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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복음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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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6주일(마르 6,3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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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07-15 08:47 조회178회 댓글0건

본문

사도들이란 누구인가?

 

"사도들이 돌아와서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예수께 낱낱이 보고하였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함께 좀 쉬자'고 말씀하셨다"(마르 6,30-31).

 

오늘은 연중 제16주일이다.

오늘 복음은 지난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신 일과 관련이 되어 있다. 파견되어 갔던 제자들이 그들에게 맡겨졌던 사명을 수행하고 돌아와서 예수님께 보고하는 내용이다.

"사도들이 돌아 와서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예수께 낱낱이 보고하였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함께 좀 쉬자'고 말씀하셨다. 찾아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들은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마르 6,30-31).

복음서에서는 제자들이 무엇을 보고하고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는 전하고 있지 않다. 다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보고를 들으시고 그들에게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좀 쉬자'고 하신다. 지쳐 있는 제자들을 보시고 측은한 생각이 드시어 제자들에게 휴식을 주시고자 하신 것이다. 그런데 휴식할 틈도 없이 찾아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제자들은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다고 전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특이한 단어를 하나 볼 수 있다. '사도'라는 단어이다. 지난주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불러 둘씩 짝지어 파견하시면서…'라고 '제자'라는 단어를 썼는데, 오늘은 사도들이 돌아와서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예수께 낱낱이 보고하였다고 하면서 '사도'라는 단어를 쓴다.

'사도'와 '제자'라는 말은 어떻게 다른가? 제자란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으로서 예수님의 인격에 완전히 귀의한 사람을 말한다. 즉 제자란 스승이신 예수님과 운명을 같이하면서 예수님께 대한 완전한 신앙과 순종함을 말한다(가해-연중 제13주일 참조). 그러면 '사도'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 신약성서에 상당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사도라는 말을 쓰고, 또한 그 칭호를 받는다. 그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인물들이 교회를 창설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열두 제자들이고, 가장 훌륭했던 이방인의 사도 바오로가 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 역시 초창기에 실바노와 디모테오와 바르나바에게 사도라는 칭호를 준다.

사도라는 어원을 살펴보자. 어원을 보면 고대 그리스 문학에 쓰여진 '아포스톨로스'(그리스어, Apostolos)라는 명사가 있는데, 그 명사를 파생시킨 '아포스텔로'(Apostello; 파견하다)라는 동사가 있다. 그런데 이 '아포스텔로'는 그리스도교에서 사용하는 사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한다면 사도라는 의미는 '파견하다'라는 단어에서 나온 것이며, 파견된 사람을 사도라고 불렀다. 이런 의미가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은 구약성서와 유다인들의 관습에서 볼 수 있는데, 어디까지나 유추법에 의한 사용이다. 즉 사도라는 단어는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사도적 의미인 '파견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사용했다는 것이다. 구약성서는 임금이 파견한 '사신'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사신들은 그들을 파견한 임금에게 바쳐야 할 존경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2사무 10장). 그리고 예언자들도 비록 사도라고 불리지는 않지만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된 사람으로서 사도적 사명을 수행한다. 이사야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 때 주의 음성이 들려 왔다. '내가 누구를 보낼 것인가?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하고 내가 여쭈었더니…"(이사 6,8).

그 외 랍비 전통의 유다교에서도 기원후 70년 이후 공식적으로 파견된 자, 즉 사자의 제도가 있었다. 초대교회도 안티오키아와 예루살렘으로부터 바르나바와 실라에게 공한을 주어 파견하고 있고, 바르나바와 바오로를 교회의 대표로 결정하여 파견함으로써 구약과 유다교의 관습을 답습한다. 바오로 사도 자신도 두 형제를 여러 교회의 '사신'(그리스어 Apostoloi)으로 파견한다.

"디도로 말하면 그는 나의 동료로서 여러분을 위해서 나와 함께 일하는 협조자입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가는 다른 형제들은 여러 교회가 뽑아서 보내는 대표들로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낼 사람들입니다"(2고린 8,23).

