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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백합 제88호(봄) 신앙의 오솔길

본문


IV. 본기도

하느님은 모든 이의 하느님이시다 : 공동 기도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

 

사제는 ‘자비송’에서 하느님께 자비를 호소하고 ‘대영광송’에서 그분의 영광을 찬미한 다음, 제단 오른쪽으로 가서 기도를 바칩니다. 이 기도는 ‘본기도’ 혹은 ‘모음기도’라 불립니다. 여기에는 짧고 간결하며, 아름다운 생각과 순수한 지향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기도가 미사성제에서 두 번 더 바쳐집니다. 예물 준비 후에 바치는 이른바 ‘예물기도’, 그리고 사제에게서 거룩한 성체를 받아 모신 후에 드리는 ‘영성체 후 기도’가 그것입니다. 이 기도는 매일 고유한 내용을 지니고 있는데, 전례 시기와 축일에 따라 그 내용이 다양하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기도에는 모두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곧 모두 같은 특성이 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교회가 어떻게 기도하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나’라는 단어가 그 기도에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각자 자신을 위해 바치는 기도에는 거의 “오 하느님, 저에게 주십시오, 저를 도와주십시오, 제 기도를 들어주십시오.”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가 하느님께 기도하면, “오 하느님, 저희에게 주소서,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하고 기도합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가 어떻게 기도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모든 이를 위해 그리고 모든 이와 함께 기도합니다.’

 

우리가 이를 조금 더 깊이 생각하면 이런 확신을 더욱더 얻게 됩니다. 곧 교회가 그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교회의 설립자이시며 스승이신 그분께서 그렇게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기도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 

이 말씀은 무슨 뜻인가요? 우리 그리스도인은 서로 함께 속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이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나를 위해 존재한다. 다른 사람들은 나와 상관이 없다.” 다른 사람들은 그대와 관련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한 형제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이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나를 위해 기도한다. 각자는 자신을 위해서 행동할 수 있을 뿐이다.” 이는 형제자매의 하나가 다른 이를 위해 기도하지 않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서로 함께 속해 있습니다. 여러분은 같은 아버지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큰 가족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한다면, 마치 한 형제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자기 형제들과 서로 손을 잡고 하느님 앞에 나서는 것과 같아야 합니다. 그는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말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행동하면 그분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 모든 형제자매의 맏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와 함께 있기를 원하시고, 그분의 기도는 우리의 기도와 하나 되기를 원하시어 우리의 기도를 효과 있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미 구원받은 이들의 기도를 하느님께서 마음에 들어 하신다면, 그리고 아버지의 마음이 영원하신 아들의 마음과 하나라면, 그 기도는 아버지의 마음에서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셨던 것을 교회는 모든 시대에 그대로 이행합니다. 

교회는 기도할 때 항상 이렇게 합니다. “주님, 저희를 도와주소서. 오 하느님, 저희에게 베풀어주소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 한가운데에는 주님께서 현존하시고 또 함께 기도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모두 서로 긴밀하게 결합시키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거대한 가족으로 만드셨고, 그 안에서 우리는 형제자매입니다. 본성적으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창조주이시며, 세상의 주인이십니다. 그분은 움직이고 성장하는 모든 것에게 생명을 주시고, 그 모든 것을 기르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도 생명을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그분의 호의로 말미암아 삽니다. 인간은 자기 현존재의 모든 순간을 그분에게서 얻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자비를 통해 숨을 쉽니다. 그가 생각하는 모든 사상, 자기 마음 안에서 움직이는 모든 소망, 만들고 활동하고 일하는 모든 것, 그가 먹는 작은 빵 한 조각에서부터 시작하여 아름다운 집과 재물에 이르기까지, 벽에 박혀있는 못부터 시작하여 가장 소중한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 등 그 모든 것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하느님으로부터 가지고 있을 뿐만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자신을 위해 선하시고 위대하신 수여자이십니다. 이뿐만 아니라 집에 있는 친척을 위해서도, 이웃을 위해서도, 그가 아직 알지 못하는 도시에 있는 이방인을 위해서도 하느님께서는 수여자이십니다. 그가 좋아하지 않는 인간을 위해서도, 곧 원수와 적을 위해서도 하느님께서는 수여자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인간,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인간에게도 수여자이십니다. 모든 사람은 동일한 자비로운 하느님의 손길로부터 삽니다. 그들의 존재와 소유와 행하는 모든 것은 하느님의 업적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느님을 바라본다면, 수백만의 다른 사람이 그와 함께 같은 주님이시며 모든 것의 수여자를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도 이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분은 오직 내 곁에만 계시며, 다른 사람 곁에는 계시지 않는다.” 그분은 모든 것의 창조주이시며 주님이며 아버지십니다.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과 함께 기도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주님, 저에게 주십시오.’가 아니라 ‘주님, 저희에게 주소서.’하고 기도해야 하지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곧 은총으로 당신 자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창조주이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에게 종일뿐만이 아니라 자녀이기도 합니다. 그분은 세례를 통해 우리를 당신 자신에게로 아주 가까이 끌어당기셨고, 그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당신 자신의 생명을 베푸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이 생각하는 대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염려하시는 것을 염려하고, 그분이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고,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그리스도인은 온전히 그분으로부터 삽니다. 

