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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복음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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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9주일(요한 6,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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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08-05 08:45 조회153회 댓글0건

본문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생명의 빵

 

"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요한 6,51).

 

오늘은 연중 제19주일이다.

오늘 복음은 지난주에 이어 '생명의 빵'에 대한 가르침이다. 지난주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하시면서, 이제 하느님의 생명이 당신 자신을 통하여 주어질 것임을 말씀하셨다. 당신께서 생명을 지니신 분이심을 증언하시는 것이었다. 이에 유다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시비를 걸고 나선다.

"이 때 유다인들은 '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빵이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못마땅해서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아니,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그의 부모도 우리가 다 알고 있는 터인데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 왔다니 말이 되는가?' 그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는 '무엇이 그렇게 못마땅하냐?' 하고 말씀하셨다"(요한 6,41-43).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출신에 대해서 따진다. 그들 생각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기에는 그분의 출신이 너무 보잘것없어 보였다. 출신과 지위와 간판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을 평가하는 데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예수님께서 고향에 들르셨을 때도 고향 사람들이 '저 사람은 그 목수가 아닌가? 그 어머니는 마리아요,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이 아닌가? 그 누이들도 다 우리와 같이 여기 살고 있지 않은가?'(마르 6,3) 하면서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았는데 오늘 또 다시 그들은 예수님의 신분에 대해서 트집을 잡는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가 가장 가까운 사람들, 친척과 친구, 그리고 고향 사람들과 같은 이웃들로부터 받는 배척과 불신이다. 구약의 예언자들도 수없이 그러한 고통을 하소연하고 있다. 하느님의 말씀과 하느님의 뜻이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서 전해지고 이루어짐을 예언서는 말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시기와 질투와 이기심이 이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을 이루려고 온 사람들이 받는 고통과 고독한 외로움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고통스러움이기도 하다. 오늘 제1독서는 엘리야가 호렙산으로 하느님을 만나러 가면서 겪는 고독한 고통을 이야기하고 있다. 

엘리야는 외로움과 좌절감에서 더 이상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하느님께 목숨을 거두어 달라고 청한다(1열왕 19,4).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음식을 주시어 그를 일으켜 세워주신다.

"야훼의 천사가 다시 와서 그를 흔들어 깨우면서 '갈 길이 고될 터이니 일어나서 먹어라' 하고 말하였다. 엘리야는 일어나서 먹고 마셨다. 그는 음식을 먹고 힘을 얻어 사십 일을 밤낮으로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1열왕 19,7-8).

하느님께서는 지친 엘리야에게 음식을 주시어 힘과 용기를 주시고, 그를 호렙산으로 인도하신다. 이는 삶에 지친 인간에게 베풀어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이며, 예수님께서 주시고자 하신 생명의 빵에 대한 예시였다.

오늘도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생명의 빵에 대해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대든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무엇이 그렇게 못마땅하냐?' 하고 반문하시면서 유다인들의 시비와 트집에 실망하지 않으시고 생명의 빵에 대해서 계속 가르치신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내게 오는 사람은 마지막 날에 내가 살릴 것이다. 예언서에 그들은 모두 하느님의 가르침을 받을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누구든지 아버지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는 사람은 나에게로 온다.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를 본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께로부터 온 이밖에는 아버지를 본 사람이 없다"(요한 6,44-46).

우리의 신앙은 은총의 신앙이다. 하느님의 은총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더러 결코 아버지께로 갈 수가 없다. 따라서 인간이 하느님의 말씀에 그 마음을 열 수 있기 위해서는 역시 예언자들의 약속에 나타난 것처럼 내면적인 은총이 필요하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고 하신다.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시고 이끌어주신 사람들만이 당신께 올 수 있다고 하시면서, 아버지의 가르침이 지금 당신에게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당신에게 오는 사람은 마지막날에 모두 살려주시겠다고 하시면서 당신의 신성을 보여주신다.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시고 말씀하시면서 항상 아버지께서 함께하시고,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임을 잊지 않으셨다. 때때로 예언자들과 같이 말씀하시고 행동하셨을 때나 율법을 완성하시는 권위 있는 해석자로 자처하셨을 때, 독자적인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을 때, 당신의 가르침은 당신 것이 아니라 당신을 보내신 아버지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강조하셨다. 그분은 오직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가르쳐주신 것만을 가르치신다고 말씀하신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이심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하느님께 순종하는 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아버지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는 사람만이 당신에게 온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하느님께로부터 온 이밖에는 아버지를 본 사람이 없다고 하시면서 당신께서 이미 아버지와 함께 계셨음을 암시하신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본성이시면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시는 것이며, 당신의 가르침이 곧 아버지의 가르침임을 강조하신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너희의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다 죽었지만 하늘에서 내려 온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요한 6,47-50).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곧 생명의 빵이심을 다시 한 번 강조하시면서 당신을 믿으라고 하신다. 당신께서 생명을 지니신 하느님의 본성이시며 생명의 빵이심을 말씀하시면서 이스라엘 조상들이 광야에서 먹고도 죽어 간, 그러한 빵이 아니라 영원히 죽지 않는 빵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이어서 다시 말씀하신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요한 6,51).

예수님께서 비로소 영원한 생명의 빵이 곧 당신의 살이라고 하시면서, 하느님의 생명을 당신 살을 통하여 주신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빵의 형상을 통하여 하느님의 생명을 깨닫게 하시고, 이제 당신의 살을 통하여 하느님의 생명을 주고자 하신다. 이 신비는 훗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에 당신의 살과 피의 성사인 성체성사에서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

유다인들은 이 성사적인 말씀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의 이기적이고 편협된 아집과 굳게 닫힌 마음이 더욱 그렇게 만들었다. 그러나 오늘날 성체성사 안에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묵상하며 영원한 생명을 믿고 있는 우리는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하신 말씀을 신앙과 믿음으로 간직하고 있다. 이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크시고 크신 은총이며 사랑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