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고의 집 모렐레스 카렌 수녀를 만나다[가톨릭평화신문 2022-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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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2-01-04 조회 1,369회본문
7년 헌신 끝에 얻은 한국 영주권… “아이들 더 마음껏 사랑하고파”
‘아미고의 집’ 모렐레스 카렌 수녀를 만나다
2022.01.01 발행 [1644호]
▲ 아미고의 집 수도자들이 벽화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른쪽 두 번째가 모렐레스 카렌 수녀. |
▲ 모렐레스 카렌 수녀. |
기뻐 눈물이 났다. 앞으로 아이들을 마음껏 사랑할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지난 7년간의 헌신과 노력은 마침내 어둠에 희망의 빛을 밝혔다.
전주가톨릭사회복지회 아미고의 집(원장 마르가리타 수녀) 모렐레스 카렌(성가정 카푸친 수녀회 아시아 관구) 수녀가 최근 한국 영주(F-5) 체류자격을 취득했다. 필리핀 출신인 그에게는 앞으로 한국에서 영원히 살 수 있게 됐다는 것보다, 다양한 곳에서 소외된 아이들을 도울 수 있게 됐다는 것이 더 큰 기쁨이었다. 임인년 새해를 맞아 소외된 아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모렐레스 카렌 수녀를 만났다.
아이들의 미래를 밝혀주는 가족
전북 전주시 한 주택가의 3층짜리 건물. 외관에 벽화가 알록달록한 색감을 뽐내고 있다. 한쪽에는 코끼리, 사자, 거북이, 새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아이들이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다. 건물 외관만 봤을 뿐인데도 이곳이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란 것을 짐작게 한다.
건물 1층은 전주가톨릭사회복지회가 운영하는 프란치스코 지역아동센터, 2층이 아미고의 집, 3층은 수녀원이다. 아미고의 집은 성가정 카푸친 수녀회가 운영하는 학령기 가정 아동들을 위한 공동생활가정(그룹홈)이다. 아미고는 ‘아이들의 미래를 고귀하게 밝혀주는 가족’의 줄임말이다. 스페인어로 ‘친구’라는 뜻도 있다. 소외된 아이들을 친구처럼 편안하게 대해 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아미고의 집이라고 했다. 이곳에는 성가정 카푸친 수녀회 소속 4명의 수도자와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의 여학생 5명이 함께 살고 있다. 건물 3층으로 올라가니 수녀들이 취재진을 반겼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선한 인상은 감출 수 없다. 그 속에서 카렌 수녀가 웃으며 말했다.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어요.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 땅을 밟은 필리핀 수녀
카렌 수녀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14년 9월이다. 종신서원 후 한국에 들어와 경기도 부천에 있는 카푸친 어린이집에서 소외된 아이들을 돌봤다. 카렌 수녀는 한국어 어학당에서 틈틈이 한국어를 공부하며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인근 다문화가정, 홀몸노인들도 보살폈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주저 없이 손을 내밀었다. 카렌 수녀는 2019년 9월까지 카푸친 어린이집에서 봉사했다. 이후 아미고의 집으로 와 지금까지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2020년 7월부터는 프란치스코 지역아동센터에서도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다.
카렌 수녀는 한국어 공부를 하며 보육교사 2급, 사회복지사 2급, 방과후돌봄교실지도사 자격증 등 관련 자격증도 취득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좀 더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마음 준비하는 것 말고 머리로도 준비해야 해요. 공부하고 경험도 있어야 더 잘할 수 있어서 아이들을 위해서 공부했습니다.” 그는 2021년 5월 7일 김승수 전주시장에게 ‘으뜸 자원봉사자’ 표창장을, 11월 30일 송하진 전북도지사에게 ‘자원봉사왕 표창패’를 받았다.
