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하시면,

많은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메뉴 더보기

주일복음해설

SNS 공유하기

연중 제23주일(마르 7,31-37)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09-02 08:54 조회70회 댓글0건

본문


억지로 제 귀를 틀어막는 사람들

 

"사람들은 '귀머거리를 듣게 하시고 벙어리도 말을 하게 하시니

그분이 하시는 일은 놀랍기만 하구나'하며 경탄하여 마지 않았다"(마르 7,37).

 

오늘은 연중 제23주일이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귀먹은 반벙어리 한 사람을 고쳐주시는 내용이다. 성서에서 귀머거리는 신체적으로 이상이 있어서 고침을 받거나, 또는 비유적으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에 사용된다. 비유적으로 사용될 때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고 할 때나 영성이 부족해서 말씀을 이해하지 못할 때를 나타낸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귀먹은 반벙어리를 고쳐주시면서 우리에게 비유적으로 깊은 뜻을 가르치고자 하신다.

복음이 전하고자 하는 비유적인 뜻을 좀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마르코 복음사가가 전하는 복음의 배경을 알아보자.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을 먹이신 큰 기적을 행하시고, 후에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다. 이때에 예루살렘에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찾아 몰려왔다. 그리고 지난주 복음에 나왔던 것처럼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 대들며 따졌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전통을 핑계삼아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며 위선적인 생활을 한다고 크게 책망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걱정이 되어 예수님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지금 하신 말씀을 듣고 비위가 상한 것을 아십니까?'(마태 15,12) 하고 말씀드린다. 사실 위선적이고 형식적인 잘못에 대한 꾸지람은 그들에게 크게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후에 예수님께서는 착잡한 심경에 제자들을 데리고 띠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다. 그들에 대해서 마음이 심히 불편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갈릴래아로 돌아오시자 사람들이 귀먹은 반벙어리를 예수님께 데리고왔다.

"그 뒤 예수께서는 띠로 지방을 떠나 시돈에 들르셨다가 데카폴리스 지방을 거쳐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 오셨다. 그 때에 사람들이 귀먹은 반벙어리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시기를 청하였다"(마르 7,31-32).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의 지역인 시돈과 띠로 지방에 들르셨다가 갈릴래아로 오시면서 데카폴리스 지방을 거쳐 오신다. 띠로와 시돈 지방(가해-연중 제20주일 참조)은 유다인들이 살고 있는 팔레스티나 지역이 아니라 이방인들이 살고 있는 이방인의 지역이다. 예수님께서는 유례없이 팔레스티나를 떠나 이방인의 지역인 띠로와 시돈 지방에 가셨다가 데카폴리스 지방을 지나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신 것이다. 여기서 데카폴리스라는 말은 '10개의 도시'라는 뜻이다. 따라서 데카폴리스 지방은 팔레스티나에 원래 나누어져 있었던 10개의 헬라 도시가 연합한 지방이다.

데카폴리스 지방의 기원을 보면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B.C. 323년), 그의 계승자들이 그의 뒤를 이어 근동 지방에 많은 헬라 도시를 세웠다. 그리고 알렉산더 이후 팔레스티나를 지배했던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와 이집트의 프톨레메오 왕조 역시 팔레스티나에 계속 헬라 도시들을 세우거나 재건했는데, 몇 개의 도시는 옛 셈족의 도시가 있던 곳에 그대로 세웠고, 대부분의 도시들은 새로 건설하였다. 이 도시들은 동방에 있던 전형적인 헬라 도시들로 헬라어를 사용하는 많은 이주민들이 들어와 살았다. 그리고 로마인들이 처음 팔레스티나에 들어왔을 당시에는 유다인들이 데카폴리스의 여러 도시를 장악해서 통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북쪽에 있는 띠로와 시돈에 들르셨다가 이곳 10개의 도시가 운집해 있는 데카폴리스 지방을 거쳐서 갈릴래아로 돌아오신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 돌아오셔서 많은 병자를 고쳐주셨다(마태 15,29-31)고 전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 마르코 복음사가는 그 가운데 특별히 귀먹은 반벙어리 사건을 전하고 있다. 아마도 귀먹은 반벙어리의 치유에 대해서 비유적으로 시사하는 가치가 크기 때문에 특별히 전하는 것 같다.

귀먹은 사람에 대한 비유는 구약의 예언자들도 이미 즐겨 사용하던 것으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강한 뜻을 보여준다. 예언자들이 전하는 말들은 대단히 힘차고 적극적이어서 귀먹은 자들을 듣게 만들어 하느님의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을 본다.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백성들이 그 말씀을 알아듣게 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이 백성을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이 백성을 불러 모아라"(이사 43,8).