선한 모든 생각은 그분에게서 비롯됩니다. 마음의 고결한 모든 움직임은 그분에게서 옵니다. 그분은 경건한 모든 기도를 우리 영혼에 넣어주셨습니다. 사랑의 언어, 관대한 업적, 용맹한 자기 극복, 우리에게 유익한 모든 것 등은 그분의 업적입니다. 모든 것은 그분에게서 나옵니다. 그분은 그 모든 것을 시작하시고 실행하시고 완성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그분을 통하여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자신만이 그런 특권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도 그 특권이 있습니다. 그가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도 같은 하느님의 생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 지인, 그가 알지 못하는 사람도 같은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시의 모든 사람, 시골의 모든 사람,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이 그런 특권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같은 아버지를 모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분의 자녀입니다. 그분의 자비로운 품속에서 우리는 같은 생명을 얻어 누리고 있습니다. 그 생명을 우리는 그분의 은총으로 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깊이 결합되어 있고, 서로 형제자매이며, 그런 존재로서 서로를 염려해 주어야 합니다.

피조물에게 좋은 모든 것을 주시는 분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피조물에게 적절하다면, 서로 형제자매인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늘에 계신 같은 아버지에게 공동으로 기도하는 일이 얼마나 합당한 일입니까?

 

보십시오. 교회가 바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사제는 기도를 드릴 때, ‘저’가 아니라 ‘저희’라고 말합니다. 그는 모든 사람의 이름으로 그렇게 말합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 공동체에 속한 모든 사람, 같은 도시에 있는 모든 사람, 같은 나라에 있는, 아니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교회의 목소리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목소리입니다.

이는 영원하신 분께 올려드리는 엄청난 합창과 같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의 창조주이시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아버지이시고,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에게 생명을 주시는 위대하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바라보시는 당신의 눈으로 세상을 섭리하시고 아주 작은 것도 바라보십니다. 모든 인간을 그 특별한 상황과 곤경까지 알고 계십니다. 그분은 위대한 사람과 작은 사람, 지혜로운 사람과 단순한 사람 등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를 바라시고 아무도 잊지 않으십니다.

그분께 교회는 모든 사람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우리 각자는 그 기도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각자는 교회와 함께 교회 안에서 기도합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아무도 ‘내가 다른 사람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하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각자는 다른 사람의 관심사를 마치 자신의 것인 양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관심사를 같은 아버지의 옥좌 앞에 공동으로 들어 올려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교회의 기도에서 모든 사람은 하나가 되고, 서로 연대합니다. 

어떤 사람이 억압을 받으면,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관련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걱정은 다른 사람의 걱정거리가 됩니다. 각자는 자기 형제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각자는 다른 사람의 짐을 짊어집니다. 각자는 다른 사람을 지지하고, 일으키고, 그를 위해 기도하고, 그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부르는 사람은 참으로 위대한 하느님의 가족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겠다.”(마태 18,20)라는 주님의 약속이 참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참으로 모든 것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아집니다. 모든 사람은 그분을 믿습니다. 그분을 사랑합니다. 그분에게서 설교를 듣습니다. 그분은 잘 알려지셨고, 찬미를 받으십니다. 그분의 은총은 모든 사람을 충만하게 하십니다. 언급된 모든 기도는 아주 오래된 기도문으로 이렇게 끝납니다.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아멘.”하고 대답합니다.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응답한 것입니다.

참으로,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드려집니다. 둘이나 셋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 곧 모든 형제자매가 모입니다. 실제로 가시적으로 교회 안에서 혹은 영신적으로 성인들의 거대한 공동체 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그분은 “모든 형제 가운데 맏이”로서 그 한가운데 계십니다. 그분의 기도는 위대한 합창으로 울립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의 기도는 다른 사람의 기도를 지탱합니다. 그분의 강한 기도는 우리의 나약한 기도를 지지합니다. 그분의 순수한 기도는 얼룩진 우리의 기도를 정화합니다. 사랑과 열정이 가득한 그분의 기도는 생기가 없고 진지하지 못한 우리의 기도를 생생하게 합니다. 그분의 기도는 완전하고 거룩하고 우리 마음을 가득 채웁니다. 우리의 기도에서 부족한 점을 메꾸어줍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드는 이 기도는 얼마나 강력하게 하느님께 올려집니까! 이 기도는 하느님께서 마음에 들어 하시는 외아들과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하신 그 형제자매들을 하나로 만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참으로 이 기도에 동참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집인 성전에, 특히 거룩한 미사가 봉헌되는 주일에 모여 있다면, 우리는 우리를 위해 특별한 일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개인적인 기도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입과 마음으로 공동 기도에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어떤 기도서가 아니라 성가책을 펴 들면 됩니다. 우리는 장엄미사에 참여하여 주어진 성가를 부르면 됩니다. 이와는 완전히 다른 어떤 미사를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우리가 다른 어떤 미사를 추구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큰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갑자기 자기 자신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장엄한 조화를 방해합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거기에 참여해야 합니다. 영혼으로부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일 미사의 기도는 모든 이를 위해, 교회 전체를 위해, 모든 인간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는 이런 기도에 진심으로 함께해야 합니다. 교회의 관심사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관심사,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관심사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 “두 사람이 세 사람, 백 사람, 아니 모든 사람이 당신의 이름으로 모이는 것”을 실현하는 셈입니다. 그러면 더불어 이런 일도 이루어집니다. 곧 “그분께서는 우리 가운데 계시고” 우리의 기도를 도와주십니다. 가련하고 나약한 인간의 기도가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그분의 기도로 이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