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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복음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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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2주일(마르 4,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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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06-17 08:48 조회226회 댓글0건

본문

악의 세력이 넘치는 바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왜 그렇게들 겁이 많으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책망하셨다"(마르 4,40).

 

오늘은 연중 제12주일이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바다의 풍랑을 잠잠하게 하시는 기적이다. 해가 진 저녁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갈릴래아 호수를 건너가시면서, 바닷물이 넘쳐 제자들이 무서움에 질려 있을 때 바다를 잠잠케 하시는 사건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보이신 오늘의 이 기적은 하느님 아들이신 분의 위대한 권능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예수님께서는 지난주 복음에 나왔던 '자라나는 씨'에 대한 비유를 가르쳐주시고 저녁이 되자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으로 가신다.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가시는 도중에 바다 가운데서 큰 풍랑이 일어난다. 복음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 날 저녁이 되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 채 예수께서 타고 계신 배를 저어가자 다른 배들도 함께 따라 갔다. 그런데 마침 거센 바람이 일더니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뱃고물을 베개삼아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를 깨우며 '선생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돌보시지 않습니까?' 하고 부르짖었다. 예수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를 향하여 '고요하고 잠잠해져라!' 하고 호령하시자 바람은 그치고 바다는 아주 잔잔해졌다"(마르 4,35-39).

예수님께서는 풍랑을 잠재우시고 겁에 질려 있는 제자들을 책망하신다.

"그렇게 하시고 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왜 그렇게들 겁이 많으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책망하셨다.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도대체 이분이 누구인데 바람과 바다까지 복종할까?' 하며 서로 수군거렸다"(마르 4,40-4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음을 꾸중하신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그 많은 가르침과 더러운 악령들과 많은 마귀들, 그리고 나병환자와 중풍병자들과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시는 기적을 보고도 하느님의 아들이신 메시아에 대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바다 한가운데서 당황하고 불안해하는 제자들에게 믿음의 긴 체험을 하게 하신 것이다.

그러면 오늘 예수님께서 행하신 상징적인 기적의 뜻을 잘 이해하기 위하여 바다가 주는 성서적 의미를 알아보자. 성서에서 바다는 적당한 수식어와 함께 물의 총 집결체이다. 창세기에 의한 전승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천하의 물을 한 곳으로 모아 물들을 갈라놓으시고, 그 물들을 바다라 이름지어 부르셨다.

"하느님께서 '하늘 아래 있는 물이 한 곳으로 모여, 마른 땅이 드러나거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마른 땅을 뭍이라, 물이 모인 곳을 바다라 부르셨다"(창세 1,9-10).

하느님께서 만들어주신 이 바다는 훗날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 된다. 팔레스티나 지역의 주민들은 본래 선원이 아니었으나 그 지역에 인접해 있는 큰 바다에 익숙해 있었으며, 그들의 역사는 늘 이 바다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갈릴래아 호수는 바다는 아니지만 팔레스티나 최대의 담수호로 바다라고 불렸으며 예수님께서 활동하셨던 곳으로 언급되고 있다. 신약성서에서 이 바다는 때로는 겐네사렛 호수나 티베리아 호수로 불리운다. 사람은 누구나 바다를 바라보면서 억제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느끼며, 선원들이나 해변에 사는 주민들은 특히 심한 공포를 느낀다. 바다가 한번 노하면 모든 것을 집어삼킬 위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신화는 대륙을 둘러싼 이 우주 대양을 인격화하여 괴물의 모습으로 나타내어 티아맡(Tiamat)이라 불렀다. 이 괴물은 무질서와 파괴의 능력을 상징하였다. 그러나 성서에 의하면 바다는 결코 괴물이 아니고 단순한 하느님의 피조물로 나온다. 하지만 성서는 바다가 괴물은 아니지만 보다 다른 차원의 상징들을 이용하여 바다를 설명하고 있다. 심연의 바닥은 명부와 접근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요나 2,6-7) 바다 깊은 곳과 물결을 죽음의 위험으로 적절하게 표현(시편 69,2)하고 있다. 그리고 바다의 개념으로 악하고 무질서하고 거만한 세력을 신화에 나오는 괴물의 모습으로 표현하는 장면도 나타난다. 따라서 바다는 야훼께서 당신 계획을 승리로 이끌기 위하여 타도해야 할 적대 세력의 상징이었다. 

