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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복음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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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4주일(마르 8,2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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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09-09 10:20 조회40회 댓글0건

본문

수난에 대한 첫 번째 예고와 십자가

 

"예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버림을 받아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게 될 것임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셨다"(마르 8,31).

 

오늘은 연중 제24주일이다.

오늘 복음은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더불어 수난에 대한 첫 번째 예고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수난의 때가 다 되신 것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수난에 대한 말씀을 하고자 하신다.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의 적개심은 점점 커 가고 당신을 죽일 음모가 꾸며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수난은 예언자들의 고통스러운 운명이기에 메시아이시며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수난을 피하려 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 수난에 대해서 제자들이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를 원하신다. 사실 예수님의 수난은 제자들에게 있어서 엄청난 사건이었다. 자신들의 전부를 걸고 따르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죽음은 희망이 전부 사라지는, 자신들의 죽음과도 같은 것이었다. 인간적인 삶으로 생각한다면 스승의 죽음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수난은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없으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를 잘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에 대해서 말씀하시기 전에 제자들의 믿음에 대해서 확인하고자 하신다. 마침 제자들과 함께 필립보의 가이사리아에 가시는 도중에 당신에 대해서 물어 보신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생각을 묻기 전에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물으신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 있는 마을들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가시는 도중에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셨다"(마르 8,27).

제자들과 함께 가셨던 필립보의 가이사리아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북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필립보의 가이사리아라는 이름은 당시에 로마 총독이 살았던 지중해 연안의 가이사리아와 구별하기 위해서 필립보의 가이사리아라고 불렀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하더냐고 물으셨을 때, 제자들은 자기들이 들은 대로 말씀드린다.

"세례자 요한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예언자 중의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마르 8,28).

제자들은 당대에 최고의 찬사라 생각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예수님께 말씀드린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앞서 온 사람으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주었으며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가르쳤던 스승이자 예언자였다. 그리고 엘리야 예언자는 예언자 중의 예언자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아가 오시기에 앞서 다시 세상에 올 것으로 믿고 있었던 종말론적 선구자로 이해되기도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란 하느님의 종으로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이었다. 제자들의 대답에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 원래 사람들이 말하는 것에 관심이 없으신 것처럼 보인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제자들에게 다시 물으신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마르 8,29)

그때 베드로가 나서서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마르 8,29)라고 대답한다. 베드로의 대답은 비단 베드로 개인의 대답이 아니라 제자들의 생각을 대변해서 드린 말씀이다. 사실 제자들은 베드로의 대답처럼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이신 그리스도이심을 의심하지 않았다. 따라서 베드로의 대답은 곧 제자들의 신앙고백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말을 들으시고 대단히 만족해 하시며 당신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하신다. 그리고 당신의 수난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대답을 들으시고 당신의 죽음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그러나 명백하게 말씀하신다.

"그 때에 비로소 예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버림을 받아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게 될 것임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다.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하게 하셨던 것이다"(마르 8,31-32).

수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에게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으셔야 한다는 것과 원로들과 대사제들, 율법학자들에게 버림을 받아 그들의 손에 죽으셔야 한다는 것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왜 그들의 손에 죽으셔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만일 스승이신 분께서 죽으신다면 자기들은 또 어떻게 되는 것인지 무서운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다는 말씀은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이때에 베드로가 제자들의 생각을 대변이라도 하듯이 펄쩍 뛰며 반대한다.

"이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펄쩍 뛰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돌아 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시며 꾸짖으셨다"(마르 8,32-33).

베드로가 그래서는 안 된다고 기겁을 하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하시면서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한다고 엄하게 꾸짖으신다. 제자들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처럼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있었으나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삶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예언자들의 삶이 그러하였듯이 그리스도는 반드시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하느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사야는 이미 그의 고난받는 종의 넷째 노래(이사 53장)에서 고난받으셔야 할 그리스도에 대해서 예언하였다. 오늘 제1독서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주 야훼께서 나의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아니하고 꽁무니를 빼지도 아니한다. 나는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맡기며,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턱을 내민다. 나는 욕설과 침 뱉음을 받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리우지도 않는다"(이사 50,5-6).

이사야 예언자는 이미 하느님의 아들이신 메시아가 하느님의 백성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속죄의 제물로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예언하였다. 그리스도의 수난은 하느님의 뜻이며, 또한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 예정된 것이었다. 제자들은 스승이신 그리스도에 대해서 하느님의 뜻인 수난보다는 많은 기적을 행하시고, 빵을 주시는 인간적인 위대함에 온통 마음을 쓰고 있었다. 착잡하신 예수님께서는 군중과 제자들을 한자리에 불러 놓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릴 것이다"(마르 8,34-35).

예수님께서는 군중과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신비에 대해 말씀하신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는 수난의 길을 걸어가야 함을 말씀하시면서 당신이 짊어지실 십자가가 하느님의 뜻이며,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임을 명백하게 하신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역설적인 말씀을 하신다. 자기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하느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릴 것이라고 하시면서 당신의 수난과 십자가는 목숨을 잃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임을 가르치신다. 이 신비는 훗날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과 부활로 확연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신앙고백을 하면서 그리스도께서 걸으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 각자 자기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 이는 곧 우리 목숨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