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희생 제사와 성찬의 희생 제사는 동일한 제사입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367항). 따라서 미사 안에서 구원의 중심 사건인 주님의 죽음과 부활이 실제로 현존하게 되며, “우리의 구원활동이 이루어집니다”(교회헌장, 3항).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몸을 내어주시고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피를 흘리시기 때문입니다.
5. 성찬례는 거룩한 친교의 잔치입니다.
주님이 성찬례에서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는 방식은 특히 빵과 포도주의 형상입니다. 빵과 포도주는 사제의 축성으로 주님의 몸과 피로 변화되어,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각각 온전히 현존하십니다. 이렇게 주님이 특별하게 현존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참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요한 13,1) 주님은 우리 가운데 영원히 머물러 있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성찬례 안에서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먹고 마심으로써 주님과 내밀하게 결합하고 일치를 이룹니다. 그분과 참으로 하나가 됩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 머무르고, 주님도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요한 6,56 참조).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가 아니라 주님의 힘으로 살게 되며, 나아가 장차 누릴 영원한 생명을 보증 받습니다.
그러므로 성찬례는 주님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의 양식으로 내어 주시는 진정한 잔치입니다. 성찬례보다 주님과 더욱 긴밀하게 결합시키는 거룩한 친교의 잔치는 없습니다. 때문에 주님은 이 잔치에 우리를 거듭 초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요한 6,53). 이것은 결코 비유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 그대로 “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요한 6,55)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의 이 초대에 응답하기 위해서는 합당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부당하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그분의 잔을 마시는 자는 주님의 몸과 피에 죄를 짓게 되기”(1코린 11,27) 때문입니다. 고해성사를 통하여 우리는 마음을 정화해야 하고, 공복재를 통하여 우리의 몸을 깨끗이 준비해야 합니다. 합당한 준비를 갖출수록 거룩한 친교의 기쁨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6. 성찬례를 통하여 교회가 세워집니다.
성찬례는 주님과의 친교만이 아니라 우리들 상호간에도 일치를 이루어줍니다. 그러기에 성찬례는 교회를 세우는 사랑의 잔치입니다.
교회는 글자 그대로 보면 ‘불러 모음’이란 뜻으로, 주님께서 불러 모으신 집회 혹은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바로 이러한 의미가 성찬례 안에서 그대로 실현됩니다. 벌써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성찬례를 위하여 제단 주위에 모이는데, 이는 그 자체로 교회의 현현(顯現)입니다. 성찬례를 통하여 교회가 형성됩니다.
나아가 성찬례는 교회를 구체화하고 더욱 자라나게 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미사 때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신앙으로 서로 더욱 굳건하게 하나가 됩니다. 그리고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써 각각 그리스도와 더욱 긴밀하게 결합됩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와 결합된 교우들은 서로 깊은 일치를 이루어 하나의 몸이 됩니다. 곧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룹니다. 이러한 신비를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강조합니다.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는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1코린 10,16-17). 따라서 성찬례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를 성장시키는 잔치입니다.
7. 성찬례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교회 헌장, 11항)입니다.
아울러 교회는 성찬례에서 자신의 생명을 얻습니다. 말하자면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에게서 양식을 얻고 그분으로부터 빛을 받습니다. 우리는 성찬례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내어 주시는 사랑에 동참하게 되며, 자신의 모든 생각과 행위에서 이와 같은 사랑을 살 수 있는 준비를 갖추게 되고 그러한 삶에 투신합니다”(진리의 광채, 107항). 이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을 자캐오는 잘 보여줍니다. 그는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신 다음, 완전히 회심하여 자기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자기가 속인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네 곱절로 갚아 주기로 결심하였습니다(루카 19,1-10 참조).
주님은 분명 성찬례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께 결합시키시고 우리를 길러주십니다. 이로써 우리는 서서히 신비롭게 변화되어 마침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이 예배는 우리 홀로가 아니라 우리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바치는 완전한 자기 봉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성찬례는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일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희생 제사입니다. “교우들의 삶, 노동, 고통, 기도 등은 그리스도의 그것들과 결합되고 그리스도의 온전한 봉헌과 결합되어, 이로써 새로운 가치를 얻게 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368항).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성찬례는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전례 헌장, 10항)입니다. 과연 성찬례 안에는 교회의 모든 영적 선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곧 우리의 파스카이시며, 살아 있는 빵이신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 안에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생명을 얻고 또 생명을 주는 당신 살로써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십니다”(사제 생활 교령, 5항). 따라서 주님과 결합하여 생명을 누리는 우리는 이제 자신 안에 갇혀 있기보다는 인류를 위한 ‘성사’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표징이며 도구가 되고,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한 세상의 빛과 소금(마태 5,13-16)이 됩니다.
