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직 현장에서] 저를 자비로이 부르셨으니[가톨릭평화신문 2023-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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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05-06 조회 660회본문
[사도직 현장에서] 저를 자비로이 부르셨으니
올해 사제서품 3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인간적인 부족함과 허물투성이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참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목자로 살아왔음은 인생에서 가장 기쁘고 행복한 사건입니다. 그 시간은 내 힘으로 살아온 여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의 덕이며 교우들의 기도 덕분으로 살아온 나날이었습니다. 또한, 이병호 주교님과 김선태 주교님의 문장과 사목 안에서 순명과 동행의 거룩한 가치를 묵상하고 실천하며 살 수 있었던 은혜롭고 아름다운 시간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내 뜻대로 마시고 당신 뜻대로,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사제직의 길과 사회복지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할 수 있었던 시간은 더할 나위 없는 감격과 감동의 순간들이었음을 감사드립니다. 그 시작은 창조와 생명의 자리가 되어준 부모님의 사랑과 가족들의 형제애가 이끌어준 부르심의 선물입니다. 인간적인 사랑과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주신 초등학교 3학년 때 할머니의 선종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신앙의 아름다운 기억입니다. 소중한 이웃인 앞집 동생들의 아버지가 가난과 화재사고로 세상을 떠난 사건에서부터, 친한 친구가 거듭 서울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충격으로 긴 세월 정신질환으로 병원생활을 이어가는 모습까지, 이 모든 일이 저에겐 사제직으로 이끌어준 하느님 사랑의 섭리였습니다.
신학생 시절 병원 입원과 수술, 군입대 면제, 서울성모병원 직원으로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경험했던 환자들과의 만남과 죽음 체험은 저를 가톨릭 사회복지 현장으로 인도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었습니다. 사제서품 그리고 미사와 칠성사 안에서 체험한 복음의 기쁨과 희망, 시골 성당에서 이동목욕 차량을 운행하며 어르신들의 몸을 씻겨드렸던 기도와 활동의 시간, 사회복지학 공부의 고마움, 본당과 사회복지 현장에서 지나온 삶의 기억들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었습니다.
죽는 그 날까지 사제와 사회복지사로서 사람들, 특히 가난한 이들을 만나고 돌보는 ‘사랑의 사도’로 살 것을 약속하는 표지로써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문장을 기억합니다. “자비로이 부르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