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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복음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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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6주일(마르 9,38-43.45.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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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09-23 08:47 조회13회 댓글0건

본문


누구 하나라도 죄짓게 하지 말라

 

"말리지 말아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한 사람이 그 자리에서

나를 욕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마르 9,39-40).

 

오늘은 연중 제26주일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씀을 하신다. 먼저 요한이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린다.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 내는 것을 보았는데 그는 우리와 함께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을 못하게 막았습니다"(마르 9,38).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고 요한이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막고는 그 일을 예수님께 말씀드린다. 요한은 동료가 아닌 다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고 못마땅해서 못하게 한 것이다. 요한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말리지 말아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한 사람이 그 자리에서 나를 욕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하여 너희에게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의 상을 받을 것이다"(마르 9,39-41).

예수님께서는 편협적이고 배타적인 태도를 경계하신다. 열두 제자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막아 버린 것에 대해 반대하신다. 따라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구원사업은 어떤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 열려져 있음을 보여주신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상에 대해서도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하여 너희에게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의 상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시며 제자들과 그들을 맞아들이는 사람들까지도 하느님의 영광 안에 들어갈 수 있음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죄의 유혹'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또 나를 믿는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그 목에 연자맷돌을 달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마르 9,42).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이들에 대한 소중함을 말씀하신다. 예수님을 믿는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죄짓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 그들을 그만큼 사랑하며 아끼고 계심을 보여주신다.

그리고 죄를 짓게 하는 행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말씀하신다. '손과 발과 눈'이라는 상징적인 단어를 쓰시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신다. '손과 발과 눈'은 인간의 모든 생각과 행동과 행위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동태 복수법에 보면 '손과 발과 눈'에 대한 상징적인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화상은 화상으로, 상처는 상처로, 멍은 멍으로 갚아야 한다'라고 나온다. 

복음에서는 먼저 손에 대한 말씀을 하신다.

"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손을 찍어 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 속에 들어 가는 것보다는 불구의 몸이 되더라도 영원한 생명에 들어 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마르 9,43).

손은 가장 많이 쓰이는 신체의 한 부분으로, 움직임이 민활한 손가락에서부터 아브라함의 하인이 리브가에게 팔찌를 끼워준 팔목까지가 손에 포함된다. 손은 대개 힘을 나타내고 손가락은 숙련을 상징한다. 관용적으로 손은 여러 가지 활동을 의미하기도 한다. '손을 잡다'는 서로의 협력을, '손에는 손으로'는 정의를, '손을 대다'는 부상을 입히거나 죽인다를, '손을 묻다'는 게으른 자의 나태를 나타내는 의미로 쓰인다. 또한 식사 전에 '손을 씻는다'는 것은 먼지와 균의 제거를 의미하며, 순결과 책임회피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손을 댄다'라든가, '손을 쟁기에 댄다'는 것은 일을 시작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손으로 죄를 짓게 한다는 것은 모든 행동과 행위로 죄를 짓게 한다는 것이다. 성서에 수치스러운 행위를 저질렀을 때나 비유적으로 죄악을 막으려고 할 때 손을 자른다는 표현이 나온다. 손을 자른다는 것은 모든 그릇된 행동과 행위를 포기하고 중지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도 손으로 죄를 짓게 하거든 손을 찍어내라고 하신다. 모든 그릇된 행동과 행위로 죄를 짓게 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발에 대해서도 말씀하신다.

"발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발을 찍어 버려라.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는 절름발이가 되더라도 영원한 생명에 들어 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마르 9,45).

우리 동양 사람들은 손이나 발로 많은 것을 표현하면서 설명하려고 한다. 신체의 한 부분으로서의 발은 항상 땅을 딛고 지내기 때문에 흙과 먼지로 뒤덮인 더럽고 천한 부분이다. 그러나 발이 상징하는 의미는 매우 깊다. 욥기에 보면 이렇게 나온다.

"나의 발은 그의 발길을 따라 그가 가시는 길을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았네"(욥기 23,11).

발은 길을 따라 걸어가는 신체의 한 부분으로 영원한 생명의 길, 진리를 찾아 나서는 길을 상징한다. 하느님께 향하는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을 말하며, 행동 범위를 말한다. 발이 죄를 짓는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에로의 길을 걷지 못하게 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발이 죄를 짓게 하거든 발을 찍어 버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눈에 대한 말씀을 하신다.

"또 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눈을 빼어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 가는 것보다는 애꾸눈이 되더라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마르 9,47-48).

눈은 육체의 시각기관으로서 '몸의 등불'이며, 인간에게 있어서 중요한 정보통신 기관의 하나이다. 따라서 눈은 보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중요한 신체의 기관으로서 눈이 상징하는 의미 역시 매우 깊다. 눈은 구약성서에서도 비유적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시편에서는 '나의 눈을 열어 주시어 당신 법의 그 놀라운 일을 보게 하소서'(시편 119,18)라고 하면서 영적인 마음의 눈을 열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야훼의 분부는 그릇됨이 없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야훼의 계명은 맑아서 사람의 눈을 밝혀 준다'(시편 19,8)라고 하면서 영적인 빛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을 나타낸다. 또한 성서는 '선하거나, 관대한 눈'이란 표현으로 맑고 깨끗한 성격을 나타내기도 한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눈을 빼 버려 애꾸눈이 되더라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하신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배타적인 생각을 꾸중하시면서 그리스도교의 넓은 사랑의 신비를 가르치신다. 그리스도교는 모든 이들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포용의 공동체이다. 우리 주변에는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이 많이 있으며, 우리 교회 안에서도 종교적인 실천이나 믿음이 약하고 불안한 이들이 많이 있다. 그렇다고 누구도 그들을 외면하거나 도외시할 수 없다. 모두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하느님의 자녀들이며,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형제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반대하지 않는 모든 이를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모두를 사랑하신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