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도 교구장 성탄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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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1225 성탄메시지2017년1.hwp (15.5K) 11회 다운로드 DATE : 2017-12-28 16:58:41
본문
그분은 당신 자신을 작게 하셨습니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구원자가 태어나셨다.”(루카 2,11) 천사가 우리에게 전해준 놀라운 메시지입니다. 이 메시지는 시대의 장구한 흐름에도 늘 신선함을 유지하는 소식입니다. 교회에 끊임없이 큰 기쁨을 주는 소식입니다. 그 기쁨을 감출 길이 없어 환호성마저 지르게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도 모두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의 은총과 평화와 더불어 기쁨을 가득 누리시길 빕니다.
그런데 탄생하신 구세주는 비범하거나 웅장한 모습이 아닙니다. 그분은 어느 인간의 아이처럼 그저 작은 아기이십니다. 그 아기는 으리으리한 궁전이 아니라 보잘것없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십니다. 그분은 호화로운 요람이 아니라 초라한 구유에 누워계십니다. 정말 단순하고 가난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느님께서 늘 활동하시는 방식입니다. 하느님에게는 다른 방식은 없습니다. 항상 단순하고 가난하게 활동하십니다. 왜 그렇게 늘 활동하실까요? 성탄의 신비와 관련하여 다음 세 가지로 대답할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 모두가 하나도 예외 없이 당신께 다가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하느님께서 위대한 모습으로 권능을 떨치고 오셨다면, 우리는 두려운 나머지 그분을 멀리하거나 다가간다 해도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유가 결여되어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또 만일 하느님께서 호화로운 모습으로 찬란하게 오셨다면, 우리는 그 화려함과 영화에 도취되어 욕심을 채우기 위해 그분께 다가섰을 것입니다. 이것도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당신에게서 조금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또한 허황된 욕심에서 벗어나 당신을 진정으로 믿을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는 단순하고 가난한 방법을 택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는 오직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작게 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그분은 당신 자신을 작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누구나 그분께 다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작은 아기에게 두려움을 느끼거나 다가가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히려 모든 아기에게는 무언가 새롭고 순결하며 아름다운 것, 말하자면 우리가 사랑하고 무릎 꿇어야 하는 어떤 광채 혹은 신적 현존과 같은 것이 있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서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듭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기 예수님께 다가갈 수 있습니다. 어른이나 아이,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 부유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 할 것 없이 모두 예수님께 다가갈 수 있습니다. 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은 당신께 다가온 사람 모두에게 해맑은 웃음을 지어보이실 것입니다. 그 웃음이 바로 하느님의 평화이며 사랑입니다. 교우 여러분은 그분께 다가가 그 평화와 사랑을 가득 누리시길 바랍니다.
둘째, 당신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작게 하시어 무방비 상태인 작은 아기가 되셨습니다. 모든 아이가 어머니의 돌봄을 필요로 하듯이, 하느님도 우리의 따뜻한 사랑을 필요로 하는 아기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은 우리의 도움과 사랑을 필요로 하는 가난한 아기이십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느님께서 아기가 되신 이유는 우리의 사랑을 간청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 사랑이 피어나 우리를 정화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당신을 가슴에 안을 수 있도록 아기가 되신 것입니다. 그분은 실제로 사랑 외에 다른 어떤 것도 바라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기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이것은 아기처럼 무방비 상태에 있는 사람들, 연약한 사람들,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구걸하는 어린이, 궁핍하고 굶주린 어린이, 사랑을 겪어보지 않은 어린이에게 눈을 돌리라는 뜻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베푸는 일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아기 예수님은 사랑의 빛으로 세상을 환하게 밝히도록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마지막 셋째 이유는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루카 2,12)의 모습에서 알 수 있습니다. 누워 있는 상태는 바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고요하게 멈추어 있는, 무언가를 위해 긴 시간을 마련한 상태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시간을 내십니다. 그분은 본래 시간을 초월하신 분인데 우리를 위해 시간 안에 들어오셨고, 지금은 구유에 누워 우리를 위해 시간을 내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라도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이 많은 분이십니다. 지금은 아기가 되어 구유에 누워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아기 예수님께 시간을 내면 됩니다.
교우 여러분, 구유에 누워 계신 그분께 달려갑시다. 그리고 해맑은 웃음을 지으시는 그분의 얼굴을 바라봅시다. 아울러 그분을 가슴에 꼭 껴안읍시다. 그러면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요한 1,16) 받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