시편에 보면 결코 바른 말을 듣지 않으려는 권력자들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독사같이 독이 서리고, 살무사처럼 제 귀를 틀어 막고는 솜씨 좋은 마술사의 소리도, 홀리는 요술사의 소리도 듣지 않는다"(시편 58,4-5).

권력으로 백성을 괴롭히는 자들을 독을 품은 독사나 살무사로 비유하면서, 제 귀를 틀어막고 옳은 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귀머거리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 재미 있는 것은 살무사가 마술사의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귀를 틀어막는데, 한쪽 귀는 땅에 대고, 또 한쪽 귀는 꼬리 끝으로 귀를 틀어막는다.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고 억지로 자기 귀를 막아 버리는 자들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말을 못하는 벙어리는 대개 귀머거리와 관련된다. 듣지 못하면 말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벙어리도 역시 귀머거리와 같이 신체적 이상 상태를 표현하거나, 또는 비유적으로 말을 하지 않는 책임 회피와 같은 뜻으로 나타낸다. 시편에 중압감에 못 이겨 하느님의 공정하심에 대해 입을 열어야 하는 사람의 모습이 나온다.

"입을 다물고 벙어리 되어 가만히 있으려니 아픔만 더욱 쓰라립니다. 마음 속에 불이 타오르고 생각할수록 불길이 솟아 나와 감히 혀를 놀립니다"(시편 39,2).

예수님께서도 벙어리를 고치신 일이 여러 번 있으신 것을 복음서에서 볼 수 있다. 벙어리는 흔히 신체적인 이상과 관련되었는데, 이것은 악령들린 탓이라고 생각했었다(마르 9,32). 

그러므로 복음서 저자들은 벙어리가 고쳐지는 것은 악령을 쫓아낸 결과라고 말하는데, 특히 간질병에 걸린 말을 못하는 소년을 고치셨을 때에 그러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 나오는 벙어리는 귀먹은 반벙어리인데, 그는 아마도 더듬거리며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 무의미한 소리를 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전해진다.

"예수께서는 그 사람을 군중 사이에서 따로 불러내어 손가락을 그의 귓속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대시고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쉰 다음 '에파타' 하고 말씀하셨다. '열려라'라는 뜻이었다. 그러자 그는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예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셨으나 그럴수록 사람들은 더욱 더 널리 소문을 퍼뜨렸다"(마르 7,33-36).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데리고 온 귀먹은 반벙어리를 따로 불러내어 고쳐주신다. 이때에 귀먹은 반벙어리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또는 그의 믿음도 확인하지 않으시고 아무 말씀도 없이 고쳐주신다. 이는 귀먹은 반벙어리를 빗대어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의 말씀을 듣지 않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따지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을 암시하신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음으로써 말씀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 그들을 반벙어리의 모습으로 비유하신 것이다. 그들은 선택된 백성으로서 그들의 학식과 학문, 지식을 가지고 마땅히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받아들여 입을 열어야 하는데, 오히려 귀를 틀어막고 귀머거리가 되어 반벙어리 행세를 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예수님께서는 귀먹은 반벙어리에게 '에파타(열려라)' 하고 명령하시어 귀를 열어주시고 혀를 풀어주신다. 악령까지도 제압하는 권위 있는 명령을 지니신 예수님께서는 귀먹은 반벙어리의 치유를 통하여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오신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신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님을 아시고 이 일을 말하지 말라고 함구령을 내리셨으나 이 일은 널리널리 퍼져 나간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보고 크게 놀란다.

"귀머거리를 듣게 하시고 벙어리도 말을 하게 하시니 그분이 하시는 일은 놀랍기만 하구나"(마르 7,37).

사람들이 놀란 것은 종교적인 놀라움이었다. 사람들은 귀먹은 반벙어리를 치유하시는 예수님에게서 귀머거리를 듣게 하시고 벙어리를 말하게 하시는 신적인 메시아의 모습을 본 것이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메시아의 시대가 오면 이루어주실 세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 때에 소경은 눈을 뜨고 귀머거리는 귀가 열리리라. 그 때에 절름발이는 사슴처럼 기뻐 뛰며 벙어리도 혀가 풀려 노래하리라. 사막에 샘이 터지고 황무지에 냇물이 흐르리라"(이사 35,5-6).

사람들은 이사야의 예언대로 메시아 시대의 모습을 예수님에게서 본다. 메시아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본 것이다. 메시아는 이제 오셨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귀먹은 반벙어리는 또한 찬란한 문화와 물질의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말하지 않으려는 우리들 자신이기도 하다.

 

"그는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