8. “주님의 만찬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이상과 같이 성찬례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몇 가지만을 보아도, 우리는 미사성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때문에 4세기 아프리카 아비티나의 순교자들은 미사를 엄격하게 금지하는 황제의 박해를 받았을 때, “주님의 만찬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교구의 자랑스런 순교 성인들과 복자들을 위시하여 신앙 선조들은 성찬례 거행을 위해 온갖 위험을 기꺼이 감수했습니다. 그리고 미사성제에 참여하기 위해 먼 거리를 왕래하는 고된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성체를 모시기 위해 마음과 몸을 준비하며 정성을 다했습니다. 특히 호남의 사도인 순교 복자 유항검 아우구스티노는 성찬례의 정신대로 자신의 재화를 가난한 이웃과 나누었고, 동정부부 순교 복자 유중철 요한과 이순이 루갈다도 영성체를 통한 주님과의 일치를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성찬례가 우리 신앙인에게 중요한 이유는 주님을 직접 받아 모심으로써 이뤄지는 주님과의 인격적이고 친밀한 만남 때문입니다. “이러한 주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은 핵심적이고 필수불가결하며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습니다”(교황청경신성사성 공문, 432/20). 바로 이런 이유로 교회는 어떠한 방법도 교우들의 직접적인 미사 참례와 비교할 수도 대체할 수도 없다고 선언합니다. 물론 TV나 동영상 미사는 병자나 물리적으로 성당에 갈 수 없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특히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교우들과 함께하는 미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훌륭한 역할을 해 왔지만, 직접적인 미사 참례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영상 언어는 현실을 반영할 뿐 그 현실을 실제로 되살리는 것이 아닙니다”(사랑의 성사, 57항). 따라서 저는 우리 모두가 성찬례에서 살아 계신 주님을 직접 만나고 그분의 사랑을 풍성히 누리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9. 몇 가지 구체적인 사항을 제안합니다.
이제 우리 교구가 올해부터 앞으로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내용을 제안합니다.
첫째, 비록 교우들이 참여하지 않더라도 교구의 모든 본당 사목구에는 매일 미사성제가 거행되어야 합니다. 신부님들은 첫 미사 때와 같은 기쁨과 열정으로 성찬례를 거행하도록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잘 거행된 성찬례는 최고의 교리교육입니다.
둘째, 주일은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며 교우들의 생활리듬을 결정짓는 날입니다. 주일미사에 반드시 참여하여 부활하신 주님을 중심으로 한 주간을 살아갑시다. 어떤 교부는 그리스도인을 “주님의 날을 따라서 살아가는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가급적 평일에도 성찬례에 자주 참여하고, 조금 일찍 성전에 오시어 성실한 준비로 미사를 봉헌합시다.
셋째, 주님이 참으로 현존하시는 성체 공경에도 게을리하지 맙시다. 성체강복, 성시간, 성체조배 등에 적극 참여하여 주님과의 친교를 더욱 깊게 다집시다. 주님은 특히 감실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넷째, 본당이나 시설은 성체성사나 전례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함께 배우는 자리를 적극 마련합시다. 미사 전후를 이용한 짧은 교육 혹은 몇 차례의 특강이나 정기적인 강좌 등을 개최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성찬례에 대한 교회의 문헌(가톨릭교회 교리서, 1322-1419항;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주님의 날; 사랑의 성사; 전례 헌장)을 통독하고 묵상합시다. 아는 만큼 믿고 또 행동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성체성사의 핵심은 거저 받은 사랑에 감사하면서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우리 교구 순교자들이 이를 깨달아 자선에 힘썼던 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 자신을 내어주는 성체의 삶을 살아갑시다. “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26).
여섯째, 그동안 실천했던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밤 9시 주모경 바치기’ 운동을 앞으로도 지속합시다. 주님은 끊임없이 간청하라고 이르셨습니다.
일곱째, 올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 희년’을 맞아 관련된 성당이나 성지 특히 교구의 성지를 적극 순례하여 순교자들을 현양하고 그 신앙을 본받읍시다.
마지막으로, 주교단의 구체적인 실천지침에 따라 지구온난화를 막고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함께 기도하고 행동합시다.
2021년 한 해 동안, 저와 여러분은 성찬례의 보화를 새롭게 발견하고 그 보화를 중심으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킴으로써 새로운 복음화의 길을 함께 걸어갑시다. 여러분 모두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빕니다.
천주교 전주교구장 주교 김선태(사도 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