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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성탄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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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연약한  아기  예수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온 누리에 가득 내리기를 빕니다.

성탄은 축제 가운데 축제입니다. 성탄은 무엇보다도 마음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을 크게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한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면, 아기는 많은 것을 변화시킵니다. 가장 먼저 부모의 생활 리듬을 바꿉니다. 그 가족과 친지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무언가를 변화시킵니다. 태어난 갓난아기를 바라보면, 경직되고 완고한 우리의 마음이 대개는 녹아내립니다. 아기는 그저 단순하게, 완전히 원초적이고 무기력하게 존재합니다. 이런 연약한 아기에는 우리의 도움과 사랑이 필요하기에 우리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도 우리 마음을 움직이십니다. 하지만 여느 아기와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 마음을 크게 변화시키십니다. 이 신비를 헤아려 봅시다.

천사는 아기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루카 2,11-12).

천사의 말씀에 따르면, 아기 예수님은 아무 데서나 오신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에게서 오십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질서를 세우기 위해 오십니다. 죄악의 권세를 부수기 위해 세상에 오십니다. 인간과 세상을 근본적으로 구원하기 위해, 곧 증오와 적개심을 없애고 사랑과 평화로 다스리기 위해 오십니다.

세상을 이렇게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사람에게는 분명 권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를 위해 오신 분이 아주 작고, 무기력한 아이의 모습으로 지금 구유에 누워계십니다. 아무런 힘도 없이 가난하고 무방비 상태로 계십니다. 이렇게 가난하고 연약한 아기로 오신 까닭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를 하나도 잃지 않고 남김없이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1티모 2,4 참조).

인간의 회심과 구원은 폭력으로 결코 강요될 수 없습니다. 오직 마음의 변화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폭력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비참한 결과를 가져다줍니다(「복음의 기쁨」, 60항; 「모든 형제들」, 261항 참조). 그러기에 하느님은 그렇게 연약하고 무방비의 상태로 가난하게 오십니다. 하느님은 오늘날 많은 국가지도자와는 달리, 당신의 권능을 내세우지 않으십니다. 철권으로 다스리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당신의 이름에 걸맞게 행동하십니다. 그분의 이름은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 계시다.’입니다(마태 1,23 참조). 그분은 우리 곁에, 우리 가운데 사십니다.

하느님이 이렇게 연약하고 무방비의 모습을 취하신 것은 탄생 때만이 아닙니다. 공생활 중에도 계속 그러하십니다. 그분은 압제자의 지팡이를 무력으로 부러트리시지 않고, 오히려 빌라도에 의해 채찍질을 당하십니다. 사람들에게 침 뱉음을 당하시고 조롱을 받으십니다. 마침내 “죽음에 이르기까지”(필리 2,8) 당신 자신을 낮추십니다. 따라서 그분은 우리 가운데 계시지만, 분명 우리와 다르게 사신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작은 아기로 오신 하느님이 일생 동안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가난하고 연약한 모습을 취하신 궁극적인 이유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 때문에 그분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시고, 당신 자신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내어주십니다. 그분은 과연 사랑에 전능하신 분입니다.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모든 일을 다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 때문에 이렇게 가난하고 연약한 길을 걸으시는 하느님은 때때로 어리석어 보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사람들이 하는 일보다 지혜롭고, 하느님의 힘이 사람의 눈에는 약하게 보이지만 사람의 힘보다 강합니다”(공동번역성서 1고린 1,25). 끝까지 가는 그러한 사랑만이 마침내 승리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아기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심으로써 우리를 겁박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의 사랑을 간절하게 구애하십니다. 그분의 구유, 가난과 작음, 연약함과 무방비의 상태 등은 우리에게 구애하시는 그분의 행동 방식입니다. 따라서 그분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그분께 마음을 열고 그분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이를 통해 그분은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십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새롭게 창조됩니다. 우리가 아기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여 새롭게 된다면, 우리 주변이 점점 달라지고, 참된 평화가 퍼질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참된 평화를 향한 방향전환은 바로 나 자신에게서 시작합니다. 우리 각자의 삶에서 시작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우리 자신이 성탄의 신비에 사로잡혀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아기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애하십니다.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를 바라십니다. 그분께 마음을 열고, 하느님이 세상에 가져다주신 위대한 사랑을 받아들입시다. 그리하여 기쁨과 평화가 가득한 성탄절과 새해가 되기를 빕니다.

 

2023년 성탄절에

전주교구장 김선태 사도 요한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