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교구의 작은 교회 공소를 찾아서(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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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0-10-16 조회 2,262회본문
강진공소와 덕치공소는 임실성당(주임=김교동 신부)관할 공소이다. 현재 ‘코로나 19’로 인해 공소 미사가 중단되어 신자들은 임실성당에서 미사를 참례하고 있다. 두 공소는 가까운 지리적 위치로 평소에는 강진과 덕치공소에서 번갈아가며 미사에 참례한다. 두 공소의 공동회장을 맡아 봉사하고 있는 박규식 요한 형제를 만나 보았다.
▶ 강진공소
강진공소는 터미널 부근 강진면 호국로 32-36에 아담한 주택처럼 자리하고 있다. 1960년에는 박병요(분도) 회장 주축으로 당시 예비신자 20여 명과 흙벽돌을 만들고, 신축기금을 기부 받아 1961년 4월 13일 박성운(베네딕도)신부의 주관으로 강진공소 기지 700여 평을 매입하여 강당을 신축했다.
1991년 2월 성우회(개인성화, 선교사업, 교회발전 도모)가 창설되었고, 2010년 12월 3일 지문홍(미카엘)회장이 봉헌한 부지 300평과 이재권 형제 소유(현 공소 부지)를 맞교환하여 방의성(베드로) 신부 재직 시 유장훈(요셉) 몬시뇰의 집전으로 축성식을 거행했다.
당뇨합병증을 앓고 있는 정인구(바오로)형제는 3년 전에 영세하여 “적극적으로 하느님을 믿어야 살 수 있다는 믿음으로 활동이 가능할 때까지 대부님인 공소 회장의 활동에 동행할 것”이라 한다. 현재 강진공소는 49세대 79명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박 요한 회장은 신자분들이 연로해지시고 갈수록 줄어드는 신자 수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 덕치공소
덕치공소는 임실군 덕치면 회문2길 22-3에 위치한 공소로 1953년 5월 3일 조충제(마태오)공소 회장집 아래채가 그 출발점이며, 당시에는 8개 마을의 예비신자 수만 185명에 달했다고 한다. 1957년 옛 면사무소를 매입하여 덕치공소를 설립했다. 임실성당 김치삼(스테파노)신부가 축성하였고, 구호물자로 나온 물품, 청년들이 장작을 판매한 기금, 공소 신자들의 봉헌으로 1958년 4월, 지붕을 함석으로 교체했다. 당시 선교사 역할을 했던 김수명(바오로) 형제는 공소 발전에 혼신을 다하여 신자들로부터 ‘아버지’로 불렸다.
덕치공소에는 이재복(레오나르도), 오복덕(멜라니아)부부가 공소 지킴이로 상주하고 있으며, 본당에서는 애령회장과 구역부장을 맡고 있다. 이 레오나르도 형제는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는 초대공소의 문서인 ‘공소회장의문부’, ‘신문교우명록’ 등 옛 문서를 보여주었다. 옛 문서를 보는 순간은 ‘신앙의 선조들의 삶’을 직접 보는 듯하여 만감이 교차했다. 진기한 기록들인 영세자 명단, 첫 보례(유아세례), 혼배승낙서, 판공성사 기록, 신부님들의 편지, 임명장, 총 맞아 죽은 사망자 명부, 포탄으로 만든 종 등 1961년까지 공소의 설립과정과 1997년 임실본당에서 관리하기 전까지의 공소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었다.
덕치공소는 46세대 56명의 신자가 있다. 요양병원, 냉담자, 요즘은 코로나 19로 인해 더욱 신자수가 감소하고 있다고 전한다.
강진공소와 덕치공소 신자들은 한 구역이나 다를 바 없이 교회의 가르침대로 신앙생활을 영위해가고 있다. 강진의 역사가 덕치의 한 부분의 역사이듯 서로 교집합을 이루고 있음을 여실히 느낄 수가 있었다. 지금의 신자들이 섬진강 물줄기처럼 신앙이 곳곳으로 흘러나가 하느님 나라를 끊임없이 이어나가길 바란다.
취재 : 서정순(교구 기자단), 사진 : 배중호, 손영익, 이혜령(교구 가톨릭사진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