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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복음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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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2주일(마르 7,1-8.14-15.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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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08-26 08:52 조회1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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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인들의 전통인 정결법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여도, 마음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 있구나.

그들은 나를 헛되이 예배하며 사람의 계명을 하느님의 것인 양 가르친다"

(마르 7,6-7).

 

오늘은 연중 제22주일이다.

오늘 복음은 유다인들의 전통과 관습에 대한 가르침이다.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전통을 어겼다는 구실로 트집을 잡고 따진다.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 몇 사람이 예수께 모여 왔다가 제자 몇 사람이 손을 씻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다. 원래 바리사이파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인들은 조상의 전통에 따라 음식을 먹기 전에 반드시 손을 깨끗이 씻었고 또 시장에서 돌아 왔을 때에는 반드시 몸을 깨끗이 씻고 나서야 음식을 먹는 관습이 있었다. 그 밖에도 관습이 많았는데 가령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 같은 것을 씻는 일들이 그것이었다. 그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께 '왜 당신의 제자들은 조상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하고 따졌다"(마르 7,1-5).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멀리 예루살렘에서 온 것을 보면 무엇인가 예수님을 감시하면서 트집을 잡으러 온 것이다.

오늘 복음의 배경을 보면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과 물위를 걸으신 기적이 있은 후였다. 그리고 그 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고향에도 가셨고, 열두 제자들을 여러 촌락으로 파견하시면서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수없이 기적을 행하시던 때였다. 예루살렘과 온 이스라엘에 예수님의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던 때였음을 알 수 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을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그들이 본 것이다.

유다인들에게 전통에 따른 관습은 곧 율법이었다. 모세 이전에도 그들의 전통과 관습은 하나의 율법으로서 히브리인들 사이에 존재했다. 따라서 모세에 의해 선포된 구약의 율법 역시 그 기초를 그들의 관습에 두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창세기와 출애굽기에 나타난 모세 이전의 관습은 제물로 바쳐지는 것과 제단에 사용하는 것, 기물의 종교적인 사용, 제사를 위한 정결 작업, 십일조, 성소에 묻는 일, 거룩한 절기 등이다. 이러한 관습들이 모세 이전에 히브리인들의 신앙생활과 사회질서를 잡아주는 법이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따지는 것은 바로 이 관습에 해당하는 정결에 관한 법령이다. 성서에서 정결은 마음과 육신을 깨끗이 하는 매우 중요한 종교의식에 해당하면서 그 의미가 매우 광범위하게 쓰여지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그들이 따지는 것은 위생상의 정결이다.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깨끗이 씻는다든지, 또는 시장에서 돌아왔을 때는 반드시 몸을 씻고 나서야 음식을 먹는다든지,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 같은 것을 씻는 일들이다. 모세 시대 율법의 특징 중에 하나가 육체적 정결에 대한 세심한 관심이었다. 광야에서의 방랑 기간 중 정결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야영 생활에서 필수적인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의학적 지식, 약, 병균, 해부학과 같은 것이 없었던 시대였으므로 청결하게 하는 것만이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비결이었다. 다시 말하면 정결케 함으로써만 오염과 질병의 전염을 억제할 수 있었다.

모세가 정결에 관한 법과 벌을 규정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렇다.

"모든 부정한 것에 닿은 고기는 먹지 못한다. 그러므로 불에 태워 버려야 한다. 깨끗하게 된 사람은 누구든지 제물고기를 먹을 수 있다. 부정한 몸으로서 야훼께 바친 친교제물의 고기를 먹는 사람은 그 겨레로부터 추방시켜야 한다"(레위 7,19-20).

당시에 부정한 것은 불로 태웠고, 어떤 것은 불로, 또 어떤 것은 물로 청결케 했다. 예를 들어 군인들은 전쟁이 끝나면 자신의 몸, 포로, 옷, 공급품들을 시체로부터의 오염을 막기 위해 정결하게 해야 했다(민수 19,11-16). 또한 사람과 의복은 물로 씻고, 금과 은, 주석 등의 금속은 불로 소독했다.

그러나 유다인들이 행하던 전통적인 정결 의식은 예수님의 시대에 그 정신적 가치를 많이 잃어 형식적인 의식이 된다. 그 외에도 모세의 율법 안에 사소한 의식들이 상당히 많이 들어 있었다. 이로 인해 어렵게 사는 서민들에게는 형식적이고 사소한 법령들이 큰 짐이 되기도 하였고, 목을 죄는 것이 되기도 했다. 반면에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그러한 법령들을 이용하여 서민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데 이용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모순된 법령들과 그들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서 대단히 못마땅하게 여기시고 마음 아프게 생각하셨다.

그러한 때에 그들이 예수님께 '왜 당신의 제자들은 조상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하고 따지는 것이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신다.

"이사야가 무어라고 예언했느냐?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여도 마음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 있구나. 그들은 나를 헛되이 예배하며 사람의 계명을 하느님의 것인 양 가르친다'고 했는데 이것은 바로 너희와 같은 위선자를 두고 한 말이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고집하고 있다"(마르 7,6-8).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적이고 잘못된 행동과 신앙에 대해 이사야 예언서의 말을 인용하신다. 이사야는 야훼 하느님의 말씀을 이렇게 전하였다.

"이 백성은 말로만 나와 가까운 체하고 입술로만 나를 높이는 체하며 그 마음은 나에게서 멀어져만 간다. 그들이 나를 공경한다 하여도 사람들에게서 배운 관습일 따름이다"(이사 29,13).

하느님께서는 형식적인 믿음을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하고 예배드리며 공경하기를 바라신다. 율법은 진실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믿게 하기 위한 하느님의 가르침이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믿음과 공경과 예배를 받으시기 위하여 율법을 주시어 철저하게 지키도록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정결에 대한 법령도 깨끗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나아가기 위한 것이며, 위생상의 정결 역시 인간의 건강을 위해서 세워진 것이다.

이처럼 구약의 모든 율법에 해당하는 전통과 관습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율법을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율법을 철저히 준수한다는 것만으로 하느님께 해야 할 의무를 다한 것으로 생각하였고, 율법을 충실히 지킨다는 것으로 하느님을 공경하고 섬긴다는 자부심을 가졌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에 대해서 크게 책망하신다. 그리고 오늘 그들이 따지는 정결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가르치신다.

"너희는 내 말을 새겨 들어라. 무엇이든지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더럽히는 것은 도리어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다"(마르 7,14-15).

먼저 예수님께서는 정결이 아닌 더러움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신다. 그리고 그 더러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

"안에서 나오는 것은 곧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 음행,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 같은 여러 가지 악한 생각들이다. 이런 악한 것들은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마르 7,21-23).

예수님께서는 마음의 정결을 가르치신다. 그러나 육체적인 위생상의 정결을 부정하시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결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 또는 핵심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시고자 하신 것이다. 하느님께서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며 정신이다. 참되고 깨끗한 마음에서 온 힘을 다하여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와 공경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법을 잘 지켜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의 법을 잘 지켜야 한다. 이는 또한 예수님께서 원하시고 가르치시는 율법 정신이다.

예수님께서는 깨끗한 정신적인 마음의 율법을 가르치고자 하신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