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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성탄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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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요한 1,9)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늘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의 사랑과 축복이 교우 여러분과 온 누리에 가득 내리기를 빕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탄생을 큰 빛으로 소개합니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이사 9,1)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9) 주님께서 어두운 이 세상에 탄생하시어 당신 백성에게 밝은 빛을 비추신다는 것입니다. 탄생하신 주님께서 당신 백성 한가운데 계심으로써 백성의 근심과 슬픔을 덜어주시고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은 그 시초부터 어둠을 가까이 하였습니다. 우리의 첫 조상은 하느님을 배반하였고, 이어서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는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그 이후로 이 세상에는 죄로 인한 타락이 전반적으로 이어졌습니다. 과연 인류의 역사는 억압과 증오, 폭력과 전쟁 등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통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어둠의 질곡에서도 하느님께서는 기다리셨습니다. 인간이 당신께 돌아설 것을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거듭된 인간의 거부 때문에 그만 포기하실 이유가 충분했지만 그분은 결코 그러시지 않았습니다. 기다리시고 또 기다리셨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성실하신 당신 자신을 부정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2티모 2,13)

따라서 어두운 이 세상을 비추는 성탄은 하느님께서 정말 우리 아버지이시며 우리 인간에 대한 기대를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어두운 죄악이라도 그분의 사랑을 꺾지 못합니다. 아니 하느님의 사랑을 소진시킬 수 있는 죄악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탄의 엄밀한 메시지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의 부패와 죄악보다 더 강하십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당신 자녀인 우리에 대한 기대를 조금도 접지 않으십니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 아버지처럼, 그분은 역사의 문지방에서 멀리 내다보시며 당신 자녀의 귀환을 간절히 기다리십니다.

이런 기다림 가운데 하느님께서 마침내 당신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천사는 탄생하신 주님에 대해 이렇게 선포합니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루카 2,12) 표징치고는 정말 보잘것없습니다. 약속된 구세주가 화려하고 위엄한 모습으로 오실 줄 알았는데, 소리 없이 오시고 초라한 곳에 누워계시다니요?! 전쟁과 폭력 등 어둠의 세력을 조금도 맞설 수 없는 무기력한 모습입니다. 오히려 외부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연약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행동방식입니다. 그분은 항상 겸손하게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행동하십니다. 그래서 때로는 무능하거나 어리석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힘이며 하느님의 지혜”(1코린 1,24)입니다. 사람의 어떤 힘보다 더 강하고, 사람의 어떤 지혜보다 더 지혜롭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기대와 생각과는 다르게 행동하십니다.

사실 주님께서 연약한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이유는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하나도 잃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모두가 당신께 다가설 수 있도록 당신 자신을 낮추시고 작게 하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너무나 작은 아이가 되셨기 때문에, 이제 그분께 다가서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교우 여러분, 저는 이 성탄절에 천사가 목자들에게 전했던 것처럼 두려워하지 마라.”(루카 2,10)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북미회담 결렬과 그 이후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권력자들의 기득권 집착으로 인한 국론분열, 계층 간 갈등, 각종 사회적 혼란 등 짙은 어둠이 드리워져있지만 우리 곁에는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이런 어두운 상황을 익히 알고 계시고 또한 이에 좌절하지 않으십니다. 계속 우리의 돌아섬을 기다리십니다. 마침내 구세주께서 우리에게 탄생하시어, 우리와 함께 걷고 우리의 발걸음을 비춰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무엇에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울러 저는 큰 빛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에게서 우리의 어둠을 밝히는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세주는 우리 모두를 구원하시기 위해, 특히 힘없는 자를 우선적으로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 자신을 낮추어 연약한 아기가 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주님의 모범에 따라 무엇보다도 먼저 가난한 사람을 배려해야 합니다. 강대국은 약소국을, 권력자는 비천한 자를 먼저 생각해야 하고, 공동체는 가장 어려운 사람을 먼저 배려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을 낮추는 하느님의 겸손을 본받아야 합니다. 작은이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작은이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작은이로 오신 그리스도의 빛이 온 누리를 비추도록 우리가 먼저 겸손의 길에 들어섭시다.

교우 여러분, 하느님께서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굳은 확신으로 모든 두려움을 물리칩시다. 그리고 아기 예수님처럼 우리 자신을 낮추어 작은이에게 먼저 다가갑시다. 그리하여 성탄의 신비가 온 누리에 가득하게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