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교구의 작은 교회 공소를 찾아서(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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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0-11-02 조회 1,930회본문
무주본당(주임=최종수 신부) 관할 설천공소를 가는 길은 누렇게 익은 나락을 거두어들이는 농부의 바쁜 손길과 바람에 한들거리는 코스모스가 어우러져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설천 면사무소 앞에 위치한 설천공소에 들어서면 먼저 하늘에 닿을 듯이 높이 서 있는 십자가와 바로 옆의 예수님이 두 팔 벌려 반겨 주신다.
공소는 1977년 4월 3일 천주교에 입교한 임한택(아우구스티노)형제가 무주성당 김동준(야고보) 신부에게 자신의 집을 공소로 지정해 줄 것을 간청, 방 한 칸에서 공소 예절을 시작으로 1977년 8월 임한택 형제의 가족 및 12명의 첫 영세자가 탄생했다. 초대 공소회장인 임형제는 헌신적으로 전교하여 약 6년 동안 설천면 지역에 영세한 인원은 73명이었다. 예비신자와 전입 교우 등 80여 명은 공소가 비좁아 마당에 서서 미사를 드려야 할 정도로 불어났다.
무주 대우병원장에 취임 한 최해관(안드레아)형제는 신자는 많은데 공소 건물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산 중턱에 있는 대지 869㎡(263평)을 봉헌하였다. 그러나 소방도로가 없어 신축 허가가 나지 않자 성전 건립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주일 공소예절 후 교우들과 농사를(고추와 오미자)지었다. 2대 회장인 최안드레아 형제는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신자의 도움으로 표고버섯 장사를 시작했는데 모든 신자가 밤마다 모여 버섯을 선별하여 포장하고 일부 신자는 물건을 팔기 위해 전국으로 돌아다녔다. 은인들의 도움으로 지금의 공소 자리인 논을 구입, 복토하여 공소의 터를 잡았다. 이상섭(모이세) 신부의 설계로 목수 신자를 섭외해 공사를 시작했는데 많은 공소 신자들이 생업을 제쳐두고 나무를 가져다 정원을 꾸미기도 했다. 공소가 생긴 이래 약 8년 8개월 만에 1824㎡(552평)의 대지를 구입, 건평 138㎡(42평)의 벽돌조 슬레이트 지붕 구조로 1985년 12월 5일 박정일 주교의 집전으로 설천면 주민과 신자 등 200여 명이 참석하여 성전 낙성식(봉헌식)을 가졌다.
최해관 형제는 “먹고사는데 필요한 돈을 빼고 모두 공소 신축을 위해 땅을 사고 신축을 하려고 해도 부족해서 일 년 봉급을 또 봉헌했다. 지금 월세를 살고 있어도 시골에서 의사 생활을 하면서 보람된 삶을 살고 싶어서 이곳에 왔는데 그렇게 살 수 있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라고 말했다.
백천웅(다니엘) 형제(취재 당시 공소회장)는 설천공소도 직장의 전근과 도시화 추세에 따라 타 지역으로 신자들이 빠져나가 신자들이 줄어들다가 인근에 무주리조트, 반디랜드, 태권도원이 생기면서 다시 신자 수가 늘어나고 있고 매달 둘째 주일 오후 3시에 공소 미사 날이면 매주 60여 명이 참석하고 주변 관광지에 온 신자들도 참석한다고 한다.
공소에는 1985년 3월 바다의 별 쁘리시디움이 창단되었고, 1998년에는 천주의 모친 쁘리시디움을 분단시켰다. 두 쁘레시디움은 지금도 열성적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에 건물을 새롭게 단장, 피아노도 기증받아 미사 반주를 하고 앞으로 주변도 깨끗하게 정비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신자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돌아서 나오는데 대추나무에 대추가 주렁주렁 열려 익어가고 있었다.
백천웅 형제는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공소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가 중단되어 대추가 남아 있는데 다시 주일학교 아이들의 간식거리로, 어른들의 간식거리로 대추가 남아 있지 않은 날을 기도한다.”라고 말씀하신다.
취재 | 송병근(교구 기자단), 사진 | 손영익(교구 가톨릭사진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