성서에 바다에 대한 서사시적 표현이 여러 곳 나온다. 이사야는 '라합을 찢던 그 팔을, 용을 찔러 죽이던 그 팔을 일으키십시오'(이사 51,9) 하고 노래하면서 하느님께서 신화적인 용, 즉 괴물(악의 세력)을 물리쳐주시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구원의 역사적 사건과 관련지어 자주 사용되기도 했는데, 예를 들면 이집트 탈출의 역사적 체험에서는 야훼께서 당신 백성에게 길을 터주시려고 홍해를 마르게 하심(출애 14장-15장)으로써 대심연의 용(괴물)을 치신 하느님의 승리를 나타내었다. 이사야서에서도 "바다 깊은 물 구렁을 말리던 그 팔을, 깊은 바다에 길을 내어 구원받은 백성을 건너게 하던 그 팔을 일으키십시오"(이사 51,10)라고 표현하면서 물 구렁을 말리심으로써 괴물을 치신 하느님의 승리를 묘사하였다. 같은 양상으로 하느님께 반항하는 이교도들의 아우성 소리를 바다의 노도소리로 비교하면서 "그 날, 밀려 올 아우성소리는 밀어 닥치는 노한 파도소리 같으리라"(이사 5,30) 하고 표현하였다.

또한 후기 묵시문학에서도 나타나는데, 하느님과 최후 싸움에서 대결할 사탄의 세력을 바빌로니아의 티아맡처럼 대심연에서 올라오는 괴물 모습으로 나타내고 있다(다니 7,2-7). 그러나 무질서한 세력이 아무리 저항할지라도 소용없다. 천지창조의 시초부터 바다의 거만을 굴복시킨 우주의 왕, 창조주께서는 역사의 지배권도 장악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당신은 라합을 찔러 죽이시고 두 팔을 휘둘러 원수들을 흩으신 분, 하늘이 당신 것이오니, 땅도 당신의 것. 땅과 그 안에 담긴 것 모두 당신께서 만드신 것"(시편 89,10).

신약성서에서도 바다는 종교적으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복음서에서 바다는 역시 악령과 관련이 있는 곳으로 현저히 표현되는데, 악령에 사로잡힌 돼지떼가 그곳으로 뛰어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거친 바다는 인간을 공포로 몰아 넣는 악의 세력으로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잠잠하게 하시면서 악의 세력과 자연계를 지배하시는 신적 능력을 드러내셨으며,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 곁으로 가신다. 오늘 복음에서도 '고요하고 잠잠해져라' 하는 말씀 하나로 거칠던 바다를 잠재우시면서 당신이 인간 이상이신 분이라는 것을 제자들로 하여금 믿게 하신다. 묵시록은 그리스도께서 역사 안에서 대결하는 악의 세력을 바다와 결부시킬 뿐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당신 왕권을 충만히 행사하실 새로운 창조를 묘사하면서 "바다도 없어질' 특별한 날의 도래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그때에는 악의 세력을 연상케 하는 심연과 무질서의 힘을 상징하는 바다도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새 세계의 빛으로 가득 찬 평화의 상징인 수정의 바다가 천상 예루살렘에 남아 있어 하느님의 옥좌 앞에 끝없이 펼쳐질 것이다. 바다는 아무래도 악의 세력이 넘치는 무질서의 세계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악이며, 세속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이렇듯 성서에서의 물은 하느님의 권능이 와서 닿는 곳이며, 물고기가 사는 곳이고,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며, 묵시록의 기자들이 세상 권세의 상징으로 묘사했던 모든 짐승들이 나오는 곳이다.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바다를, 거친 바다의 풍랑을 한 말씀으로 잠잠하게 하시며 하느님의 신성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시어 믿게 하신다. 이 비유로써 장차 제자들이 겪어야 할 박해와 교회의 시련,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물질문명의 풍요로운 세속에서 겪게 될 신앙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암시하시며 어떻게 이겨 내야 하는지를 보여주신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고 책망하신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은 뱃고물을 베개 삼아 주무시고 계셨듯이 언제나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다. 하느님은 이렇듯 우리 안에 현존하고 계신다.

 

"왜 그렇게들 겁이 많으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