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교구의 작은 교회 공소를 찾아서(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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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2-02-11 조회 1,467회본문
임실성당(주임=김교동 신부) 관할인 삼길공소(소속 본당이 수류, 전동, 남원, 임실로 바뀜) 안으로 들어서면 사방 벽면이 흰 벽에 성화가 그려져 있어 낯선 분위기에 당황하게 된다. 약 30년 전에 지정연 작가가 유성페인트로 그린 성화이다.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되어 수고비만 주고 공소 벽 전면에 성화를 그렸다고 하성윤 요셉(서학동) 형제가 전한다. 성화는 공소의 예비자 그림 교리책으로 사용했던 ‘요리강령’의 주요 부분인 예수님 세례 장면, 예수님 어린 시절 성가정, 부활사화 등이다. ‘요리강령’은 옛날 공소회장에게 배부된 ‘그림 교리해설’ 책으로 트리엔트공의회 교리해설이 들어 있다.(1957년 발행)
임실군 신덕면 삼길4길 58-6번지에 자리 잡은 삼길공소는 옛날 ‘구사발’이라 칭하는 내량마을로, 천주교 박해 말기에 이곳 산골에 터를 잡아 옹기를 굽고 팔며, 삶을 이어오던 조상들이 신앙의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공소이기도 하다. 공소를 올라가는 돌계단 옆 감나무에는 포탄으로 만든 종이 걸려있어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다. 역사 또한 깊어 1910년대에 전주성당(현 전동성당)초대 주임신부인 보두네 신부가 설립하여 100년이 넘은 공소이다.
이후 1960년 8월 31일 신축했다는 본당 연혁이 있다. 처음의 공소는 현 공소가 있는 아래쪽에 2칸짜리 사랑방에 공소를 정하고 미사를 봉헌해왔다. 교우들이 증가하여 큰 장소가 필요, 전대복 신부가 당시 임실군수의 지원을 받아 신덕면 내 교우들과 관촌, 신평 교우들이 블록을 직접 만들어 인력봉사를 하였다. 1980년 1월 왕수해 신부 부임으로 10월, 지금의 공소를 준공하였다. 어려운 일들은 하성년(안드레아, 현 공소회장)형제와 친지들이 공사대금 분담과 인력을 보태어 공소를 완공하였다고 한다. 1996년 11월 21일부터 12월 5일까지 내부 수리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성년 형제는 할아버지가 박해를 피해 들어와 일군 공소에서 공소회장을 역임하시고, 그 뒤를 아버지가 이어받아, 동생(하성윤 요셉)이 임시로 맡아오다가 지금은 3대째 공소회장 직분을 맡아 봉사하고 있다. 교리를 받고 영세자가 많을 때는 50명이 넘었는데, 이농 현상과 교우들이 연로하여 돌아가심에 계속 감소하여 교적에는 15가구 33명이 있으나, 지금은 6가구 7명만이 매월 셋째 토요일 오후 3시에 본당 신부님의 주례로 주일미사를 봉헌하며 교회의 역할을 하고 있다.
김영순(아나다시아)자매는 공소회장님과 부부로 결혼 후, 찰고와교리문답을 통과하여 시댁 세 동서가 함께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김성례(세실리아)어르신은 90세 연세로 미사와 공소 일에도 열심히 참여하시고, 젊었을 때 천호성지, 절두산, 꽃동네를 다녀왔던 날들을 즐겁게 회상하신다.
김선이(프란체스카)자매는 공소회장댁과 사돈으로 사부인이 운명하여 함께 모인 신자들이 연도 바치는 모습에 감명받아 신자들이 너무 부러웠다고 전한다. 무더운 여름방학에 공소 성화를 그릴 때 장순옥(데레사) 자매와 함께, 화가와 도와주는 형제들에게 시원한 꿀물을 매일 타주기도 했는데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도움을 많이 주지 못했음을 지금도 안타까워하신다. 요즘 잠을 잘 이루지 못할 때는 예수님께서 묵주기도를 하라는 느낌을 받는다며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치고 있다고 한다.
하성윤(요셉) 형제는 1976년 전대복 신부가 본당에 처음으로 초등학생을 위한 주일학교 운영할 때, 그 시대에는 예비자 교리책이 부족하여 직접 철필로 등사하여 만든 교리책으로 아이들을 가르쳐 20여 명 세례를 받게 하였다. 임시 공소회장 시절을 돌이켜보면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하느님의 은총과 평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사랑, 죄를 용서하는 마음이 있어야 신자로서 하느님을 아는 것이다.”라는 말씀이 하느님 안으로 한걸음 깊게 다가가는 말씀임을 전했다.
취재 | 서정순 세실리아(교구 기자단), 사진 | 김창식 베드로(교구 가톨릭사진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