이와 같이 사도라는 뜻은 선교사나 성령을 받은 자, 혹은 증인이라는 뜻을 지니지 않았고, 사자, 파견된 자, 전권 대행자, 사신 등의 뜻을 지니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전도를 시작하시면서부터 당신의 전권 대행자가 되는 사람들을 통해서 당신의 존재를 확대하시고, 당신의 가르침을 보급하려고 하셨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열두 제자들이었다. 그래서 오늘 복음사가는 예수님께로부터 파견되어 '사자, 전권 대행자, 사신'의 역할을 하고 돌아온 제자들을 사도라고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도가 될 열두 제자들을 부르시는 과정을 보면, 네 명의 첫 제자들을 불러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고, 나머지 여덟 명을 선정하여 '당신과 함께' 머물게 하신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악령을 쫓아내게 하시며, 당신의 권한을 주시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르칠 사명을 수행하도록 파견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파견한 사도들에 대해서 이미 구약성서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를 맞아 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 들이는 사람이며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 들이는 사람이다"(마태 10,40).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파견하는 사람들을 당신과 동일시하고 계시며, 당신을 파견하신 하느님을 맞아들이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이 당신을 완전히 답습하도록 가르치신다.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빵의 기적을 행하셨을 때 그 많아진 빵을 나누어주는 것을 배웠고, 자신들이 다스려야 할 공동체에 대한 특별한 권한을 받는다. 그리고 사도들은 새로운 이스라엘의 기초가 되었으며, 종말에 새로운 이스라엘을 재판할 판관들이 된다는 것을 가르치신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는 나를 따랐으니 새 세상이 와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때에 너희도 열 두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심판하게 될 것이다"(마태 19,28).

사도단의 열둘이라는 숫자와 열두 옥좌, 그리고 열두 지파, 그 자체가 새로운 이스라엘을 재판할 판관들을 상징한다.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파견된 자들의 위대한 신적 권한이다. 이는 사도들이 예수님의 신적 권한으로 세상에 나가 그 역할을 다하면서, 계속 사도들이 사도들에 의해서 파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하느님 나라는 계속적인 사도들의 파견으로 영원히 세상 마칠 때까지 성장되어 가는 것이다.

다시 오늘 복음으로 돌아가 보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을 찾아 떠나신다. 복음은 이렇게 말한다.

"예수의 일행은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을 찾아 떠났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일행이 떠나는 것을 보고 그들이 예수의 일행이라는 것을 알고는 여러 동네에서 모두 달려나와 육로로 해서 그들을 앞질러 그 곳에 갔다.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 군중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보시고 목자 없는 양과 같은 그들을 측은히 여기시어 여러 가지로 가르쳐 주셨다"(마르 6,32-34).

군중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을 쉬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거절하지 않으시고 배에서 내려 군중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보시고 목자 없는 양과 같은 그들을 측은히 여기신다. 참 목자이신 예수님의 깊은 사랑이다. 예수님께서는 양들을 위한 참 목자의 필요성을 간절히 원하시면서 목자적인 사명과 당신의 사도들을 결부시키신다.

이미 구약에서부터 야훼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양떼를 위한 참 목자를 대단히 필요로 하셨다. 하느님의 양떼들을 위한 참 목자상은 훗날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에게 주어지고 있으며, 나아가 오늘 복음에서처럼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에게 이어진다. 그리고 사도들에게 참 목자로서의 사도직 사명이 새롭게 주어진다. 하느님의 양떼가 겁이 나서 무서워 떠는 일이 없게 해야 할 것이며,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도록 자기 목숨을 바쳐 지켜야 하는 사명이다. 참 목자로서의 사도직이다.

오늘날 사제들과 수도자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주님으로부터 파견된 사도들이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하여 사도직을 받았고, 또한 매일미사에서 성체성사를 통해서 삶의 현장으로 파견되어지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참 목자적인 사명을 온 힘을 다하여 수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훗날 우리는 주님 앞에서 우리가 수행한 사도적 사명을 낱낱이 보고하게 될 것이다.

 

"그들을 위하여 참 목자들을 세워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