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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물들인 자리-가장 많은 순교자 낸 병인박해[가톨릭 신문 2002-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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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0-01-22 조회 1,62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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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먹인 종이로 숨을 끊던 ‘백지사형’
여산엔 지금도 가쁜 숨소리 들리고

형리들이 달려들어 양손을 뒤로 결박한 후 상투를 풀어 결박된 손에 묶자 끌려나온 죄인의 얼굴은 자연스레 하늘을 향하게 됐다. 얼마나 그리던 하늘이었던가.
이런 생각도 잠시, 형리들이 죄인의 얼굴에 물을 뿜으며 백지를 한 장 한 장 붙여 나가자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헉, 헉…. 크윽』
이른바 백지사형(白紙死刑)이라는 가혹한 방법으로 또 하나의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서고 있는 전북 「여산 동헌」, 앞마당을 채우고 있던 사람들 가운데서는 침 넘기는 소리 사이사이에 숨죽인 탄식이 섞여 나왔다.
묶인 이는 한 장 한 장 종이를 붙일 때마다 심할 정도로 온몸을 뒤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묶여있던 몸은 이내 축 늘어졌다.
형제의 고통스런 죽음을 바라만 보다 돌아온 신자들은 옥으로 들어서자마자 그 자리에 쓰러졌다. 이미 고문과 배고픔에 탈진할 대로 탈진한 상태였다.

굶주림에 쓰러져 있는 형제의 옆얼굴이 보였다. 숨조차 쉬지 않는 것 같아 귀를 갖다 대보니 가느다란 숨은 곧 끊어질 듯 간신히 붙어 있었다.
대역죄인이라도 국법에 최소한의 먹을 것은 주게 되어 있건만 천주교인들에겐 이 또한 해당이 없는 모양이었다. 밥은 고사하고 물조차 끊긴 게 벌써 며칠째. 견디다 못해 급기야 자신의 옷을 뜯어 옷 속의 솜을 빼내 먹는 이도 있었다.
이 광경이 얼마나 참혹했던지 옥사장조차 동정심이 발동해 신자들에게 바가지를 내주며 동냥을 해먹고 오라고 옥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신자들은 빈 바가지를 그대로 안고 돌아왔다. 변변치 못한 고을이어서 빌어먹을 곳조차 없었던 것이다.
『이, 이런…. 바가지를 줄 땐 도망가라는 뜻이었는데 왜 돌아왔느냐!』
옥사장의 호통에 신자들은 하나같이 『우리는 주님을 위해 죽고자 왔습니다』라는 말로 응수했다.
『도대체 어쩔 수 없는 것들이군』
안타까움을 누르지 못한 옥사장은 혀를 끌끌 차며 자리를 떴다.

드디어 장이 서는 날,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기회를 타 옥 옆에서 신자들의 처형이 있기로 한 날이었다. 형리들이 갇혀 있던 신자들을 끌고 나와 목에 채워두었던 칼을 벗기자 얼마나 굶주림에 시달렸던지 지켜보는 눈들도 의식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풀을 정신없이 뜯어먹는 게 아닌가. 그 끔찍한 광경을 지켜보던 이들 중에는 몰래 눈물을 훔치거나 고개를 돌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냥 죽이든지 하지, 어찌 사람을 저렇게 되도록 만들었을까』 『천주학을 믿지 않는다고 하면 당장 풀려날 텐데 저이들도 참 독한 사람들이지』
숱한 말들이 오가는 가운데 처형당한 이들의 시신은 인근의 미나리꽝에 버려졌고 야음을 틈타 이를 수습한 신자들이 천호산에 묻으니 천호산도 새로운 신앙의 터전을 이루게 됐다.
전주교구 제2의 성지라 불리는 전북 여산 땅은 이렇게 해서 기록만으로도 22명의 순교자를 낳는 거룩한 땅이 됐다.
그러나 정해진 형장도 없이 이곳저곳에서 마구 처형이 이뤄져 이름도 없이 죽어간 신자들의 숫자는 가늠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여산 동헌과 옥사를 비롯해 이를 마주 보고 선 「여산 숲정이」는 물론 여자들을 우물에 빠뜨려 죽인 동헌의 「뒷말 치명터」와 장날을 골라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신자들을 참혹하게 죽인 「배다리」 등 곳곳에 널린 사형터로 여산은 마을 전체가 순교지나 다름없다.
순교자들이 물먹은 종이에 마지막 숨결을 실어보내며 백짓장 너머 하늘나라를 응시했을 여산 동헌 백지사터, 지금도 얼굴에 달라붙은 백지로 인해 숨을 헐떡이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영원한 생명을 그리며 신앙을 고백한 선조들의 가쁜 숨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최근까지 마을 촌로들의 경로당으로 사용되던 이곳은 얼마 전에야 문화재로서 제 가치를 인정받게 돼 이제서야 성지로서의 제 면모를 찾아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산 숲정이」, 숲이 칙칙하게 우거져 숲머리라고도 불린 이곳에서는 주로 참수형이 이뤄졌다. 이제는 성혈을 머금었던 숲은 간데 없고 들판으로 바뀌었지만 당시의 처절함을 떠올리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전주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를 낸 병인박해는 완산동 초록바위와 더불어 전주시 진북동에 자리한 「전주 숲정이」에도 신앙의 흔적을 새기고 있으니 박해를 거치며 대부분의 신자들이 죽어간 이 곳에서 목숨을 바친 이들 가운데 조화서를 비롯한 이명서, 정문호, 손선지, 한원서, 정원지 등 6명이 성인품에 올랐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신자수 2만3천여명, 이 가운데 1만명 가량이 순교의 길을 택해 걸어간 처절한 박해는 우리 산하 곳곳에 믿음의 증거자들의 흔적을 남겼으니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마다에서 새록새록 새로운 감동이 솟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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