▲ 프란치스코 지역아동센터(1층)와 아미고의 집(2층)이 위치한 건물 전경. |
▲ 아미고의 집 아이들과 수도자들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카렌 수녀 제공 |
7년의 기다림
카렌 수녀는 2014년 9월 종교 비자(D-6)로 한국에 들어왔다. 소외된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려 했지만 활동에 제약이 많았다. 종교 비자인 탓이었다. 2년마다 비자를 갱신해야 했고 종교시설과 관련된 곳에서만 봉사할 수 있었다. 법은 울타리에 그의 마음을 가둬놓고 자유로운 활동을 허락하지 않았다.
‘6년이면 되겠지.’ 카렌 수녀는 2020년 영주권을 신청했다. 하지만 ‘거주기간이 6년이라 거주기간이 부족해 안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렇게 또 한 번의 겨울을 보냈다. 그리고 2021년 5월 ‘으뜸 자원봉사자’ 표창장을 받고, 카렌 수녀는 ‘표창장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각종 증명서와 함께 전주가톨릭사회복지회 추천서도 받아 9월 15일 전주출입국외국인사무소에 영주권을 신청했다. 전주출입국외국인사무소는 변호사와 교수, 종교인, 언론인, 공공기관 종사자로 구성된 ‘외국인 인권보호 및 권익증진협의회’를 열고 카렌 수녀의 영주권 신청을 논의해 영주권 허가 결정을 내렸다. 만장일치였다. 법무부는 12월 7일 카렌 수녀에 대한 영주 체류자격 변경을 승인했다. “눈물이 났어요. 너무 기뻤어요. 영주권은 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 공동체 것이에요. 앞으로 더 좋은 일 할 수 있어요.” 이야기하는 카렌 수녀의 얼굴이 기쁨으로 가득했다. 카렌 수녀는 한국 영주권 취득으로 앞으로 한국 어디에서나 봉사할 수 있게 됐다.
모든 것은 하느님의 뜻
모든 것은 다 하느님의 뜻이다. 카렌 수녀가 한국에 오게 된 것도, 아이들을 돌보게 된 것도.
카렌 수녀는 항상 아이들과 함께한다. 아이들의 일상에 관해 이야기하고, 함께 꿈을 꾼다. 믿음에 대해서도 항상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어려운 가정에서 왔기 때문에 우리가 희망을 줘야 해요. ‘괜찮아, 부족해도 괜찮아.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있으니까 괜찮아.’ 그런 대화를 항상 나눕니다.”
카렌 수녀는 아이들을 볼 때면 항상 마음이 아프다. 아미고의 집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가정폭력, 가난 등으로 보통의 가정에서 생활하기 어려운 아이들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두운 모습에서 벗어나 밝게 변해가는 것을 볼 때면 하느님께 받은 사랑을 아이들에게 전했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낀다.
카렌 수녀는 사순 시기나 대림 시기에는 항상 아이들이 용돈을 모아 가난한 나라, 어려운 이웃과 나누도록 한다. “우리 아이들이 받았기 때문에 나눠야 해요. 다른 사람도 생각해야 합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사랑을 나누는 법도 가르친다.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카렌 수녀는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과 관심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어린 나이인데 아빠, 엄마랑 같이 안 살았어요. 사랑과 관심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지금 아이들이 사랑과 관심을 찾습니다.” 그가 아이들에게 때로는 아빠, 때로는 엄마, 때로는 친구처럼 지내는 이유다.
카렌 수녀는 “새해에는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아미고의 집에 들어오면 좋겠다”며 “아이들을 위해 항상 기도하며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아미고의 집뿐만 아니라 프란치스코 지역아동센터도 많이 낡아 아이들이 지내는 데 어려움이 많다”며 “건물을 새로 지어 아이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하느님 뜻이에요. 언제까지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마음은 계속해서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몰라요. 하느님 뜻이에요.” 카렌 수녀에게 ‘언제까지 아이들과 함께할 생각인지’ 묻자 그는 하느님 뜻에 따라 언제까지나 아이들과 함께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작은 일도 사랑으로 하는 수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일곱 번의 겨울을 지냈다. 마침내 꽃은 피었고 이제는 열매를 맺을 차례다. 한 수도자의 헌신은 아이들에게 희망의 빛이 되었다. 이제는 아이들이 그 희망을 전할 차례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